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정담(17)

 

거세된 개신교 음악

 

 

전 세계 대다수 연주회장에는 스타인웨이란 피아노가 놓여있습니다. 그만큼 스타인웨이의 성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인데, 이 악기는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각각의 악기 소리가 다릅니다. 예술의전당은 시리얼 넘버가 571318, 550699, 571309인 세 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바닥에서는 약칭으로 ‘318’, ‘699’ 등으로 부르지만 말입니다.

 

연주자들이 독주회나 오케스트라와 협연 전에 피아노를 고르는 일은 매우 중요한 통과의례입니다. 예술의 전당 피아노 중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악기는 ‘318’입니다. 이유는 밝고 화려하면서 볼륨 있는 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카디 볼로도스, 랑랑, 안젤라 휴이트, 김선욱, 손열음 등의 피아니스트들이 ‘318’로 연주를 했습니다. 연주곡이 슈베르트일 때는 ‘699’가 더 많이 선택됩니다. 그의 고독과 슬픔을 담아낸다면서 밝고 화려한 소리가 나는 피아노를 선택하는 것은 어폐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인 루돌프 부흐빈더는 2012년의 첫 내한 연주 때 ‘309’를 선택했습니다. ‘309’는 고음이 화려하진 않지만 중저음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악기를 가지고 다닐 수 없는 피아니스트들 중 일부는 자기 그랜드 피아노가 아니면 연주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랜드 피아노를 싣고 연주 여행을 다니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주자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였고,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는 폴란드 태생의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이 있습니다.

 

치메르만은 2003년 예술의 전당 연주 때도 피아노 액션(해머가 달린 부분으로,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을 두 세트 가지고 왔습니다. 한 세트는 연주용으로, 또 한 세트는 조율용으로 말입니다. 치메르만은 자기 피아노를 갖고 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조율을 직접 합니다.

 

치메르만이 별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젊은 시절 폴란드 남부 지방의 카토비체 악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때 연식이 오래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많이 접하면서 피아노의 구조와 수리 방법은 물론 조율까지 배웠습니다. 조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피아노가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2003년 내한 연주 때는 조율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씨(77)의 조율이 매우 흡족했다는 후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인 호로비츠나 미켈란젤리는 자기 전속 조율사를 두었습니다. 음색이나 건반의 무게 등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맞춰 줄 뿐 아니라 연주할 곡이 바흐냐 브람스냐에 따라 조율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30여 년 전에 이미 조율 기계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조율사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물론 그때도 조율 기계는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손맛을 기계가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겨울 풍월당이란 음반점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분인 백건우 의 대담을 들었습니다. 이때도 피아노 선택 문제가 나왔습니다. 스타인웨이가 왜 좋은 피아노냐는 질문에 대해 백건우 선생은 천사의 소리에서 악마의 소리까지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그 피아노가 예쁜 소리는 물론이고 사납고 난폭한 악마를 표현할 수 없다면 좋은 악기가 아니란 뜻이었습니다. 백건우 선생도 일제 야마하 피아노의 소리가 예쁘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연주회 때 야마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쁜 소리 그 이상의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백건우의 이 짧은 한 마디 속에는 그의 음악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음악이란 아름다움뿐 아니라 추함을, 선함뿐 아니라 악함을 모두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음악이 아름다움만을 지향하면서 현실 도피용 환각제가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음악이란 삶의 이중성과 세상의 더러움을 포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갈등이 거세된 소설이나 희곡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고상함과 함께 삶의 누추함과 경박함을 피해가서는 안 됩니다.

 

언제부턴가 한국 개신교의 교회음악이 CCM이든 성가대든 곱고 아름다움만을 지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아름다움이란 신앙의 주제나 교회가 규정한 규칙에 복종할 뿐 아니라 지도층의 음악적 간섭이나 감시가 느슨해질 때조차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음악적 토양이 이렇기 변했기 때문에 성가대나 CCM 찬양단은 자신들의 찬양에 굳이 삶 전체를 개입할 필요를 별로 못 느끼는 듯합니다. 대다수 한국교회 성가대원들의 찬양은 거의 연습과 예배가 있는 날에만 적용이 됩니다. 그 결과 삶과 찬양, 현실과 예배 음악이 거의 완벽하게 분리됩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 음악은 너무 우아합니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런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철저하게 표백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 고민과 꿈이 배제되는 것 그 이상으로 공동체나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나 심판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교회 음악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개신교 음악은 CCM이든 성가대 음악이든 하나님의 심판이 거세되었습니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부활절 때 성가대가 예수를 죽이라는 민중들의 분노를 표현할 때 정도입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인 레퀴엠이란 음악 형식에는 디에스 이레란 곡이 포함됩니다. 라틴어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로 번역됩니다. 예수 재림 때 악한 자들을 심판할 바로 그날을 주제로 쓴 곡이 디에스 이래입니다. ‘디에스 이레가 포함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예외는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입니다. 죽은 이는 물론 그와 관련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이 레퀴엠인데 이상하게도 레퀴엠에는 최후 심판에 대한 경고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교회 음악 가운데 가장 무서운 최후 심판을 경고한 것은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35살 때인 1837년에 작곡한 <죽은 자를 위한 대 미사>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줄여서 그냥 레퀴엠이라 부르지만 말입니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18307월의 프랑스 혁명에서 희생당한 2천 여 명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역사에서 영광의 3로 명명되는 프랑스 혁명이 파리를 휩쓸고 있을 때, 자신의 사랑과 좌절을 형상화한 <환상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을 작곡 중이었습니다. 그 곡을 끝내자 베를리오즈가 서랍에 넣어두었던 권총을 들고 혁명의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환상 교향곡>을 거론하지만 베를리오즈 자신은 <레퀴엠>을 꼽았습니다. “하나의 작품만을 남기고 나머지 모든 작품을 버려야 한다면, 나는 <죽은 자를 위한 대 미사>를 남겨두도록 자비를 구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레퀴엠을 연주하려고 할 때 몇 가지 주문사항을 오케스트라 스코어에 표기해 놓았습니다. ‘디에스 이레란 두 번째 곡 때문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우선 큰 북의 일종인 팀파니의 숫자를 보겠습니다. 요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만 당시까지의 관현악곡들은 한 명의 팀파니스트가 최대 세 대의 팀파니를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베를리오즈는 예수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영광의 재림과 악인들의 받을 심판 묘사를 위해 16대의 팀파니와 10명의 연주자를 요구했습니다. 거기에 큰 북 연주자 2명과 심벌즈 연주자 10, 그리고 탐탐이란 타악기도 4명이 필요합니다. 보통의 관현악곡에서는 타악기 연주가가 4명이면 충분한데, 지금으로부터 176년 전에 베를리오즈는 무려 26명의 타악기 주자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금관 악기들인 트럼펫, 트럼본, 튜바 등의 악기는 음악의 스케일을 표현하는데 제격입니다. 베를리오즈는 심판을 위해 천상에서 소리를 높이는 천군과 천사들의 묘사를 위해 콘서트 홀 2층 동서남북에 38명의 금관 악기를 배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6대의 트럼펫(과 코넷)과 트럼본, 6대의 튜바가 동원됩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이미 보통 편성의 3배인 12대의 호른, 그리고 4명의 코넷(트럼펫)4명의 튜바가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세상 종말에 있을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후 심판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총 58명의 금관악기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당시 입장에서 보자면 규모가 큰 관현악 곡이라고 해도 금관악기는 11(트럼펫3, 트럼본3, 호른4, 튜바1)을 넘지 않았습니다.

 

금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로 벌써 80명을 훌쩍 넘겼기 때문에 그보다 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현악기의 증원 또한 불가피했습니다. 그래서 베를리오즈는 50명의 바이올린과 20명의 비올라와 20명의 첼로를 요구합니다. 21세기에도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8명이 표준인데 18대를 요구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세 배로 들어났기 때문에 합창단도 210명을 요구하였습니다. ‘만약 공간이 허용된다면 오케스트라의 두 배나 세 배의 합창단, 그러니까 700-800명의 합창단을 쓰라는 주문과 함께 말입니다. 좀 허세를 부린 측면이 없지 않은 곡이지만 베를리오즈의 디에스 이레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치메르만이란 피아니스트는 거의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만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어딜 가나 갖고 다니는 습관을 놓고 떠벌리는 법도 없습니다. 청중에게도 앙코르를 선사하지 않는 무뚝뚝한 연주자입니다. 그런 치메르만은 2009426일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디즈니홀 연주 때는 달랐습니다. 공연 중에 프로그램에 없는 돌발 발언을 한 것입니다. 그의 발언은 나직했지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치메르만은 미국은 내 조국을 떠나라면서 폴란드 땅에 대한 미사일 방어막인 MD의 설치 계획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오바마가 부시 대통령 시절 정책인 폴란드와 체코 공화국에 미사일 보호막을 설치하기로 한 것을 그대로 유지키로 한 결정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는 2006년에도 부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은 미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에 볼티모어의 쉬리버 홀에서 연주할 때는 미국 관타나모의 감옥에 대한 규탄의 뜻으로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치메르만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9/11 직후 그의 피아노가 뉴욕 JFK 공항 세관 당국에 의해 접착제 냄새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압수당했고, 그 결과로 미국 세관은 그의 악기를 폐기처분한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번역해 준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어떤 미국 관객은 치메르만의 발언에 환호했고, 어떤 이들은 닥치고 연주나 하라고 소리치거나 욕지기를 하거나 연주도중 자리를 떴습니다.

 

악마의 소리까지 표현이 가능해야 좋은 악기란 백건우의 지론은 문자를 넘어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메르만의 오바마 정부에 대한 항의처럼, 또는 자기 공연 계획을 취소하고 세월호로 인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제주도로 달려와 연주했던 백건우처럼 말입니다.

 

성가대를 쉬고 있는 제게 만약 다음 주 지휘를 할 수 있다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에서 디에스 이레를 선곡할 것입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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