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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2)

by 한종호 2015. 6. 19.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3)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2)

 

 

1. 모세를 낳은 그 부부는 그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석 달 동안 숨겨 키웠다. 성경은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다고 말한다(2절). 모세 부모가 모세를 차마 죽이지 못한 까닭은 그가 잘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구절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잘 생기지 않았다면, 모세를 나일 강에 버렸을 텐데, 인물이 좋아서 석 달 동안 집에서 몰래 키웠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 생겼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보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생긴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자식인들 예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 부모만 그랬겠는가? 당시에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들을 낳아서 몰래 키우다가 붙들려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었겠는가.

 

2. 석 달을 어찌어찌 버텼지만, 더 이상 아들을 키울 수 없게 되자, 모세 부모는 그를 나일 강에 버리기로 한다. 그런데 나일 강에 버리는 방식이 특별하다. 갈대상자를 특별 방수 처리한 다음, 모세를 거기에 넣고 나일 강 갈대 사이에 둔 것이다. 그리고 누나 미리암으로 하여금 지켜보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모세 부모뿐만 아니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태어난 아들을 나일 강에 버릴 때, 갈대 상자에 넣어서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죽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산 채로 물에 던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3. 그런데 그곳으로 바로의 딸이 시녀들을 데리고 목욕하러 나왔다.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그 아이를 버리라고 명령했으니까, 나일 강에는 아이들 시체가 떠다녔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곳에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러 나왔다는 게 의문이다. 목욕을 하려면 궁중에서 하는 것이 더 나을 텐데, 굳이 나일 강까지 나오는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 제의적인 예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는 동안 시녀들은 나일 강가를 거닐었다.

 

4. 애굽 공주가 나일 강에 목욕하러 나왔다는 것은 바로가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게 한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바로가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라고 해서 나일 강은 죽음의 강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애굽 사람들은 그 강을 신성하게 여기고, 그곳에 와서 제의적인 목욕을 한 것으로 보인다. 7장 15절을 보면, 바로도 매일 아침 나일 강으로 나간다.

 

5. 공주가 그 상자를 보고 그것을 가져오게 해서 열게 하고, 한 아이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아이는 울고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상자 안에 있는 내내 울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울음소리를 공주가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6. 공주는 상자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가 히브리 아이인줄 금방 알아채지만, 그 아이를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 공주는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라고 하는데,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면, “이는 히브리사람들의 (남자) 아이들 가운데 (하나)이다”이다. 공주는 바로가 내린 명령을 잘 알았고, 나일 강에서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담은 상자들을 여럿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모세 외에도 다른 아이들을 모세와 같은 방식으로 살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모세 가족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공주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아이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자기 아이로 삼으려고 한다. 지극한 모성애다.

 

7.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바로가 내린 명령은 다른 사람이 아닌 공주에 의해서 어겨진다. 애굽 공주는 아이를 보고, 불쌍히 여긴다. 바로와 달리 애굽 공주는 생명을 보존한다. 그는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구원하고, 결국 그의 어머니가 된다. 그런데 공주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없기 때문에, 히브리 여인을 유모로 삼아 그 집에서 아이를 키우게 하는데, 그 아이의 누이가 공주에게 아이의 어머니, 즉 제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해서 아이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 어머니 품에서 자란다. 그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제 집에서 키우면서 애굽 공주로부터 수고비까지 받는다. 정말 우여곡절(迂餘曲折)이다. 그리고 여인들의 용기와 순발력이 인상적이다.

 

9. 특히 미리암이 큰 역할을 했다.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서 나일 강에 띄운 다음, 누이는 그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공주가 상자에서 아이를 확인하는 순간, 누이는 바로의 딸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인 유모를 데려오겠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바로의 딸이 모세를 죽게 버려두지 않고 자신이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을 모세의 누이가 눈치챘기 때문임을 알려준다. 바로의 딸은 미리암에게 히브리인 유모를 데려오게 하고, 미리암은 집으로 달려가서 모세의 어머니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로의 딸이 모세를 집으로 데려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세의 어머니에게 삯을 주고 모세를 제 집으로 데려가서 모세에게 젖을 먹이게 한다.

 

10. 그리고 모세가 젖을 뗄 때, 모세를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자, 그때에 모세를 그의 아들로 삼고, 이름을 “모세”라고 짓는다(10절). 그러니까 모세는 어린 시절을 자신의 집에서 친부모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생가에서 지내면서, 모세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의 딸이 왜 모세를 즉시 궁전으로 데려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를 나중에 궁전으로 데려가서 자신의 아이로 삼는 것이 가능했을까? 여러 가지 궁금한 점들이 많지만,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세가 어린 시절을 어머니 요게벳과 함께 보냈고, 요게벳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요게벳이 진정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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