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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광복 70주년, 역사 키워드 70'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 현재적 의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8.

김삼웅의 ‘광복 70주년, 역사 키워드 70’(1)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 현재적 의미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그 과제는 무엇인가. ‘70주년’은 생물학적으로는 노령기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성장기에 속한다. 70년은 한 개인에게는 생애의 전부에 속하지만, 민족ㆍ국가의 영속하는 시간으로는 한 순간일 뿐이다.

 

을미년 2015년은 한민족이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지 70주년이다. 민족사의 비극은 ‘해방둥이’가 압제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허리 잘린 장애아로의 출산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건강한 옥동자가 되지 못하고 장애가 된 것은 선천성이 아니라 국제열강의 역학정치라는 후천성 때문이었다. ‘후천성 장애’의 구조는 분단, 6.25동족상잔, 냉전으로 이어지고, 이후 남북으로 갈린 두 개의 한민족은 상호 적대관계를 강화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해방 70주년’은 일제 통치에서 풀린 지 꼭 두 배의 기간이다. 우리는 흔히 ‘일제 36년’을 말하지만, 1910년 8월 29일 국치일로부터 해방까지는 정확히 34년 10개월 보름이었다. 해서 올 해는 식민지시대보다 해방기간이 두 배가 되는 시점이다. 일제 35년이 길고도 험한 세월이었지만, 해방 후의 기간도 만만치 않았다.

 

독립 운동가들은 그 잔혹했던 일제와 싸워 해방의 일역(一役)을 맡았는데, 그 두 배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해방 후 세대는 외세가 가른 분단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으니 ‘못난 후손’이란 지탄을 면키 어려울 터다.

 

‘해방 70주년’을 맞은 한민족에게 지난 70년은 다른 국가에서는 700년에 해당하는 격동과 고통과 애증의 세월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항복하고서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9월 7일 미군 극동 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면서 ‘선수교제’가 이루어졌다.

 

이후 미군정, 6.25전쟁, 이승만 12년 백색독재, 4.19혁명, 박정희의 5.16군사 쿠데타, 10.26박정희 암살, 12.12군부반란과 전두환 쿠데타, 광주민주항쟁, 6월 항쟁, 김대중ㆍ노무현 문민정부, ‘이명박근혜’의 보수정권에 이르기까지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겪었다.

 

그런 속에서도 세계적으로 최빈국에서 10위권에 속하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백색독재,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제도적인 민주화를 쟁취하였다. 프랑스가 1789년에서 1814년까지 25년 동안 절대왕정→ 입헌군주정 → 공화정 → 공포정치 → 반동정부 → 군사쿠데타 → 제정 → 왕정복고라는 급격한 반동 정치체제의 변화를 겪었듯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처: Republic of Korea (https://www.flickr.com/photos/koreanet))

 

 

우리는 흔히 지난 70년 동안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적으로, 단축하여 성취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보수나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하는 말이다. 상당 수준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언필칭 국호와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를 표시하고 선언한다. 국민의 희생으로 ‘민주’는 법적,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구현했다. 반면에 ‘공화’는 여전히 구색용일 뿐이다. 본래 ‘공화(共和)’란 중국 주나라에서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14년 동안 협의하여 행한 정치를 말한다.

 

서양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을 취하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로마시대의 철학자 키케로는《국가론》에서 “공화국은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말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교대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능력과 평등한 권리, 시민들 간의 평등”이라고 정의하였다. 축약하면 “정의와 공동의 이익, 시민들 간의 평등”이 공화주의라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와 공화주의가 한 묶음이 되면서 민주는 시민적 권리, 공화는 시민적 평등을 담보하고자 근대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채택하고, 한국도 1907년 안창호 등이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면서 ‘민주공화주의’를 내걸었으며,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국호와 약헌(約憲)에서 이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에 이른다.

 

임시정부를 비롯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일치된 소망은 자주 독립이었다. 그리고 다수의 독립 운동가들의 정치적 비전은 통일된 조국에서 민주공화제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한데 해방70주년을 맞아 ‘자주독립’은 박근혜 정부가 다시 전시작전지휘권(전작권)을 미군사령관에게 무기한 연장시켜줌으로써 기약 없는 바람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 200여 국가중 군사주권이 없는 유일한 나라의 신세가 연장되고 있다.

 

민주공화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우리 국민은 4월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의 희생과 저항을 통해 제도적ㆍ법적인 민주주의는 구현하였으나 지난 대선의 부정, 정보기관의 간첩조작, 민변ㆍ전교조 등의 탄압 그리고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에서 보이듯이, 민주주의는 다시 유신, 5공시대로 회귀하기에 이르렀다.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형법에 반국가사범을 처리하는 규정이 엄존한다. 국사범은 이들 법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임명제 헌재재판관들이 정당 해산과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반민주적 행태가 자행되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는 토마스 제퍼슨은 “사과 하나를 따기 위해 거침없이 사과 나무를 잘라버리는 사람이 독재자”라 하였다.

공화주의 정신은 어떠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성취한 경제발전의 공은 특정 개인의 공적으로 치부되는가 하면, 성장의 열매는 소수 재벌과 권력층이 독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떠들기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장밋빛 선전을 하고 있지만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05%를 차지한다. 빈부격차와 양극화ㆍ청년실업은 심각한 공동체 위기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지배층은 친일세력에서 기원한다. 매국배족(賣國背族)의 대가로 재산을 모으고 자식들을 교육시켜서 미군정 이래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이들이 정치, 언론, 재벌, 대학, 사법부 등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세습하면서 불패의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통일과 민주화세력을 빨갱이→ 용공 → 좌경 → 종북으로 몰아치면서 ‘북한 프레임’으로 국민을 선동ㆍ현혹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다.

 

해방 70년은 독재와 반독재의 힘겨운 대결에서 짧은 기간, 그러니까 4.19혁명 공간과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을 제외하면 60여 년이 반민주세력의 독재시대였다. 정치적 독재는 경제적으로 독점재벌을 낳고 사회적으로는 그 하수인으로 어용언론ㆍ지식인ㆍ종교인ㆍ판ㆍ검사를 배출, 양육한다. 이들은 권력의 풍각쟁이가 되어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여론을 조작하면서 민족사를 오도해왔다.

 

이런 모든 죄악들이 가능한 것은 분단으로 인한, 북한이라는 ‘마취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마녀’의 존재(사실은 무존재)가 비판자를 화형시키고 매장시켰듯이, 분단시기 남북의 지배세력은 ‘적대적 공존’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판세력을 탄압하고 독재 권력을 유지해왔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싫든 좋든 미국과 중국 2대강국(G2) 체제로 진행되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낀 한반도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제열강의 땅따먹기 장기판의 졸(卒)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남북이 민족적 구심력으로 외세의 원심력을 이겨나가야 하는데, 지배자들은 외세의 종이 될지언정 내부의 주역이기를 원한다.

여기에 일본 아베 정권의 극우노선과, 한ㆍ미ㆍ일 군사정보공유 의정서체결, 한국의 MD체제 편입 등이 향후 동북아질서와 한민족 운명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해방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뒤틀린 민족사를 주인인 국민이 바로 잡아야 한다. 남북화해의 길을 찾고, 잃어버린 자주와 잊어버린 공화정신을 회복해야한다. 옛사람들이 역사를 감계(鑑戒)라 하여 “지난 일을 거울에 비춰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이유를 되새기면서, 새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이 연재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싶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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