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를 홀로 걷는 한 마리 벌레에게


벌레 한 마리,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걷는다. 강원도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약 380km의 길을 열하루 동안 걷는다. 병상에 눕는 대신 걷는 것을 택한다. 걸어야 그 상처가 아물고 새로운 지혜를 얻겠기에….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르던 그 “지혜”(호크모트, 잠언 1:20)가 이번에는 잘린 허리 상처 난 길에서 그를 부른다. 최선을 다하고도 배신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을 지혜는 인적 드문 비무장지대로 불러낸다. 지혜는 하나님의 현신이다(욥기 28:27). 성지교회에서 가까운 인천에도 불러낼 곳이 많은데, 가까이 서울에도, 경기도 인근에 도 불러낼 곳이 없지 않은데, 지혜는 행정구역이 아닌, 여전히 긴장이 감도는 분단을 실감하게 하는 현장으로 그를 불러낸다.


그는 늘 어떤 어려움도 잘 참고 이겨내고 오히려 더 잘 선용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 일 뿐”(시편 22:6)이라고 하는 시편 시인의 한탄을 그에게서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늙은 시므온이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를 가리켜 “장차 이 아기는 성장한 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아들이 비방 받는 표징이 될 때 당신은 가슴이 칼에 찔리듯 할 것”(누가복음 2:35)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면서, 오히려 큰 위로가 이상하게 물밀 듯 밀려오기도 한다.


한희철 목사는 DMZ를 따라 걸으며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고 하지만, 그 DMZ의 열하루는 그가 뭘 간구하는 “기도”의 시공(時空)이었기보다는 분단의 역사 현장에서 그분과 만나 인간 역사와 하나님의 통치를 명상한 대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열하루 동안 DMZ를 걸으며 그에게 수납(受納)된 말씀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치환(置換)되기까지의 그 시간은 누구도 계산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받은 말씀을 그는 두고두고 음미하여 끝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우리의 문법으로 그 말씀을 전달해주기까지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하루 동안의 DMZ 380km 도보횡단은 그의 말대로 “무탈”(頉)로 끝나긴 했지만 “무리”(無理)한 시도였음이 틀림없다. 굴곡된 쾌락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학(自虐)으로, 혹은 무모한 반항(反抗)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계획이었는데, 그를 인도하시는 분께서는 당신의 종을 위해 한 천사를 시켜 로드맵을 준비시키신다. 한 마리 벌레와 동행하며 그 피조물을 지켜주시려는 그분의 첫 번째 배려는 바로 이 로드맵 작성으로 시작된다.


“지혜”가 보낸 이 로드맵 천사는 걷는 이가 걷기를 마칠 때까지 원격조정을 하며 지켜보고 있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작성하여 걷는 이에게 주고 줄곧 교신하는 그는 걷는 이에게 자기를 “컨트롤 타워”로 생각하라고 한다. “걸어서 휴전선”이란 로드맵을 보고 있으면, 별도의 지도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것 같다. 누구나 이것 하나 만으로도 휴전선 따라 도보 동서횡단을 시도해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각자가 자기의 한계를 고려하여 횡단기간을 20일 혹은 30일로 늘려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걷기 체험기를 읽으면서 나는 휴전선 동서횡단 도상실습을 함께 한다.


한 마리 벌레처럼 기어가는 길, 부디 그분이 불쌍히 여기시기를 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길, 그럴수록 그분이 동행하시기를 바란다. 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한계상황들, 길 끝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한 마리 벌레처럼」에서).


이 말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돕겠다.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 너를 속량한다’고 하셨다”(이사야 41:14).


그는 이사야의 이 신탁을 확신하고 있다. 그가 DMZ를 걸으면서, 이사야의 이 신탁 말고, 호세아의 비전도 공유했을까?


“그 날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와 언약을 맺고, 활과 칼을 꺾어버리며 땅에서 전쟁을 없애 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하겠다”(호세아 2:18).




아직 나는 이 책의 첫 부분을 읽고 있을 뿐이다. 그와 함께 걸어 본다. 그의 배낭에는 필기를 할 수 있는 세 권의 노트가 들어 있다. 들리는 말씀을 받아 적어야 하니까 노트는 넉넉해야 안심이 될 터. 가벼운 휴대용 노트북 생각은 안 했을까? 간단한 메모는 휴대폰의 노트패드를 이용할 생각도 안 하고? 하지만 더 편한 것이 수기노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도 걱정도 하던데, 민통선이나 비무장지대 근방에서는 휴대폰에 여러 지도가 뜨지 않는가? 민통선 부근에서 내비게이션 작동이 멈춘 경험은 내게도 있다. 그가 열하루 길을 걸으면서 같은 기간 동안 머물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은, 길을 떠나서 숙소를 찾는 것이 시간 낭비뿐 아니라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를 알기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는 여정이 나로서는 가장 긴장되는 대목이었다. 아마도 도보여행이었기에 어떤 변수를 미리 예상한 조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그는 열하루 동안 혼자 걷는 길에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고린도후서 11:26). 그러나 우리의 보행자는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며, 그들을 만나 도움과 위로와 격려를 받은 이야기를 군데군데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혼자 보낸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하는 것을 우리의 보행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낯선 길을 걷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 중 하나는 뜻밖의 만남이 허락된다는 것임을 배운 날이었다. 농막에서 물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나 정자에 앉아 심마니와 나눈 이야기는 분명 내 마음속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심마니의 자존심」)라고 말하면서 한껏 여유를 부린다.


나의 경우, 늙은 어머니가 혼자서 바깥출입을 하거나 먼 기차여행을 할 때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더 젊은 어머니였는데…. “어머니, 길을 나서시면 늘 조심하세요. 차도 조심, 사람도 조심….” “얘야 걱정마라. 밖에 나가면, 니 아나? 좋은 사람들뿐이 대이. 차는 비키 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친절하고, 바깥에 좋은 사람 들 숱하게 많은 거, 니 모르제? 걱정하지 마라. 내 잘 다녀 올끼구만.” 어머니가 목사 아들을 위로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한희철 목사의 글을 읽으니, 지금도 길을 나서면 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DMZ 부근에서는.아마도 그의 도보행군의 첫 번째 위협은 진부령에서 만난 폭우와 우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나로서는 힘겹게 고개를 넘는 한 나그네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제행사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말해본다. IMF 이후 중단되었던 대한항공 서울-텔아비브 노선이 10년 만인 2008년 9월에 재취항 하던 날, 나는 그 첫 비행기 시승에 초대받았고, 마침내 그 비행기는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착륙했다. 그때 살수차(撒水車)들이 우리가 타고 간 비행기를 뺑 둘러싸고 물 폭탄을 퍼붓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비행기 재취항과 첫 승객을 환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항 환영행사였다. 기내 방송이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가 탑승했던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것을 진압하려 소방차 가 출동한 줄 알고 놀랐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면서 한희철 목사가 진부령에서 겪은 폭우, 우박, 천둥, 번개는 얼마나 화려한 환영식이었을 까! 생각해본다. 출발부터 느낌이 좋다.


그는 걸으면서 땅을 발견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하늘과 땅 을]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세기 1:1-2). 진부령을 오를 때는 폭우와 우박과 천둥과 번개가 동반하는 물을 체험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진부령에서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위로 하늘을 바라보고, 아래로 땅을 딛고, 하나님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루악흐 엘로힘’ “하나님의 바람” “강한 바람”] 가르며 걷는다. 걷는 길 앞, 뒤, 왼쪽, 오른쪽으로 각종 열매가 달린 야생 식물, 각종 날짐승, 이미 그는 저 아득한 태초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그가 혼자서 DMZ 길을 한 마리 벌레처럼 외롭게 기어가는 고행(苦行)을 하는 동안, 그를 아끼고 염려하는 교회 성도들의 마음도 그들의 목사와 함께 DMZ 위를 걷고 있다. 더러는 시간이나 장소 등 만날 곳을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고, 미리 행선지를 알려 준 것도 아닌데, 목사가 걷는 길 위에 성지교회 성도들은 불쑥 불쑥 나타났다. 목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을 것이다. 장로들이, 권사들이 새벽 일찍 길을 떠나 그가 걷고 있을 것 같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그 모습에 순례자는 감격하고 만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하루 길을 걷는 동안 장로님은 여러 번 먼 길을 달려왔다. 폭우에 젖은 발을 위해 신발을 사가지고, 행여 쓰러질까 고기를 사주시려, 물집이 잡힌 발을 감싼 인민군식 발싸개를 보고는 안쓰러워,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숙소까지(「마지막 걸음」에서).


이렇게 고마울수가! 한 권사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왔기 때문에 잠시 동안의 동행자들은 길가 바닥에 앉아 그들의 목사와 함께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리기도 한다. 뭉클한 장면이다. 목사 의 배터리가 100퍼센트 충전되는 순간이기도 했으리라! 이렇게 듬뿍 사랑을 받게 해주시면서도 같은 목회 현장에서 동시에 아물지 않는 상처까지 함께 받게 하시는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 어느 교회나 목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성도도 있고, 본인들은 몰라도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은 언행이 목사에게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는 성도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니, 목사는 그들을 차별할 수가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다 가슴에 품으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꼬!


DMZ 횡단 도중 “평화의 댐”을 지나면서는 역대 한 정권의 위장된 안보를 회고하면서도, 세계 30여 개의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는 “평화의 종” 앞에서 우리의 순례자는 “평화의 댐” 일대를 내려다보며 “한 줌의 기도”를 바친다.


이 평화의 종 제작에 당시 정갑철 화천군수의 참여가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현지에서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 내외는 한희철 목사의 감신대 동기 목회자들과 함께 화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일행은 화천 교외의 한 리조트에서 1박을 했는데, 그 펜션 거실에는 소비에트연방 마지막 대통령,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로서 1990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09년 5월 그는 평화의 종 제막식에 귀빈으로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가 한국 중앙 정부의 초청이 아닌, 한 군수의 초청을 받고 평화의 종 제막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나, 이 행사에 참석하는 동안 화천의 한 평범한 펜션에서 숙박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정갑철 군수를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평화의 종 공원을 조성한 일을 격려하면서, 한편 평화의 종 제막식에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을 초청하여 동네 펜션에서 재우는 등 그런 중요한 인연이 있는데도, 화천군 안에 왜 ‘고르바초프 거리’ 혹은 ‘고르비 거리’ 하나 만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비무장지대 부근에는 순교자들이 있다. 순례자는 남북 분단과 순교 이야기, 그러나 망각된 이야기, 기억해 주는 이들마저 없어진 이야기를 안타깝게 찾는다. 1950년 6월 24일,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 북한엔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마지막 일대 검거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북한 정권이 볼 때 그들은 아주 위험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순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선 우익 엘리트들이 다 월남했는데도 그들은 가지 않았다. 그들은 공산정치를 방해하면서도 주민들의 정신적 지도자 노릇을 하 는 자가 많았다. 유사시 그들은 반공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었 다. 북한은 이 ‘잠재적 적’을 전쟁을 전개하기 전 대청소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았다. 연천, 철원, 김화, 금성 일대에서 목사, 전도사 장로들이 줄줄이 묶여갔다. 그리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에서).


상세한 역사가 망각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음을 우리의 순례자는 안타까워한다. 순례가 거의 끝날 무렵 순례자는 길 위에 나타난 구십 세의 노모를 만난다. 수고한 아들을 안아주려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한 아들의 개선을 축하하려고 길을 나선 아들의 어머니다. 당신이 남편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던 그 길 위에서의 모자상봉은 우리 독자들에게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순례자는 인적이 드문 길가 논 옆에서, 피사리를 하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순례자는 반가워서 먼저 말을 건다. 몰골이 말이 아닌 키다리 가 강원도 고성에서 걷기를 시작해서 임진각까지 가는 길이란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깜짝 놀란다. 그 중 한 할머니가 묻는다. “어디 아파요?” 그렇지! 아프지, 아프니까 집 떠나 걷고 있지. 피살이 하던 할머니는 걷는 이의 정곡을 찔렀다.


우리의 순례자가 순례의 끝에서 받은 마지막 질문은 “아직도 아프니?”라는 주님의 질문이다. 걷기를 끝낸 그에게 나도 묻고 싶다. 그 아픔이 어디 치유되라고 있는 것인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견디라는 아픔 아닌가! 여러 성도들이 그렇게 큰 사랑을 베푼 것은, 아니, 그보다도 주님께서 친히 열 하룻길을 특별히 동행해 주신 것은, 그 아픔 그대로 지니고 이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라는 격려가 아니던가!


마지막 날은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와 아들의 마중을 받는다. 아내는 장모의 사랑도 함께 운반한다. 순례자에게 제일 약한 부분이 가족이다. 가족 때문에 떳떳할 수 있고, 가족 때문에 비굴할 수도 있다. 가족 때문에 부르심을 거절할 수도 있다. 동시에 제일 강한 부분이 가족이기도 하다. 한희철 목사는 평생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단강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천에서 부름 받은 삶에 헌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힘이 뒷받침 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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