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5) 

자기야나 사실 민폐 캐릭터야

 

때 아닌 고백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신혼여행을 출발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요. 이제 막 짐을 붙이려는 순간에 제 핸드폰이 없어진 겁니다. 덤벙덤벙하는 성격이긴 해도 핸드폰은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는데요. 아내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누나처럼 침착하게 사태를 해결하고자 나섰습니다. 은연중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가방을 먼저 뒤졌습니다. 아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가방 곳곳에 청진기를 대어 보았으나 허탕이었습니다. 지나온 곳을 역추적해 뒤지다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온갖 생각들이 스쳤습니다. ‘핸드폰 없어도 출발은 할 수 있으니까.’ ‘카메라도 없는데 망했네, 다녀와서 수습할 일도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 아내가 건 전화를 누군가 받았습니다. 환전센터 직원. , 환전센터에 놓고 왔구나! 한겨울에 땀이 주루룩 흘렀습니다. 핸드폰을 찾아 짐을 붙이는 곳으로 돌아와 아내를 만났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무서웠습니다.

 

** 아내는 이 일을 자손대대로 남기겠다며 일기에 적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으면서, 다소 긴장했는지 범진 씨는 휴대폰을 잠시(?) 잃어버리는 실수를 했다. 한참 주머니를 뒤지고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고 하다가 그 폰이 결국 아까 환전을 하던 곳에 두고 왔단 걸 알았다. 헐레벌떡 가서 휴대폰을 손에 쥐고 돌아오는 그이를 보면서, 땀을 흠뻑 쏟고 긴장하던, 머쓱하게 웃던 그이 범진 씨를 보면서 웃음이 터져서 한참 웃었네. 흐흐. 짜증이 날 법도한데 그러지 않았던 걸 보면 아마도 콩깍지가 씌워져서 그랬나보다. 그래, 하긴 그랬으니 결혼도 하게 된 거겠지.

나도 민망하게 웃으며 자기야나 사실 민폐 캐릭터야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내가 빵 터졌습니다. 해외 선교팀을 몇 차례 리드했던 베테랑의 그 호탕함에, 미안한 마음을 묻었습니다.

 

 

겉으론 그래 보이지 않지만(?) 생각해보니 덤벙덤벙한 성격 탓에 민폐 캐릭터가 된 적이 좀 있습니다. 3년 전쯤 지리산 갔을 때가 절정이었는데요. 둘레길이라 쉽다는 친구의 꼬드김으로 새해 첫날을 맞아 12일 천왕봉 코스로 지리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눈이 허리까지 차는 곳도 있었으나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둘레길이라고 속인 친구가 야속하지 않을 정도로. 세 시간쯤 걸었을까요, 계속 걷다가 잠을 청할 중간 목적지(대피소)까지 약 3킬로 남았다는 표지석이 보였습니다. 남은 체력을 감지해봤을 때 보폭을 좀 늘려도 될 것 같았습니다. 성큼성큼 일행들을 앞질렀습니다.

5분도 안되어 퍼지고 말았습니다. 남은 거리는 경사가 꽤 가파렀던 겁니다. 밧줄을 붙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뜩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놓아버릴까?’ 군대 유격훈련 당시 두줄타기(팔과 다리 쪽 두 줄을 이용해 낭떠러지를 건너는 훈련)를 하다가도 그랬었지요. 팔에 힘이 풀려 '놓아버릴까' 했습니다. 밑에서 대대장님이 조마조마 했는지 범진아 할 수 있어! 파이팅!!” 외쳤습니다. 나는 그것이 응원이 아니라 협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협박 덕에 무시히 건넜으나, 나 때문에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해 줄줄이 매달려있던 병사들에게 한없이 미안하였습니다.

! 너 언제부터 이렇게 민폐캐릭터였냐?!”

밧줄을 붙잡고 있다가 허벅지에 쥐가 났어요. 다리를 주무르며 친구 녀석이 던진 말입니다. 중학교 동창이니 파란만장했던 제 흑역사(학교 ''이었답니다. 후훗. -_-)를 아는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좀 비참하더군요. 국민약골 이윤석이 겹쳤습니다. 해가 저물자 바람은 더 거세지고,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리던 바람 소리가 제 마음에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놓아버릴까?’

캐릭터 이상하게 잡고 왔네.”

친구가 툴툴 거리며 밀어주기 시작합니다. 난코스를 겨우 통과하고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예상시간을 두세 시간 훌쩍 넘긴 시각. 웃음 코드로 넘겨주는 일행들이 고마웠습니다. 저에겐 잠깐의 교만이 만들어낸 참극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천왕봉까지의 다섯 시간 코스는 무리 없이 소화했습니다. 한발 한발, 내 걸음대로, 내 보폭을 유지하는 게 등산의 기본이라는 걸 터득한 거죠.

민폐를 한껏 끼치고 나서야 이렇게 정신을 차리니 큰일입니다. 네덜란드 항공을 타고 스키폴공항에 대기중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하이네켄 등 마구마구 집어넣어 속이 울렁거려 혼이 났습니다. 단전호흡을 배워놓지 않았다면아마 함께한 승객들에게 또 민폐를 끼쳤겠지요. 이제 막 신혼여행의 첫 날입니다. 민폐 없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