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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

유대인의 장막절(2)

by 한종호 2015. 6. 22.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3)

 

유대인의 장막절(2)

 

구약에 나타난 장막절

 

모세는 그의 고별설교에서 매 7년 마지막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율법을 선포하라고 명하였다(신명기 31:1-13).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된 후 성전에서 제일 처음 지킨 절기는 다름 아닌 장막절이었다. 이때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족장들이 소집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벌어졌다. 다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장막절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느헤미야 시대에 있었던 축제를 들 수 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 끝에 고국 땅에 돌아온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유대인의 재건을 위해 전 국민적인 장막절 운동을 일으켰다. 느헤미야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느헤미야 8;16-17).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옛날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들의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회상하며 대대적으로 장막절을 축하했다. 이는 여호수아 이후 최대의 장막절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해방 직후 맞은 장막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장막절 행사 중 하나였다. 에스라는 이 기간 7일 동안 매일 율법을 낭독했고 8일째에는 성회를 베풀었다(느헤미야 8:15-18).

 

 

 

   씸핫 토라에 토라를 꺼내 들고 가는 유대인의 모습

 

제단에 물 붓기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는 매일 희생제물을 다 바친 후면 으레 포도주를 제단에 부어 헌주(Wine Libation)했다. 그러나 장막절에는 포도주대신 물을 제단에 부어 바쳤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비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지나면 비를 기원했다. 곧 밀, 보리의 파종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는 헌수(Water Libation)라는 특별한 예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 예식은 욤 토브인 첫째날을 제외한 나머지 날에 매일 행해졌다. 이 행사는 심핫 벳 하쇼에바라고 알려져 있으며 문자적으로는 물 긷는 곳의 기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사장은 금으로 만든 물 단지를 들고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었다. 돌아오는 길에 성전의 수문(Water Gate)을 통과하여 성전 안 뜰에 들어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를 맞았다.

 

이때 제사장들은 은나팔을 불었다. 다른 제사장들은 이사야 선지서의 말씀을 성가로 찬양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이때 또 다른 제사장들은 긴 버드나무 가지들의 끝을 가지런히 하여 제단 쪽으로 향하게 올려놓았다. 제사장은 물이 가득 든 금으로 만든 물 항아리를 들고 앞으로 나가 제단 위에 부었다. 제사장들은 다시 은나팔을 세 번 불었다. 제사장들은 버드나무가지들 들고 제단 주위에 둥글게 서며, 레위인들은 성가대석에서 시편 118편으로 찬양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면 모든 회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높이 들어 빙빙 돌리며, 레위인들의 찬양에 가담하여 시편 113-118편으로 만든 할렐송(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을 함께 불렀다. 유대인들이 특별히 중요시하는 마지막 축도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편 118;25-26)

 

구원하소서의 히브리어 원문은 호사나이다. 이 용어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막절의 마지막 날을 호사나 라바라고 부른다. ‘라바라는 말은 우리말로 크다는 뜻이며, 유대인들은 장막절의 마지막 날을 큰 구원의 날로 지킨다. 유대인들은 이날이야말로, 지난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라고 믿는다.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며 유대인들은 나팔을 불고 찬양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춤을 추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들은 사죄의 기쁨과 구원의 감사를 표현하였다. 이대 유대인들은 거룩한 영(성령)에 사로잡히기를 원하여 황홀경에 빠진다. 미쉬나는 증거하기를, 누구든지 춤과 노래, 악대가 동반된 장막절에 행해지는 이 행사에 참여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장막절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습을 알고 나면 왜 메시아의 다시 오심이 묵시 문학에서 장막절과 연관되어 예언되었는지 좀 더 쉽게 이해된다. 스가랴는 새 시대가 도래하면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을 축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예루살렘에 와서 장막절에 참여하는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에 가담하게 되지만 장막절에 참석하지 않는 나라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마지막 세계의 마지막 종말이 장막절의 배경에서 설명되었다,

 

신약에 나타난 장막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 737-38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의 장막절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한다. 이 날은 유대인의 장막절 마지막 날인 호사나 라바’(큰 구원의 날)에 해당한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모든 유대인들은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면서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고, 성령에 사로잡히기를 간구하고 찬송하며 춤을 춘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사람은 자신에게 오라고 하시며, 그리하면 성령충만 하리라고 외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부터 나귀를 타시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백성들의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구야의 장막절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과 부합된다.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 엘리야, 또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가복음 17;4)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 믿게 된 베드로에게 얼른 생각난 것은 초막이었다. 모든 유대인은 구약의 전통에 따라 메시아는 장막절에 오신다고 믿었다.

 

호사나 라바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일곱 번째 날을 가리켜 호사나 라바’(큰 구원의 날)라고 부른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아르바 미님을 손에 들고 호사나 라바가 되는 날, 회당을 일곱 바퀴 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이 성전의 제단을 돌며 백성들과 함께 춤추던 전통을 따르기 위함이다. 일곱 바퀴를 다 돈 후 버들가지의 줄기를 으깨어 부순다. 줄기가 으깨어지는 것을 보며 그들의 마지막 죄까지도 다 으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또 비가 내리기를 간구하며, 내년에도 버들에 물이 오르기를, 그들의 삶과 영혼에도 물이 오르기를 기원한다.

 

쉐미니 아쩨렛

 

장막절이 시작된 지 여덟째 날을 쉐미니 아쩨렛으로 지킨다. 이는 여덟째 날이란 뜻으로, 이날은 비를 위하여 기도한다. 이로써 새로운 해가 시작되며 유대인들은 파종을 준비한다. 10,11월의 이른 비는 파종에, 3,4월의 늦은 비는 결실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씸핫 토라

 

장막절이 시작된 지 아홉째 날은 씸핫 토라, 유대인의 토라(유대인의 성경)를 기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쉐미니 아쩨렛과 씸핫 토라를 여덟째 날에 같이 지키는 반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아홉째 날을 따로 정하여 씸핫 토라의 명절로 지킨다. 이날로 1년 치 토라를 다 읽고, 다음 날부터는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된다. 이날 회중은 토라궤(성경 보관 상자)에서 토라를 꺼내 회당 안에서 원을 그리며 주위를 돈다. 어른들은 토라를 어깨에 메고, 어린이들은 사과와 깃발을 들고 춤을 추며 따라간다. 일곱 바퀴를 다 돌면 토라를 토라궤로 가지고 가서 신명기의 마지막 단락을 읽는다. 이로써 1년 치 토라를 완독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 유대인들은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은 취할 때까지 포도주를 마신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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