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6)


우리는 인간의 
자식

 

기생수는 괴생명체가 인간의 뇌를 지배해,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살며, 다른 순전한 인간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간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그중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기생생물 중 하나인 타미야 료코의 임신입니다. ‘료코라는 여성인간의 몸을 잠식한 기생생물과 남성인간의 몸을 잠식한 기생생물의 생식활동을 통해 태아가 생겨난 겁니다. 



료코는 임신을 계기로, 인간이라는 생물과 인간사회에 관한 학습을 해갑니다. 다른 기생생물들이 무자비하게 인간을 학살하는 중에도 료코는 공존을 모색할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생존을 위한 것일 뿐, 우리가 모성애라 부르는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 본인도 인간 연구를 위해 아이를 낳는데요. 사랑이 고파 우는 갓난아이에게 닥쳐라고 한마디 할 뿐입니다. 뿐만 인가요. 인간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아기를 방패삼기도 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그저 자신의 아기를 고깃덩어리나 실험용쥐 정도로 여기던 기생생물 료코’. 그녀의 변화가 기생수최대의 반전 중 하나입니다. 기생생물 중 가장 학습능력이 뛰어나 인간사회는 물론 기생생물무리도 지배할 수 있었던 끝판왕급악당의 회심이랄까요? 그가 실험용으로 낳은 아기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료코는 어느 날, 전투력으로는 모두를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아기를 인간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합니다. 오른손에 기생생물 오른쪽이와 공존하고 있는 주인공 신이치에게 아이를 부탁하면서요.

신이치... 이 아이는... 결국 (연구물로) 쓸 수 없었어.. 아무 이상도 없는 인간의 아기다. 인간의 손으로 평범하게 길러줘...”

 

자신의 생존, 자신의 전투력을 파괴하면서까지 한낱 먹잇감이었던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의 오랜 연구 결과가 힌트가 될 듯합니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나는 뭣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한 가지 의문이 풀리면 또 다음... 의문이 솟아올랐지... 기원을 찾아, 끝을 찾아, 계속 걸어왔어.”


그리고 인간이 들으면 미치고 팔짝 뛸 그녀의 한마디
.

기생생물과 인간은 한 가족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무도한 기생생물과 인간이 한 가족이라니요
. 인간을 고깃덩어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기생생물이, “우리는 인간의 자식일 뿐이라니 얼마나 황당합니까. 그런데 그 순간, 저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국전쟁의 역사적 기록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와 당혹스러웠습니다. 인간 역사는 원래 잔인무도하게 동족을 살해해온 역사 아니었던가요. 그럼에도 사과나 회개 없이 뻔뻔하게 만물의 영장운운하는 게 인간의 잔인함 아닌가요.

자랑스러운 태극기위대한 수령님찬양하느라 동족상잔의 피 흥건한 역사는 영웅담에 가려지고, 존엄한 태극기와 수령님을 위해서라면 그깟 실험용 인간들은 고깃덩어리처럼 분해되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 기생생물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거지요... 지난 세 번째 글('다이어트가 하고 싶을 때')에서 썼듯, 생명을 지키라는 창조명령을 어기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한 듯합니다.




동물원

저자
토머스 프렌치 지음
출판사
에이도스 | 2011-07-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피플](People) 선정 '이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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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밀착 취재로 쓰인 동물원(토머스 프렌치 지음)에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생명을 떠받드는 동물들의 사연으로 가득합니다. 그중 이제 갓 새끼를 낳아 당황하고 있는 코끼리 엘리의 이야기를 조금 길게 가져와봅니다.

새끼는 벌써 배가 고픈지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엘 리가 자기 새끼를 가까이 오게 해 젖을 먹일 수 있도록 사육사들이 돕는 데 실패하면, 어미와 새끼가 유대를 형성할 기회는 영영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다. 브라이언과 스티브는 깨끗한 우리로 엘리를 옮긴 뒤 나일론끈으로 엘리를 창살 하나에 묶었다. 아울러 새끼의 몸통 주변에 안전장치를 두른 뒤 여기에 다른 끈을 연결하여, 엘리가 난폭해질 경우 새끼를 다시 안전하게 끌어당길 수 있게 했다. 엘리는 좀 어리둥절한 듯했다. 눈을 크게 뜨더니, 새끼가 가까이 다가오자, 코를 휘휘 저어 새끼를 내쫓으려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모유가 끝이 나고,

이미 엘리는 최고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제 앞으로 자신이 어떤 엄마가 될지 넌지시 보여주는 중이었다. 갓 태어난 새끼가 생애 최초의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자, 엘리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건초 쪽으로 코를 뻗더니 간이 담요처럼 새끼를 덮어 주었다. 그러고는 녀석이 다시 자기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새끼 곁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새로운 생명은 지속된다. 생명은 논쟁이 아니다. 배고픔에 떨며 이 세상에 나온 생명을 어느 누가 밀어낼 수 있을까.

 

아픕니다. 기생생물도 알고, 동물도 아는 생명의 절대불변 존엄을, 인간만이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 같아서요.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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