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 음악정담(14)

 

베토벤의 짓물러진 엉덩이

 

 

베토벤하면 사람들은 영웅과 천재 등의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에게 그런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걸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순간, 그도 우리처럼 아프고, 괴롭고, 실수하고, 돈에 쪼잔 했던 인간이었다는 구체성은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천재와 불굴의 영웅 베토벤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그를 칭송하며 살아가느냐, 아니면 더도 덜도 아닌 인간 베토벤을 받아들이고 그와 ‘친구 먹으며’ 살아가느냐! 이 짧은 글에서 베토벤의 인간됨에 대해 두루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다른 인간적 면모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그가 수십 년 동안 달고 살았던 지긋지긋했던 병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그에게 들러붙어있는 영웅이니 천재니 하는 허상이 아니라 그의 고통이나 짜증이나 괴로움에 한 발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토벤 이전 음악가들인 바흐, 비발디, 헨델, 하이든과 같은 작곡가들의 경우는 굳이 저들이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바흐를 실명케 한 영국인 돌팔이(?) 의사 테일러가 헨델의 눈도 멀게 했다는 사실 앞에서 음모론적 시각을 억누르는 일이 쉽지 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가의 질병에 열렬한 애호가가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럼에도 저들의 질병은 베토벤만큼은 작품과 긴밀한 연관성이 입증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를 제외한 베토벤 이전의 작곡가들은 작품에 자신의 감정이나 철학을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를 고용한 왕이나 귀족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달랐습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고민과 아픔과 분노와 희망을 자기 작품에 담기 위해 귀족으로부터 독립한 최초의 음악가였습니다. 너무 단정적이라 느낄지 모르겠습니다만, 베토벤 이전의 음악은 귀족들을 위한 가벼운 여흥이란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이 더 이상 음악이 귀족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왕과 귀족의 입맛에 맞는 곡을 평생 작곡하지 않았고, 저들을 위한 연주도 거부했습니다.

 

베토벤도 곡을 귀족에게 헌정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두 감사와 우정의 표시였지 복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베토벤은 귀족들에게 복종하는 대가로 편안한 삶을 보장받는 대신 독립을 선택하고 불편을 감수했습니다. 때문에 베토벤을 제대로 들으려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음악만 들어서는 베토벤 음악의 정수에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베토벤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귀머거리가 되고서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심오한 음악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음악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조차도 그를 절망케 했던 귓병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군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베토벤이 사고로 졸지에 실명을 한 사람처럼 귀가 갑자기 멀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자기 귀에 이상 징후를 처음 느낀 것은 26살이었는데요. 그때부터 베토벤은 여름이면 귀를 치료하기 위해 빈 근교의 온천지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베토벤의 난청 초기 증상은 이명이 동반된 것이었는데, 특히 고주파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이런 증상은 난청 초기에만 나타났지만 말입니다. 때문에 전문의들은 베토벤의 난청 증상이 외우질환이었다가 후기로 가면서 제8신경 퇴행이 생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엇갈립니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이던 1802년에도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갔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죽을 결심을 하고서 유서를 남깁니다. 난청으로 고생한 지난 6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베토벤은 구원을 주는 음악을 위해 살아야 하겠노라 결심하고는 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청력에는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베토벤은 6년에 걸쳐 심한 발열과 복통이 동반된 만성 설사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음악을 듣다가 만성 설사 때문에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베토벤이 떠오르면 마음이 짠합니다. 1802년에 시작된 베토벤의 만성 설사는 그가 죽던 1827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25년 동안의 만성 설사에 시달린 베토벤의 엉덩이가 궁금합니다. 얼마나 짓물렀을지 말입니다.

 

마흔 살이 되자 베토벤은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귀가 어두워집니다. 베토벤에게 있어서 1814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일 것입니다. 20대 초반부터 빈은 물론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이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은퇴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베토벤의 귀가 완전 먹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베토벤이 사람들과 필담으로 나눈 대화 기록이 1816년이던 마흔 여섯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베토벤의 필담 노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의학적으로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을 마흔여덟 살부터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긴 합니다. 이처럼 베토벤의 귓병은 20년이나 넘게 베토벤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베토벤은 쉰다섯 살 때 조카 카를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귓병이 좋아진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 무슨 얘깁니까. 죽기 20개월 전까지도 베토벤은 자기 귀가 나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베토벤을 괴롭힌 병마는 귓병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은 난청이 시작된 26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달이 멀다하고 병원 문지방을 들락거렸습니다. 베토벤을 거쳐 간 주치의도 공식적으로만 10명이 넘습니다. 게다가 베토벤은 술을 좋아해서 식사 때마다 와인이나 맥주 한 병(1리터)을 마셨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던지, 그는 조금씩 장시간에 걸쳐 마셔서 말초신경까지 서서히 취하는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쉰한 살에 시작된 베토벤의 황달은 제9번 교향곡 <합창>과 <장엄미사>를 작곡하던 1824년을 전후한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 무렵에 베토벤의 모든 장기들은 정상이 아니었다고 편지에 쓴 적이 있습니다.

 

 

 

 

 

1824년으로 접어들자 베토벤은 자주 코피와 토혈(吐血)을 했습니다. 전문의들은 이때 베토벤의 증상을 간병변 합병증의 하나인 식도 정맥류 파열로 봅니다. 베토벤은 1824년의 궂은 날씨를 매우 힘겨워했습니다. ‘위장이 거의 못 쓰게 되었고, 혀는 노란색으로 변했고, 변비까지 겹쳤다’는 것입니다. 1825년에는 베토벤의 침에서 피가 섞여 나오더니 1826년에는 류머티즘과 통풍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간장 부위에 동통이 생기고 다리에 부종이 생겨 복수까지 찼던 것입니다.

 

베토벤은 죽기 1년 전인 1826년부터 설사와 복통이 더 심해지고 복수도 많이 찼습니다. 그해 12월이 되자 베토벤은 감기로 시작된 폐렴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폐렴은 얼마 가지 않아 치유가 되었지만, 황달과 복수는 더 악화되었지요. 1826년 12월 20일에는 복수를 뽑기 위해 복벽에 천자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때로부터 3개월 동안 네 번이나 복수를 뽑았습니다.

 

베토벤은 3월 4일부터 의식이 불분명해져서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다가 1827년 3월 26일 5시 45분경에 죽었습니다. 베토벤의 죽음은 1827년 오스트리안 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빈의 인구가 29만이었는데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2만 명이 운집했다니 알만 하지 않습니까.

 

베토벤의 시신은 세 번이나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사망 당시와 1863년에 이어 1888년에도 부검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베토벤의 난청의 원인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부검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전문가들은 베토벤이 간경변증으로 인한 간 부전으로 혼수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사망하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망 당시 베토벤의 간은 절반 정도로 위축되어 있었고, 가죽처럼 굳어져 있었다는 게 전문의들의 소견입니다.

 

문제는 간경변증의 원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직까지는 알코올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전문의들과 매독성 간경변증이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매독 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베토벤의 청력장애, 장 및 간 장애, 두개골 뼈의 변화 등이 동시에 야기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병인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30년 전에 발생하여 계속적으로 악화되었던 청력 장애, 만성 췌장, 만성 설사, 죽음의 직접 원인이 된 간경변증, 그리고 두개골의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매독이라는 것이지요.

 

이들은 베토벤이 26살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은도찰요법을 실시했다는 기록과 베토벤이 가끔은 윤락여성을 찾았다는 증언을 들어 베토벤이 틀림없이 매독환자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베토벤의 매독 설을 입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베토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또 다른 원인으로는 술의 과량 섭취 때문에 간경변증이 왔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베토벤에게 만성 췌장염이 있었다는 것은 다량의 술 때문에 온 병변일 가능성을 높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쪽에서는 베토벤이 그토록 오래 고통을 겪은 원인으로 납중독을 지적합니다.

 

지난 2000년, 모발 분석 전문가 윌리엄 월시는 베토벤이 급성 납중독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지요. 단서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입니다. 일리노이 주에 위치한 국립아르곤연구소 입자기 분석 팀과 협력하여 월시 박사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정상인의 10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매독이나 만성 중독에 걸리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심한 납중독이 되면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폐렴, 성병, 정신병 같은 질환에 노출된다고 합니다. 이 불치의 상황에 빠진 사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선택과 인과관계 없는 충동적인 언행을 하기도 합니다. 불행하게도 베토벤이 겪었던 당시의 질병의 성격과 원인은 당대에서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치료과정에서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가장 못견뎌한 것은 자기를 미친놈 취급하는 것보다 자기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자기 음악이 폄하되는 것이었습니다.

 

 

 

 

 

베토벤을 생각할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질병과 끝까지 싸운 만큼이나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힘써 싸웠던 예술가라는 점입니다. 베토벤의 삶은 자신의 신념과 사회적 실천을 일치시킨 흔하지 않은 모델이었습니다. 젊어서 베토벤은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가졌을 뿐 아니라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치가 어떻게 변하든, 어떻게 지배자가 바뀌든, 여론이 어떻게 변덕을 부리든 신념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사회의 부정과 독재에 항의했고, 작품 속에서는 아름다움, 착함,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베토벤에게 예술과 사회적 책임은 불가분의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베토벤은 청중을 그렇게 설득했습니다.

 

베토벤은 초등학교 저 학년 때 중퇴했지만 대단히 폭넓게 독서하고 사색했습니다. 신문을 거르지 않고 읽었고, 그가 남긴 필담은 시사나 정치적인 이슈에 베토벤이 매우 민감했었음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베토벤을 들을 때는 그가 사회와 정치의 복잡함이라든가 근대 민족 국가들의 항쟁관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베토벤은 당시의 귀족들에 반항했지만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시민 계급이나 민중들에게는 끊임없이 애정을 보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린 황제를 만나면 ‘모자를 짓누르고 그 행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자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걸어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은 반항아였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귀족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중소설처럼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곡을 작곡했기 때문에 그 때의 대중들이 열광했던 것입니다. 베토벤은 그렇게 음악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에 대한 대중의 슬픔, 고뇌, 갈등, 긴장, 그리고 웃음과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베토벤은 21살에 했던,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다짐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베토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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