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7)

마르다, 마르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누가복음 10:38-42).

 

“저 여우같은 계집애, 난 눈코 뜰 새 없는데 선생님 턱 밑에 앉아서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꼴 좀 보라지. 선생님 좋아하는 제 속 모르는 바 아니고 원래 물에 손만 담그면 어찌되는 줄로 아는 얌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열댓 명 손님을 나 혼자서 치우라니… 선생님도 저렇게 눈치가 없으실까? 한 마디 해야만….”

부엌살림을 해 본 여자라면 마르다와 마리아 얘기에서 마르다의 편이 되지 않을 사람은 없겠다. 그래서 벼르고 벼르다 성미대로 한 말씀 올렸는데, 예수님 대답이 천연덕스러웠다.

“마르다, 마르다, 저녁이야 밥하고 김치면 되지 뭘 그리 야단인가? 또 저녁밥 좀 늦는다고 누가 고꾸라지나?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말씀이야 쉽죠. 선생님 맘 누가 모를라구요.) 마르다의 입이 한 자나 나온다. 그제서야 마리아는 제 정신이 들어 후닥닥 부엌으로 내려갔을 테고.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Christus_bei_Maria_und_Martha_(fl%C3%A4misch).jpg)

얘기를 비약해 보자. 남편과 자녀 시중이며 집안 살림에 정신없고 물가 걱정에 바쁜 주부들에게 사회 일인 자유, 평화, 정치, 세계, 경제가 귀에 들어오기 힘들다. 가족들 건강하고 집안에 걱정이 없는 한, 쌀과 연탄 그리고 얼마의 금붙이와 곗돈이면 저으기 안심이라고 한다면, 주부들에 대한 지나친 멸시일까?

그러나 때로는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일 경우가 있다. 주님을 모시면 찬거리 걱정보다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와 사랑과 영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요긴하다.

주님의 말씀대로 시대의 징조를 주부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가 놀라는 사건이 있어도 그것은 남의 땅 얘기라고 외면하면 안 된다. 언제나 역사 속에 사건은 있게 마련이고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도 있다. 이를 보고 십자가를 진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하고 돌아서서는 안 된다. 십자가 위의 죽음이 우리의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단죄하고 벌을 내릴지도 모른다.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우리가 참회하고 속죄하지 않았기에 주님의 정의가 더 큰 벌을 내린다면 남정네에게는 죽음이, 여인들에게는 수치가 있을 따름이다. 지금 이 시대의 모든 사건이 우리의 운명을 예고하는 하느님의 표였음을 깨달을 때 소스라치겠지만 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믿음으로 여인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자기들의 식구들을 다시 만났다”(히브리서 11:35)는 말씀이 있다. 경건한 여인들의 기도와 가난한 자의 속죄와 울부짖음이 주님의 손길을 가로막았던 그 역사의 죄악들을 새삼스럽게 한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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