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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1)

by 한종호 2015. 6. 26.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4)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1)

 

 

1. “그를 만난 건 우물가였다. 그는 그곳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리고 나를 곤경에서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내 삶이 되었다. 그는 도망자이다. 애굽 사람에게 구타당하는 히브리인을 구하려다가 애굽인을 죽였단다. 그리고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이곳으로 도망 왔단다.” 도망자 모세가 도착한 곳은 미디안이었다. 애굽으로 돌아갈 희망을 버리고, 모세는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미디안 제사장 딸과 혼인해서 자식들을 낳는다.

 

2. “우리는 그가 왜 도망자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우리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리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그가 자기 형제들에게 갔단다. 히브리인들이 일하는 공사현장에 가서 그는 그들이 중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공사현장에서 한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인, 즉 모세의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을 치는 것을 보았단다. 그래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 애굽 사람을 쳐서 구덩이에 묻었단다.”

 

3. 애굽 사람이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모세가 그 애굽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와 동일하다. 사람을 때려서 죽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통해서, 당시 히브리인들이 강제노역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구타당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4. 살인자가 변해서 지도자가 되었다! 극적인 인간 변화를 선동적으로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을 예시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11절). 그래서 모세는 애굽인을 “쳤다”(이 단어는 12:12, 13, 29, 9:15, 3:20, 7:17, 25에 나온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과 그로 인한 미디안 망명을 그의 무모함의 결과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행동을 예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5.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여기서도 그랬고,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했다.” 모세는 다른 날 공사현장에 나갔다가, 동족이 동족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한 히브리인을 치는 다른 히브리인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질책한다. 여기서 동포는 히브리어로 “친구”이다. 모세가 이 용어를 쓰는 까닭은 그가 히브리인들을 형제로 여기고 또 친구처럼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히브리인들과 형제로 친구로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히브리인이 모세에게 하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 사람은 두 가지를 묻는데, 하나는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이다. 이것은 물론 모세로부터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고, 모세가 그들을 다스리는 자나 재판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질문에 대답하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히브리인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고 묻는데, 이것 역시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은 아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모세에게 원망하면서 하는 말이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와서 죽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세가 그들의 지도자와 재판관임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들은 평생 모세를 형제로 그리고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6. “그는 이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에 처했다.”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애굽 왕실은 그의 정체를 알고 그를 잡아서 처형하려하기 때문이다. 모세는 재빠르게 미디안으로 도망함으로써 그 위기를 벗어난다.

 

7.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 도망자로 왔다. 하지만 그는 내게 구원자로 왔다.” 미디안에 도착한 모세는 우물가에서 이드로의 딸들을 “구원”했고, 그들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 모세가 행한 구원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14:13, 30, 15:2, 3:8, 6:6, 12:27)과 이어진다. 모세는 항상 악에 대항한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보시고, 아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울부짖는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보시고 아셨다. 그래서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신다.

 

8. “그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불의했다. 그러니 그는 평생을 세상과 불화해야 할 운명이었다.” 압제는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평화로울 것만 같은 미디안에도 작은 폭력이 발생한다. 이드로의 딸들은 그날 하루만 괴롭힘을 당한 것이 아니다. 이드로가 하는 말(18절)을 보면, 날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9. “그는 혼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사장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르우엘을 이드로라고도 하는데, 그는 매우 지혜롭고 자애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는 모세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모세를 우물가에 그대로 두고 온 딸들을 책망한다. 그리고 어서 모세를 데려와서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20절). 본문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상황만 제시하는 간결한 영화편집 효과를 보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하게 하는데, 20절과 21절 사이에서 이드로와 모세는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고, 결국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해서 그곳에 정착한다.

 

10.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주해서 그곳에서 십보라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매우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모세는 이드로의 일곱 딸들을 괴롭히는 남자 목동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 것으로 미디안에서의 첫날을 시작한다.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17절)는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그들을 구원했다”이다. 그리고 집에 일찍 돌아간 이드로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19절)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구출했다”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폭력적인 상황에서 구출하고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앞으로 모세가 할 일이라는 점에서, 모세가 구원자로 나설 것임을 예시한다. “이렇게 그가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우리 삶이 되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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