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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 13.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

 

하우와, 믿음으로 실패와 아픔을 이겨내다(2)

 

 

1. 어머니 하우와. 창세기 4장은 2장과 3장의 서술과는 달리, 하우와가 세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일상의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살던 한 평범한 어머니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하우와가 신앙적인 여인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우와는 셋째 아들인 셋을 낳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25절).

 

하우와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셋'이라고 짓고 나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를 밝히는 장면이다.

 

2. 이것과 비슷한 구절이 4장 1절에도 나온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우와와 동침하매 하우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우리는 이 두 절이 닮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 4장은 첫아들을 낳은 다음 하우와가 하는 말로 시작해서 막내 아들을 낳은 다음 하우와가 하는 말로 끝난다. 그렇기에 4장 전체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하우와이다.

 

3. 우리는 이 구절에서 하우와의 깊은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하우와는 자기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결코 심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는 일을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그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한다. 하우와는 가인을 낳을 때도 그랬고 셋을 나을 때도 그랬다. 하우와가 아들 낳은 것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창세기 4장에 두 번이나 나오고, 그것이 4장 맨 앞부분과 뒷부분에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언제나 그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창세기 4장에 나오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하우와의 신앙고백으로 끌어안고 있음을 알려준다.

 

Emil Nolde - Verlorenes Paradies (Paradise Lost) (1921) Oil on canvas, 106 x 157 cm

(출처: Playing Futures: Applied Nomadology (http://www.flickr.com/photos/centralasian))

 

 

4. 우리는 여기서 하우와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만나는 하우와는 얼마나 신앙적인 인물인가?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신앙심 깊은 한 여인을 만난다. 자녀들로 인해 아픔을 겪으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해내는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지금까지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하우와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 생각한 적이 있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노래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런 하우와를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본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우와의 기쁨과 슬픔을 살려내는 것, 그래서 그를 한 인간으로 경험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성경독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5. 4장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 사이에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온다. 물론 이 사건의 주인공은 가인이다. 그래서 성경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담과 하우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독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성경이 표면적으로 말하는 바를 꼼꼼하게 읽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침묵으로 전달해주는 정작 더 귀중한 메시지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본문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우와가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6.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우리는 이 말에서 아들을 낳은 한 어머니가 지르는 환호성을 듣는다. 하우와는 가인을 낳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물론 아벨을 낳은 후에도 그런 맘이 들었겠지만, 아벨을 낳고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우와가 가인을 낳고 얼마나 기뻐하고 감격하고 감사했는지 알 수 있다. 하우와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읽을 때, 무덤덤하게 읽을 수가 없다. 우리와 똑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이 말을 하는 하우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나님이 주신 아들. “아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다.” 기쁨에 넘쳐서 외쳤던 그 아들이 사랑하는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우와는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또 피 흘린 채 죽어있는 둘째 아들 아벨의 시신을 끌어안고 하우와는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고통당하는 하우와. 그러면서도 그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이겨내는 하우와. 그 하우와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야 한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 하우와. 아들 낳은 일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해석해내고 모든 아픔을 신앙으로 이겨내는 하우와는 분명히 신앙심 깊은 인물이었다. 이 하우와가 창세기 4장을 지배하는 무서운 증오와 죽음을 신앙으로 끌어안아서 녹여내고 있다.

 

8. 아담과 하우와가 낳은 셋째 아들은 누구인가? ‘셋’이다. ‘셋’의 뜻이 무엇인가? ‘대신한다’이다. 셋은 가인과 아벨을 대신하는 아들이다. 셋은 가인과 아벨로 상징되는 증오와 죽음을 대신하는 아들이다. 그렇기에 아담과 하우와가 아들을 낳은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그 증오와 죽음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랑과 삶으로 나아가는 사건이다.

 

9. 셋이 태어난 것은 증오와 죽음의 현장, 증오와 죽음의 시대를 넘어서 사랑과 삶의 시대로 나아가는 사건이다. 만약 셋이 탄생해서 에노스로 그 계보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증오와 죽음이 세계를 지배하고 비극의 역사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가인에서부터 라멕까지 이어지는 증오와 죽음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단절하는 것이 바로 ‘셋’의 탄생이다.

 

10. 창세기 4장의 구성을 보면, 증오와 죽음의 역사는 셋의 탄생으로 일단 끊어지는 구조를 보인다. 4장 3절부터 15절까지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이고, 16절부터 24절까지는 가인과 그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는 라멕이 부르는 증오와 죽음의 노래로 종결된다. 그래서 4장 3절부터 24절까지가 증오와 죽음의 이야기이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감싸는 것이 바로 아들들의 탄생과 하우와의 신앙고백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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