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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관의 '노래 신학'

나처럼 사는 건

by 다니엘심 2015. 1. 1.

홍순관의 노래 신학(1)

나처럼 사는 건

 

한희철, 홍순관 글 / 한경수 곡

(1993년 만듦,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음반수록)

 

 

들의 꽃이

산의 나무가 가르쳐줬어요.

그 흔한 꽃이 산의 나무가

가르쳐줬어요.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강아지풀도 흔들리고 있어요 바람에 음~

 

저 긴 강이

넓은 바다가 가르쳐 줬어요

세월의 강이 침묵의 바다가

가르쳐 줬어요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강아지풀도 흔들리고 있어요 바람에 음~

 

 

 

 

주어진 삶을 산다는 것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것은 매여 있다거나, 한정된 장소, 정해진 운명, 일상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요, 창조의 숨을 간직한 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세상이 모르는 사이, 땅과 물을 건강하게 만들고 있지요. 조그만 생명체들이 제 숨을 쉬지 않게 된다면, 땅도 물도 망가지고 이내 썩게 됩니다.

 

생각하면, 이 지구상에서 제 숨을 쉬지 않고 사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는듯합니다. 착취와 약탈과 파괴를 일상으로 사는 인간은 잔인하고 포악한 짓에 빠져 자신들이 하는 짓을 도무지 모르고 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나쁜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사회에 사는 모두를 말합니다. 심각한 문제는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망각과 폭력의 중독성에 있습니다.

 

폭력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인간의 법과 제도와 룰 속에서도 얼마든지 약자에게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무한 경쟁이라는 너무나 폭력적인 시스템은 언뜻, 마치 민주주의나 자유를 연상케 합니다. 가리지 말고, 층을 두지 말고 마음대로 경쟁을 하라는 것이니까요. 예컨대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대결이 이치에 맞는 경쟁일 리가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겨뤄보라면 공정한 경쟁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강대국과 약소국이 자본을 무기로 하는 경쟁은 무한폭력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제 숨더 잘 쉬려고 남의 숨마저 교묘히 빼앗아 쉬는 잔인한 구도입니다.

 

제 숨 쉬지 않는 세상은 평화가 깨진 세상입니다. 더불어 살라는 창조의 숨이 멎어지면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살 수 없게 되겠지요. 그것은 창조를 행하신 그 분의 뜻이 아니요, 인간의 문명으로 인한 참담한 결과일 테지요. 그것은 자본주의의 스포츠카를 타고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어리석음의 끝일 테지요. 대량생산과 마구잡이 소비로 이어지는 쓰레기 만들기와, 과학기술의 오만함으로 빚어지는 유전자 조작은 지구와 인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발전과 혜택이라는 유혹의 문패를 걸어놓고 온갖 형태의 스피드를 추구하지만, 대형마켓과 백화점에선 물건과 사람으로, 고속도로에서는 각종 자동차들로 꽉꽉 막혀 꼼짝도 못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게 됩니다. 온갖 오물을 흘려보내며 썩을 시간도 주지 않는 잔인한 횡포는 인간만이 행하는 물에 대한 야만이요, 땅에 대한 만행입니다.

 

흙으로 지어져 그 분의 생기()를 받아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갈 존재인 인간이 어떤 인생을 살아야할지는 조금만 묵상을 해봐도 알 일입니다. 끝내 종교의 행위만 드러내고, 만드신(주신) 이의 목적을 잃는다면,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참담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들의 꽃이 산의 나무가 말합니다. 세월의 강이 침묵의 바다가 들려줍니다. 제 숨 쉬고 살라고 합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자연만물이 (아직은) 입을 완전히 다물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1991년 즈음입니다. 집으로 <얘기마을>이라는 쪽지 글이 꼬박꼬박 배달되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단강교회가 매주 발행하는 주보였습니다. 맨 앞장에는 늘 시가 있었고 예배순서와 성도들의 서툰 기도 그리고 뒷장에는 교회와 마을소식까지, 손으로 쓴 글이 빼곡히 실려 있었지요. 삐뚤고 정감어린 한희철 목사의 글씨는 검소하고도 알뜰한 살림 같았습니다. 단강마을 사람들의 가감 없고 꾸밈없는 일기였습니다. 목양일념牧羊一念, 양떼를 살피는 선한 목자의 연민이 담긴 애가哀歌였습니다. 눈물은 글씨를 자주 젖게 하였습니다. 거기 앞에 실렸던 이 글(1절 노랫말)은 단아하고 깔끔하여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서정적이면서 회화적이었고, 고요하면서 풍요로웠습니다.

 

한경수의 솜씨로 만들어진 피아노 선율은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들판이 일렁입니다. 음악이 그림이 됩니다. 높낮이의 폭이 적고 몰아치는 대목도 없으며 절정도 없는, 게다가 다소 긴 이 노래는 그만그만한 인생들을 상징하지만 잠잠히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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