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6)

 

마음에 핀 꽃

 

 

삶의 특색은 ‘마주함’에 있다. 마주함의 양상을 일러 관계라 한다.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은 배려에 있다. 배려는 마주 선 이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 곧 제멋대로 하지 않음이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롭다. 반면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불화를 일으킨다. 세월이 가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혼이 미성숙한 이들이다. 세월이 가도 자아의 한계에 갇혀 이웃을 향해 한 걸음도 내닫지 않는 이들을 보며 ‘원판 불변의 법칙’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의 본바탕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씁쓸하다. 막무가내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 앞뒤 가리지 않고 뼛성을 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정말 그런 거라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종교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 인간 존재는 인간 되어감이라지 않던가. 인간의 인간다움은 변화를 향해 열려 있을 때 발현된다.

 

 

 

 

변화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자기 마음과 행동을 살피고 또 살펴 몸과 마음에 더께로 앉은 때를 닦고, 어지럽게 흩어 진 마음을 가지런히 하려고 노력할 때 변화의 단초가 마련된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일러 마음공부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의 버릇 들이기라 한다. 수신 혹은 수양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른 하나는 외부의 도움이나 충격이다. 실존의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죄책, 투쟁, 고난, 죽음 등은 안온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켜 우리 삶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한계상황은 때로 우리 삶을 본래적인 자리로 밀어 올리는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그 아스라한 허공에서 경험하는 것이 은총이다. 이때 본을 보여주고 감화를 일으키는 스승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러 해 전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았던 교우 한 분은 수술에서 깨어난 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절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병에서 회복되고 나서야 인생이 고마움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후에 그는 유머러스하지만 말 수는 적은 사람이 되었고, 그의 주변에는 늘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던 그가 또 쓰러졌다. 다들 이번에는 어렵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또 다시 깨어났다. 아직 언어가 회복되지 않아 의사소통이 임의롭지는 않다. 병실에 찾아가 펜을 손에 쥐어드리자 그는 알파벳으로 CHRIST크라이스트라고 쓰고 또 썼다. 그리스도는 그의 가슴에 핀 꽃이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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