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7)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설교하는 생계형 목회자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새벽기도와 금요철야를 참으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때 제가 앉았던 자리, 들었던 말씀들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무릎을 꿇고 경청했던 목사님의 설교 중에 어린 제 가슴에 깊이 각인된 두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 안에서의 형제됨이 혈육의 형제됨보다 더 진하다”는 말씀과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형제가 없이 외동아들로 컸던 저에게 “신앙 안에서의 형제됨이 혈육의 형제됨보다 더 진하다”는 말씀은 정말 생수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주인으로 고백하는 이 모든 사람들이 나의 형제이고 자매이고, 가족이다 라는 생각은 어린 저를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에는 혈육의 형제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가족인데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자주 선포하신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저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그 멋진 초대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서 재연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재연되는 현장의 한 복판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어떻게 초대교회로 변해가는지를 설레임 가운데 기대하며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교회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교회는 일 년 내내 참으로 분주했습니다. 새해부터 시작되는 사십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봄, 가을에는 대각성전도집회와 총동원전도주일, 여름과 겨울에는 수련회와 단기선교,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칸타타와 성극, 그리고 사순절과 대림절에 있는 금식 등을 비롯한 경건생활훈련 등, 교회는 잠시의 쉼도 없이 교인들을 모이게 하고 훈련시키며 사역에 매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로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저를 감동시킨 그 말씀을 계속하여 강단에서 반복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멘”으로 화답하던 저는 언젠가부터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동일한 말씀을 하시는데, 왜 교회는 초대교회로 변화되지 않을까?”

6학년 가을의 어느 주일 오후,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한 그 고민을 더 이상 품을 수가 없어서 당회장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우리 교회를 초대교회로 안 만드시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목사님께서 결단하시면 교회를 금방이라도 초대교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질문에 목사님께서는 정말 어려운 이야기로 응수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때는 노예제사회이고,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이야기입니다. 13살 된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한참을 설명하시던 목사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초대교회가 안 돼.”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소리를 지르면서 당회장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럼, 초대교회가 안 된다고 설교를 하셔야죠.”

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아멘으로 응답했던 저는 그 말씀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어지기를 정말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초대교회에 대한 그 원대한 비전을 심어주시고, 이 시대에 재연될 것을 간절히 소망케 하신 그 목사님이,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아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했던 제 앞에서 자신의 말씀을 전면 부정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자신도 믿지 않는 것을 선포하시는 목사님에게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신앙의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중, 고등부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목사님의 설교, 분반 공부 시간에 교육하시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아멘으로 응답했던 저는 이제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목사님은(선생님은) 자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믿으실까.’

이 시대에 초대교회가 불가능하다고 속으로는 확신하면서도 가능할 것처럼 선포하는 목회자,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설교하신 목사님으로 인해 저는 큰 실족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런 분이 한 두 분이 아님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분을 총칭하여 생계형 목사라 명명할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도 믿지 않지만 목회자로서의 맡겨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교회 안에 존재하는 큰 비극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 자신도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말씀 앞에 깨어 있지 못하면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 그가 바로 나라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깨어 살아가고자 애쓰게 됩니다.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선포하는 생계형 목사, 먹고 살기 위해서 목회를 연극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깨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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