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8)


명랑의 희망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1.

불편당(不便堂)은 또 거기에 있었다. 불편한 것이 삶이라는 것. 그러니 불편(不便)을 편(便)으로 알고 살라는 ‘불편당.’ 가면서, 아니 가자는 말이 나와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나서 나는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내일의 꿈을 열었던

외로운 고니 한 마리

지금은 지금은 어디로 갔나

속울음을 삼키면서

지친 몸을 창에 기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졌다고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어 없어라

이젠 다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아 우리의 고니.


- <고니>(1983), 이태원 노래


그 고니는 나의 모습 그 노래는 나의 고백만 같았다.


2.

나에게 삶은 똑 떨어지는 수학 같은 것이어야 했다. 학창시절부터 수학은커녕 산수도 지지리 못하여 언제나 ‘숫자의 방황’이라 스스로를 칭해 왔으면서도 삶에서는 깔끔한 방정식과 완벽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나는 추구하고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1+2=5(?)와 같이 난데없고 이해불가라 역시 숫자의 방황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된 데는 내가 알지 못할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걸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의구심과 의혹으로 인한 괴로움은 줄에 매인 소가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벗어나는 것만이 얽히고 조여진 의혹의 그물코들을 단방에 벗길 수 있는 그랜드슬램의 비책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도 가끔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군’의 일괄타결법을 설파하곤 했었다. 1+2 연산의 결과가 5로 나올 때, 너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그렇군!’이라고 하라. ‘그렇군’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문제를 타인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나의 화두로 삼아, 그것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풀릴 때까지, ‘그렇군’ ‘그렇군’ ‘그렇군’ 수천번 수만 번을 ‘그렇군’하라는 것이다. 의문과 질문이 끊어진 침묵의 자리에 당도할 때까지. 거기선 의문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품는 나 자신의 에고까지 그쳐 대답을 얻은 충분함, 대답이 필요 없어진 자연(自然), 이미 대답이 된 자족(自足)이 넘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배웠고 터득했고 수련했고 유지해 나간다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남을 가르치기까지 했던 나의 ‘그렇군’이 다만 나의 에고의 또 다른 완강함일 뿐이란 회의가 든다. 그렇다면 뭔가? 삶이 공허에 불과하다면 (벗어나야하는 거야 그렇다치고)왜 살아야하는 것인가?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인간(人間)이란 관계가 피치 못할 파행이거나 예정된 어긋남뿐이고 본래 만족할 소통은 그만두고 일관된 정중함이나 예절조차 기대할 것이 못된다면. 인간은 다만 동물이고 예기치 못하고 우발적이며 일관될 게 있을 리 없는 동물적 본능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것이라면. 사람은 왜 어울려 살아야하는 것인가. 다만 서로 물고 먹을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의 필요, 아니 물고 먹을 필요를 위하여?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진 것 같아 모든 게 다시 시들해진다.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다.



3.

한 때 머슴을 여럿 둘 정도로 짱짱했던 한옥(韓屋) 불편당의 겨울은 기울어진 그 집안의 가세만큼이나 불편해 보인다. 빗장이 닫힌 옛날식 대문에게는 ‘아이고 할아범 아직도 버티고 계시니 기특하군요’라고 인사라도 건네고 싶다. 날은 추운데 약속보다 빨리 도착해 전화를 걸고서도 한참을 지체한 후 빗장이 풀리고 노인장의 가슴 같은 대문이 열리며 노래 속 가난한 시인이 면을 드러낸다. 코를 마시며 덤덤히 손님을 맞는 초로(初老)의 시인은 금장식만 붙이면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썼던 몽골식 차르의 왕관 같은 밤색 털모자를 썼다. 수도를 떠나 낙향한지 오래된 궁정시인의 모습이 저럴까. 그 세월인 듯 열린 문 사이로 한줄기 찬바람이 풀려서 문간을 휘젓고 나간다.


서둘러 장갑을 빼며 악수를 나눈다. 봄부터 여름내 마당에 꽃과 풀을 키워내던 마법의 보료는 대궁을 꺾고 마른 잎들을 쓸어가는 겨울바람에 오그라든 채 방치돼 있었다. 털북숭이 흰 개 한 마리가 ‘지금은 형편이 이렇답니다.’라고 말하는 듯 개집 주위에 얼려놓은 개똥을 앞에 두고도 낯선 손님들을 놀라지도 않은 순진한 표정으로 맞는다. 만져본 듯 맨질맨질 돼지코보다는 작으나 납작하고 봉긋한 윤기 나는 분홍바탕에 검은 빛이 감돌고 자세히 보면 벌룸거리는 녀석의 얼굴엔 개코만 보인다. 털이 안면을 가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코가 흰둥이의 기분과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녕, 잘 있었냐?’하고 손까지 들어 인사를 건네며 가위로 얼굴을 좀 터줬으면 하는 안쓰러움이 든다. 아니 매번 느끼며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지만 개의 얼굴뿐 아니라 기우뚱한 불편당 전체를 마술램프 거인의 힘으로 딱, 딱, 각지게 세워놓고 싶다. 잠간사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집의 뼈대가 튼튼하고 벽이 살아있고 지붕이 날아갈 듯 날렵했던 시절, 머슴들과 주인댁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흥성대던 시절로 되돌려 본다. 그러면 내 앞의 시인도 껑충하고 구부정한 몸매를 꼿꼿하게 펴고, 기력이 되살아나고, 궁정시인처럼 원기왕성 매력적이었을 젊은 날의 몸매가 회복되겠지. 그러나 추위에 곱아 굼떠 허방을 딛는 것처럼 박자가 잘 안 맞는 걸음걸이는 앞선 시인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다 그런 게 산다는 거니 거 너무 불편해 마시오’라고, 불편당은 과묵한 무덤덤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툇마루도 없는 봉당에 신발을 벗어놓고 옛날 행랑방 문 같은 쇠고리가 달린 창호 문을 열고 비로소 차향과 청향과 고향과 효소향이 은근한 난로에 익어가는 따뜻한 방으로 들어갔다.


4.

홀로 산길을 걷다 자주 발걸음 멈추는 곳

두루미천남성 군락이 있지

긴 헛줄기 끝에 긴 모가지를 쑥 뽑아올리고

외로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두루미를 닮아 친해졌어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울퉁불퉁한 오르막길 하염없이 걷다

호젓한 꽃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보면

외로움이 출렁, 온몸을 흔드는 순간도 있지만

입석(立石) 같은 외로움이

또 한 번 출렁, 한 무더기 빛으로 쏟아지기도 하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뒤에 두고 온 두루미천남성이 던져준 빛이네

저물녘 산길을 내려오다보니

이미 오래전 입적해버린 새의 주검 위로

나뭇가지에 열린 새들 뱃종뱃종 명랑의 둘레가 되고


- 「명랑의 둘레」, 고진하,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 2015.




5.

난 아직 시인의 명랑을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걸 알려면 산골에 들어가 젊은 날을 살아내고, 긴긴 겨울을 개들과 함께 나는 적막과 치열을 통과하고, 이제는 두루미처럼 길게 뺀 외로움 속에서 홀로 피어나 홀로 가는 출렁임 속 환한 둘레 그 빛을 보아야하는 걸까? 삶은 이렇게 춥거나 곱거나 굼뜨거나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하거나 난데없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난해하거나 공허하거나 말짱 도루묵이거나 하여튼 못생기고 못난 것들의 대잔치일 뿐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다 어떻게 통과하고 길 가 새 한 마리의 주검에서도 그 새의 입적의 거룩함 앞에 산 목을 축이는 두루미천남성 같은 명랑의 둘레에 도달할 것인지. 아니 명랑의 둘레가 될 것인지. 아니 그냥, 새의 주검처럼 이미 오래전 죽은 삶의 온갖 불편함 속에서 노이로제 든 가슴으로 답답할 것인가.


같이 차를 타고 나가 오리구이집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저물도록 난롯가에서 차를 마시고 환삼덩굴이 찹쌀가루와 만나 어우러진 떡을 구워 역시 잡초들과 엿기름과 대추 등이 만나 어우러진 조청에 찍어 먹었다. 차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떡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조청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효소는 저절로 된 것들이 아니다. 나는 그 일일한 수고와 공정을 다 기록할 정도의 수고조차 겁이 나 그것을 다 하나로 뭉뚱그려 불편함이라고 기술하련다. 그것들은 온갖 불편을 통해 온갖 깊은 색과 맛을 내는데, 나는 그것을 눈물이 날 정도로 황송해 하면서 간단히 얻어먹었다. 먹으면서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뭔가. 삶은 왜 이렇게 완성되지 못하는 것인가. 신학교 입학 이래로 시 한편 못 써보고. 시를 못 써 생긴 병도 아니면서 시 생각이 났다.


아내가 사모님께 살림을 새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경건(敬虔)’이란 말이 떠올랐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새로 배우고 싶었다. 나의 모든 신심(信心)과 나의 모든 공경과 나의 모든 정성을. 그런데 정말 새로 배울 수는 있는 걸까? 시인의 시처럼, 사모님의 정결한 음식처럼, 연구와 연구, 창조와 창조, 몰두와 몰두, 아무도 봐주는 이 없이 이룬 두루미천남성 군락처럼, 구르는 돌,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기 자체의 결핍과 필요와 거추장스러움과 수고로움과 번거로움과 온갖 불편함 속에서 바로 그 불편함의 피치못할 열심이 피워낸 삶의 경건. 그 경건이 진한 색과 맛과 향을 자아내는 숙성된 효소와 고아낸 조청과 덖어낸 차로 빚어진 것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으므로 정말 거룩한 예배와 정결한 경건으로. 예배나 경건 따위 생각도 생색도 없는. 그러니 이토록 많은 의혹과 의심과 경계와 탐색과 탐심의 둘레에 둘러싸여 몸을 빼지 못하는 내가 저 명랑한 명랑의 둘레를 알기나 하겠는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제까짓 게 뭐라고. 어느새 나는 또 명랑의 그 환한 둘레에 낀 명랑의 동료가 되고 싶은 탐심이 든다. 기온이 급강하하며 한파경보가 내린 저녁, 시인 부부의 밭에 심기운 겨자씨 한 알이 이룬 명랑의 둘레가 사방팔방 공허의 공중을 부유하다 지친 새처럼 피로해져 찾아든 내게 다시 힘을 아낄 깃을 내주었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그런데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명랑’이란 도대체 뭘까? 묻지는 않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내 마음에서 이런 말씀이 들린 듯 했다. ‘외론 것은 외론 그대로 놔둬야지, 알려고 하지 마라.’ 이제부터 외론 나를 외론 그대로 나둬야지. 아야야! 명랑의 오로지 명랑함이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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