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의 성서 묵상, 영성의 길(5)

 

지는 싸움을 하라!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넜다.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밤에 나타난 그가 야곱의 엉덩이뼈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는다(창세기 32:22-32).

 

야곱이 얍복강에서 드린 기도 이야기는 성경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잘 못 알려져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 이야기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처럼 기도로써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에 대해 그릇된 이미지를 품게 만듭니다.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굴복시켜서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역이민을 갔던 야곱은 20년 만에 큰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거부도 되었고, 처자식도 남부럽지 않게 얻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아직도 자신에게 품고 있을 원한이 그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평안하게 살 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야곱은 미리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알아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형 에서가 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분노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9-12절).

 

하지만 그 기도만으로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 후에도 도대체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거나, 기도를 잘 못 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자구책을 구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꼼수를 부립니다. 종들을 여러 팀으로 나누고 각각의 팀에 짐승떼를 나눕니다. 팀과 팀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게 하여 에서를 만나러 갑니다. 각 팀을 맡은 종에게는, 에서를 만나 가축떼를 선물로 주고 “뒤에 야곱이 오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도록 일러두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여 선물 공세를 하면 자신이 에서를 만날 즈음에는 분노가 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맨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얍복’이라고 하는 개울을 건너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강나루에 홀로 남습니다. 그 밤에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24절)고 합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의 꼼수를 쓰고 나서도 야곱은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확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Leloir -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by Alexander Louis Leloir>

 

살다 보면, 속삭이듯 기도할 때도 있고, 잠잠히 기도할 때도 있으며, 통곡하며 기도할 때도 있고, 황홀한 사귐으로 기도할 때도 있으며, 싸움하듯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삶의 상황에 따라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기도가 늘 같은 감정, 늘 같은 어조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늘 운다면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늘 고성으로 기도한다면 혹은 기도할 때마다 침묵하고 있다면,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는 것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감정에 정직한 사람이었기에 싸움하듯 기도했습니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25절)는 말은 야곱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동이 트고 다시 밤이 오더라도 야곱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야 말겠다는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엉덩이뼈를 치셨습니다.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야곱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26절)고 합니다. 야곱이 바라던 축복은 형 에서로부터 보호해 주시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서 물으십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27절) 이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란 말입니까?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2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싸우는 자’ 혹은 ‘속이는 자’라는 뜻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새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부르셨고 새로운 운명으로 초청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제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는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싸우는 운명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싸운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싸운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이름을 받은 야곱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29절)라고 청합니다. 이즈음에서 야곱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자신이 이길 수 없는 대상과 싸우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야곱의 관심사는 이제 하나님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야곱의 관심사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다가올 위험으로부터 보호 받는 것만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문제’로부터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에게로 옮겨집니다.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29절)고 반문하십니다. ‘이름을 안다’는 말은 그 사람을 소유하고 조종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기를 거부하신 것은 당신을 소유하거나 조종하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딜 가나 하나님은 임재하시고, 그 하나님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는 대신,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해 주십니다. 목전에 둔 위험으로 안전할 것이며, 고향 땅에서 잘 정착하고 번영할 것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가신 후에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30절)라고 탄식하고는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벧엘에서는 꿈에 하나님을 뵈었지만, 브니엘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자 야곱에게는 어떤 문제든지 대면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새벽이 되어 그 자리를 뜨는데,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31절)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삶에 새로운 역사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31절)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 새로운 운명을 살아가야 하는 야곱은 그 대가로 큰 값을 치룬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도에 대해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듭니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자주 자신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입니다. 심각한 문제를 만났음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갔다가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에서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보다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 진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보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또한 당신과 우리의 관계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당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그 새로운 관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더 우선이며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다른 것은 그 후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새롭게 만난 후에 형의 분노로부터 보호받는 복을 얻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야곱과 하나님의 싸움에서 누가 이겼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마치 야곱이 이긴 것처럼 그리고 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셨으면 얼마든지 야곱을 뿌리치고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이 이겼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힘으로 하나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안 된다는 철저한 신뢰와 믿음은 하나님을 어쩌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만남 후에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싸움 즉 '지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쓴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자키스(Nikos Kazantzakis)가 수도원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수도사를 만납니다. 그 수도사는 금세 쓰러질 것처럼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카잔자키스가 묻습니다. “수도사님은 아직도 사탄과 씨름을 하고 계십니까? 너무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러자 그 수도사가 대답합니다. “웬걸요. 사탄과의 싸움은 벌써 끝났습니다.” 카잔자키스가 되묻습니다. “아니, 그러면 누구와 싸우기에 그렇게 지쳐 있습니까?” 수도사가 대답합니다. “하나님과 싸우지요.” 카잔자키스가 놀라 묻습니다. “하나님과 싸운다구요? 감히 이기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러자 수도사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에게 지려고 싸웁니다. 그런데요, 지는 것이 이토록 어렵습니다.”

 

프레데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는 야곱의 얍복강 이야기를 The Magnificent Defeat 즉 “화려한 패배”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패배했지만, 그것은 화려한 패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복하시고 그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셨고 새로운 운명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영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패배하려는 씨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려는 노력이며,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얻으면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해가 솟아오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복은 하나님과 새롭게 만나 그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을 굴복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려는 노력이라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통해 배워야 할 것입니다.

 

(묵상)

 

당신은 기도로써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기도로써 구할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로써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하나님께 새 이름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새로운 운명을 발견했습니까? 앞으로의 기도가 '지는 싸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김영봉/와싱톤 한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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