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7)

 

악마의 성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라 걷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마가복음 7:1-23)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 하나를 꼽는다면 성서를 함부로 인용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혁신의 위인 마르틴 루터를 단죄한 1520년의 교황문서(Exsurge Domine)가 “야훼여! 일어나소서. 사람이 우쭐대지 못하게 하소서”(시편 9:19)라는 성경 구절로 글을 시작하는 예를 비롯해, 교회 기득권층은 항상 미운 이를 공격할 때 대개 성스러운 성경구절을 서두로 해 공식 문서를 쓴다.

 

성서 주석의 역사는 오해와 이해관계가 얽이고 설키는 과정이었다. 예컨대 “하느님의 모상”(창세기 1:26-27)이라는 개념은 2000년 동안 인간의 ‘영혼’이나 ‘정신’이나 ‘지성’을 가리키는 말로 오해되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니 남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제 피도 흘리게 되리라”(창세기 9:6)는 뜻으로, 인간이 존엄하다는 뜻을 회복했다.

 

그 반대의 예도 적지 않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복음 22:21)라는 말씀이 ‘정교 분리’의 근거로 이용되는 것도 그 하나의 예이다. 마치 종로파 깡패와 남대문파 깡패의 거래처럼 이 구절이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비판을 봉쇄하는 성구로 인용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말대로 “악마도 성경을 인용할 줄 알” 뿐더러 누구보다도 유창하게 인용한다는 것은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성직자는 신도를 감화하기 위해 성서를 인용하고, 신앙인을 가장한 정치꾼은 상대방을 두들겨 패기 위해 성서를 끌어댄다. 그자들은 자기네 기득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무리에게 “사탄, 붉은 용, 가(假) 그리스도, 어둠의 세력” 따위의 묵시록적 상표를 붙여 왔다.

 

 

 

내가 복음화 되기 위해 읽고 묵상하는 성서가 아니라 남을 칼로 베기 위해서 성서를 휘두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이 양날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날이 양면에 나 있어 남을 치면 반드시 자기가 베인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한 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못한다”(신명기 4:2). 야훼의 이런 말씀에도 불구하고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수천 조목의 자질구레한 율법이 섞여 들어와 ‘하느님의 계명’을 자처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법망에 걸어 넣지 못해 안달하던 바리새인들이 당신 제자의 위생 문제를 두고 시비를 걸어오자 사뭇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셨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은 소홀하지 말아야 하지만 정의와 진실과 사랑을 고수하는 일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누가복음 11:42).

 

수십 년 전 문규현 신부가 방북했을 때 가톨릭교회 당국은 그들이 국가의 실정법을 위반했으니 사직 당국의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를 표명하였다. 80년대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때에 혐의자를 숨겨 주었지만 자수까지 시킨 성직자를 당시의 사직 당국은 가차 없이 투옥, 유죄판결, 복역시켰었다.

 

한 때 문민정부라 자처하는 정권 역시 민중의 통일운동과 대학생과 재야의 진보 운동을 위법이라 공격하고 유례없이 투옥 처단하며 ‘법질서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다. 교회든 사회든 실정법은 대개 강자의 권리를 지키는 장치이자 약자를 때려잡는 올가미라는 것을 간파하셨기에 예수께서는 저렇게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신 듯하다.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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