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4)

 

그리스도의 함장수들

 

 

한밤 중에 “신랑이다! 마중하러 나가라!”(마태복음 25:1-13).

 

“함 사려! 함 사!” 예식장들이 분주해지는 가을철이면 우이동 골짜기 해묵은 골목에서는 간간이 함 들어오는 목청이 쩌렁쩌렁 초저녁잠을 깨우는 일이 있다. 스무 해를 눌러 사는 골목이라 주부들은 남의 집 숟가락까지 세고 있다.

 

“무슨 소란일까?” “무슨 소란은요? 오늘 구 선생댁 은경이 함 들어오는 소리라구요.” “아이고, 누가 데려가는지 복도 많겠네. 이쁘고 참한 색시지…….” “이 동네서 태어나고 자랐지요. 코흘리개 적부터 보아 왔으니까요. 걔가 빵기를 업어 주던 때가 엊그젠데…….” 터무니없는 억지라도 함장수의 요구는 들어주어야만 골목은 다시 고요히 잠결에 빠져 간다.

 

 


<함들이기, http://blog.naver.com/ryugane07>

 

마태복음의 본문을 두고 흔히 하는 해석으로는, 멍청한 처녀들은 등잔 껍데기만 들고 있었고 똑똑한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그득히 담아 두고 있었다고, 그래서 저 처녀들은 신앙만 있는 신도들, 이 처녀들은 신앙과 애덕도 갖춘 신도들을 가리키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는 분명히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 등불과 함께 그릇에 기름도 담아 갖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지금 팔레스티나에서 발굴되는 조막만한 가정용 등잔들을 본다면 당장 이해가 간다. 주부가 들러리들의 등잔마다 기름을 가득 채워 주지만 “신랑이 늦어지고” “접시가 들썩거린다”는 입방아도 시들해지면 처녀들이 “졸다가 자다가 자다가 졸다가” 하는 새에 등불만 마냥 타오르고 기름은 떨어져 간다.

 

주님이 슬기롭다고 하신 처녀들은, 그러니까 ‘스패어’ 기름 그릇을 지닌 셈인데 우리네 50년대 지프차 뒤에 매달려 있던 기름통을 연상시킨다. 요새는 오리도 못 가서 주유소가 있으니까 그럴 걱정이 없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장거리 시골길을 뛰려면 필히 휘발유통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주님의 시각은 늘 사람을 놀라 자빠지게 만든다. 함장수의 고함, “보라, 신랑이다!”라는 고함은 대개 한밤중에 터져 나온다. 그리고서는 골목어귀에 있는 기름집에 석유 사러 갈 틈도 주지 않는다.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급유할 여지도 주지 않는 절박함에 문제가 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상(日常)의 세계를 한순간에 때려 부순다. 나른하고 포근한 안정과 평온을 순식간에 뒤집어엎는다. 대개는 얼떨결에 옷 매무시 다듬을 틈도 없이, 또는 벌거벗은 채로, 맨발로 초라한 행색에 이승을 뛰쳐나가야 한다.

 

허망하게 죽어가는 모습들이나 계절의 변화로 나무들이 졸가리만 암기고 단풍마저 지고 나면 젊은 사람들도 생명의 나약함과 인생의 종말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은 결국 죽자고 태어난 것일까?” 의문도 던져 본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비유에 의하면, 사람은 죽자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자고, 하느님 잔치에서 잘 먹고 잘살자고 태어난 듯하다.

 

죽음은 저승사자가 낫을 들고 와서 우리 목숨을 수수목대처럼 베어가는 심판이 아니라, “신랑이다! 마중 나가라!”는 함장수의 반가운 목청이다. 또 사후에 벌어지는 장면은, 베르디 레퀴엠의 “디에스 이레 디에스 일라!(저 의노의 날에)”에 나오는 공포의 아비규환이 아니고 신랑을 모시고 쿵작거리며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결혼식 피로연이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로 비롯된 우리의 신앙이 인생의 오랜 여정을 위해 충분히 마련된 기름으로 밤새 타오르라는 타이름만 유념한다면, 소란스럽게 우리의 초저녁잠을 깨워 놓는 그리스도의 함장수들을 박대하지만 않는다면, 하늘나라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잔치이리라.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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