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15)


“음녀”도 “이방계집”도 아니에요


기존 언어에 동의하지 않고 말하는 것, 용기를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그 언어가 소수의 목소리일 때는 비난 받을 각오까지 한다. 힘의 위계질서에서 약자의 말은 묵살당하기 쉽다. 약자의 말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설명과 증명이 필요하다. 연일 쏟아지는 ‘미투’(Me too)운동을 보며 마음이 무겁다. 용감히 나서 잘못된 사회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응원하면서도, 돌덩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무겁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느껴서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의식 문제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할 공적인 자리가 여전히 권력사회의 강자인 남성중심의 편파적 권력구조가 빚어낸 불합리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인 검사 조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집단 내부의 크고 작은 권력은 여성을 소외시킨 남성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그렇다. 다수가 여자 성도들로 구성된 한국교회지만 제도권 교회의 권력 상층부는 학벌이나 재력을 동원한 남자들을 위한 권력 재편의 자리다. 건전하고 건강한 교회를 위해 여기저기 교계의 변화와 개선을 외치는 소수의 남녀 목소리들이 있지만, 제도권 교회의 힘 있는 남자들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들이 모아지고 또 모아지면, 더디더라도 변화의 새벽은 올 것이다.


말이 길어졌다. 본래 구약성경 〈잠언〉 본문 중에서 불편한 번역, 여성비하처럼 소비될만한 말이 발견되어 짚어보려 했다. 잠언은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하고 깨닫기 위해 지혜 추구를 목표하는 책이다. 잠언은 실용적이면서도 교육적이고 신앙적인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주님 경외’(잠언 1:7; 9:10)라는 신학화된 개념이 가장 센 억양이다. 지혜는 인간을 밝게 비추어 자신을 깨닫게 하는 것이어서 지혜 추구의 목소리가 잠언 전반부에서(1-9장) 유력하게 드러난다. 지혜가 진귀한 귀금속들보다 귀하고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고, 장수와 부귀, 즐거움, 행복, 그리고 ‘샬롬’, 곧 완전한 복지를 약속하기 때문이다(3:13-17). 더군다나 지혜는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를 조성하실 때, 최고의 조력자였다(3:19-20; 8:22-31). 이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의 부모(또는 지혜 선생)는 아들에게 지혜 추구를 촉구한다.



그런데 지혜 추구와 그 유익을 말하는 본문에서 불편한 낱말이 포착된다. “음녀”와 “이방계집”(2:16; 5:20 개역개정)이라는 말이다. 이 둘은 본래의 히브리말 뜻을 과도하게 해석한 번역자의 통념이 반영되었다. 한국기독교가 가장 많이 애독하는 성경을 비교해봤다.


지혜가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2:16, 개역개정)


지혜가 너를 음란한 여자에게서 건져주고

너를 꿰는 부정한 여자에게서 건져줄 것이다

(2:16, 새번역)


또 슬기는 너를 낯선 여자에게서,

매끄러운 말을 하는 낯모르는 여자에게서 구해준다.

(한국천주교 성경, 2:16)


개역개정과 새번역 성경은 다른 듯 비슷하지만, 천주교 성경은 많이 다르다. 그러면 “음녀”와 “이방계집”(개역개정), “음란한 여자”와 “부정한 여자”(새번역), “낯선 여자”와 “낯모르는 여자”(천주교 성경)가 어떻게 다른가? 사전적인 뜻을 따지기 전에 번역어의 뉘앙스 차이가 마음에 먼저 도착한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의 공통점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성향의 여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도 “음녀”의 뜻을 질문했다. 음란하고 부정한 여자나 창녀 또는 매춘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음녀”라는 말은 이미 음탕한 여자 정도의 성적인 의미로 수용되었기에 도덕적인 판단이 내려진 답변이다.


그러면 자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가 “음녀”인가? 아니다. “음녀”로 번역된 ‘잇샤 자라’는 ‘낯선(생소한) 여자’, ‘이방 여자’, ‘다른 여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여자’를 뜻한다. 천주교 성경이 히브리말을 그대로 번역한 셈이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또는 ‘타국의’, ‘다른’, ‘불법의, ‘금지된’ 이라는 히브리말 여성 형용사 ‘자라’가 구약 다른 본문에서 성적인 모티프로 사용된 예는 없다. 그럼에도 성적인 부도덕성을 함축한 말로 번역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후 17절에서 ‘낯선 여자’를 설명할 때,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2:17)라는 말에 근거한 것일까? 그렇다면 젊은 시절의 남편과 이혼한 모든 여자는 부정하고 음란하고, 음탕한 여자인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음녀”라는 번역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적인 모티프에 강세를 준 셈인데, “음녀의 입술”(5:3), “음녀”, “이방계집”(5:20), “음녀의 골목”(7:8)으로 반복된다. ‘창녀’를 언급하는 히브리말 ‘잇샤 조나’(6:26)라는 말이 있지만, 똑같이 “음녀”(개역개정)로 번역하여 ‘낯선 여자’(‘잇샤 자라’)와의 구별을 없앴다. 더군다나 단지 ‘한 남자의 아내’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내’(6:26)를 뜻하는 ‘에쉐트 이쉬’를 “음란한 여자”(새번역), “음란한 여인”(개역개정)으로 번역했다. 설령 이것이 시행 첫 소절의 “창녀”와 동의적인 평행관계를 고려한 것이라 해도, 본래 언어의 뜻을 삭제한 번역자의 해석이 강하게 적용된 셈이다.


그러나 “음녀”로 번역된 본문의 맥락은 지혜를 추구하고, 여호와 경외를 요청하면서(2:1-11), ‘악한 길’에 있는 남자와 패역을 말하는 남자에게서 지혜가 보호해 줄 것이라는(2:12-15) 조언의 문맥을 이어간다. “음녀”로 번역된 ‘잇샤 자라’(낯선 여자‘)는 합법적인 관계 밖에 있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허락되지 않은 금지된 관계로서, 다른 남자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또는 ‘금지된’ 이라는 말의 위험성이 레위기 본문에서도 발견된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성막에서 여호와가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여호와의 불이 나와 죽었다(레위기10:1). 금지된 “다른” 불은 생명을 앗아갈 정도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부모(또는 지혜 선생)가 아들을 교훈하며 “남의 아내와 통간 하는 자”(7:29), “여인과 간음하는 자”(7:32)를 언급한 것처럼, 합법적인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의 관계가 가져올 위험성을 언급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음녀”로 번역하면, 조언을 듣는 아들, 혹은 남자는 여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개념화시키기 쉽다. 또 신앙의 독자가 “음녀”를 창녀로 이해하면, 이 구절을 돈으로 거래되는 성관계 금지 교훈으로만 축소시켜 오해할 수 있다.


“이방계집”(2:16; 5:20, 개역개정)의 번역도 문제다. 여성비하적인 표현이다. “계집”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러면 본래 히브리말도 여자를 낮추는 저속한 말로 기록되었나? 아니다. “음녀”라고 번역된 말이 본래 자기 아내를 제외한 합법적인 관계 밖의 여자, 낯선 여자, 혹은 생소한 타국인 여자를 일컫는 것처럼, “이방계집”은 히브리말 ‘노흐리야’라는 말로서 ‘낯선’, ‘이방의’, ‘타국의’라는 뜻의 여성 형용사다. 첫 소절의 ‘여자’(‘잇샤’)가 생략되었지만, 단지 ‘낯선 여자’, 또는 ‘이방 여자’라는 말이다. 이방 여자를 낮잡아 보는 속어, “계집”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방계집”이라는 말은 타국인 여자를 낮추어 대해도 괜찮은 것처럼 생각되지 않겠는가? 언어 사용과 표현에는 통념이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어서 암암리에 권력관계로 묶이거나 폭력이 되기도 한다. 언어 선택의 신중함과 적실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음녀”와 “이방계집”이라는 말이 이후 개정작업에서 논의되길 바란다. 단지 이 두 개의 낱말 이외에도 다양한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의 장구한 역사를 거쳐 우리말 성경에 이르기까지 번역의 과정에서 말 못할 사정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구약의 오경이 기록되었을 시점부터 지금까지 35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초의 기록 언어와 지금 언어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그 간격을 번역으로 메꾸는 것은 간단치 않다. 성경을 현재의 수용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문제는 다양한 간격과 무게를 아는 학자들의 치밀한 연구뿐만 아니라 남녀학자들의 동등한 협업을 통해 좀 더 섬세하고 세심한 성경번역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저자, 대학원과 아카데미에서 구약 지혜서를 강의하며 신학과 현실의 밀착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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