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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by 한종호 2015. 2. 11.

한희철의 두런두런(19)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흐린 조명

처음엔 흐린 조명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앉으면 앞사람 등에 코가 닿을 듯 작은 방, 가운데 달려 있던 백열전등 대신 형광등을 앞뒤로 두 개 달아 밝혔는데도 교우들은 성경 찬송을 잘 찾질 못했다.

그 사실을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요, 맨 처음부터 시작하죠.’ 얼마간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지만, 바쁜 농사일을 두고 염태고개 너머에 있는 먼 교회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것이다.

맨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한다. 애정과 끈기 잃지 않으며.

 

쓸데 즉은 얘기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쳤는데, 경림이가 빨리 집으로 가잔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가보면 안다 하며 대답을 안 한다.

반장님 생일이었다. 작은 케이크가 마련된 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둘러앉아 잠시 예배를 드리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반장님은 멋쩍은 웃음으로 촛불을 껐고, 모두들 박수를 쳤다.

이어 선물 전달. 맏아들 진성이는 케이크를, 동생 순림이는 라이터를, 진관이와 막내 경림이는 담배 두 갑씩을 선물로 드렸다. 애써 웃음을 감췄지만 반장님은 무척 기뻐하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버이 노래를 부를 때 함께 했던 준이 엄마가 눈물을 닦았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각자의 어깨에 걸렸던 하루의 피로가 마주하는 웃음 속에 사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 가족의 단란함과 정겨움이다.

“쓸데 즉은 얘기를 해 미안하다”면서 반장님은 약주 한 잔을 이유 삼아 많은 얘기를 했다. “쓸데없다” 하지 않고 “쓸데즉다”하는 말이 신선했다. 어쩜 그 말은 도시인들이 갖지 못한 농부들의 정직하고 긍정적인 마음 아닐까?

교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반장님은 여러 가지로 막 시작하는 교회 걱정을 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런 마음이 따뜻하고 힘이 된다. 이 곳 삶에 조금씩 뿌리내림을 느낀다. 척박한 땅일수록 더디긴 하겠지만 깊게 뿌리 내려야지.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유난히 별이 밝은 밤이었다.

 

배웅

다녀가는 손님을 배웅키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더니 동네 아이들이 거의 다 나와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일하러 나갔던 마을 언니가 모처럼 집에 들렀다 가는 길, 배웅하러 나온 것이다.

한 사람이 다녀가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와 배웅하는 것도 그랬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온통 그 언니에게 쏠려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안다. 아이들은 모처럼 다녀가는 동네 언니의 모습 속에서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옷차림에서 말투 그리고 표정까지 그 모든 것은 도시에서 묻어온 것이며 얼마 후 자신들도 배울 것이기에 눈여겨 두는 것이다.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도시의 공장으로 나가는 단강의 아이들. 그렇게 농촌은 젊은이들이 등진 땅이 되어 간다. 이 큰 벽 앞에 난 무얼 할 수 있을지.

 


(출처: 위키피디아)

 

엄마 소

저녁엔 그러려니 했는데 한밤중까지,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깼을 때까지 엄마소는 울었다. 담벼락에 기대서서 지켜 본 엄마소의 커다란 두 눈엔 눈물 대신 서글픔이 잔뜩 고였다.

전날 송아지를 팔았단다. 낳자마자 혓바닥이 아프도록 핥아 젖은 털을 말려줬던 새끼. 쿡쿡 머리로 들이받으며 아프게 젖을 빨아도 귀엽기만 했던, 그러다가 배가 부르면 곁에 누워 햇볕 쬐며 잠들던 새끼. 낳은 지가 얼마라고 벌써 새끼를 팔았나.

산꼭대기 새로 개간한, 그 딱딱하고 거친 땅. 힘에 부치면 매를 맞아가며 하루 종일 갈았어도 싫은 맘은 정말 없었는데. 송아지가 워낙 튼실해 시세보다 몇 만원 더 받았다고 좋아하는 주인의 웃음.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얼마 전, 시골이 싫다며 세 살 난 아들과 이제 꼭 백일이 된 젖먹이 어린 딸을 버려두고 집을 나간 아기 엄만 어디서 울었을까. 몇 밤을 울었을까. 울었을까.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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