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1)

신앙의 의미를 묻는다

 

겨울 한복판, 1월 중순이지만 날씨가 화창합니다. 햇살의 따사로움만으로 판단하자면 초봄이나 진배없습니다. 따스한 햇살의 기운으로 인해 몸이 노근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안하지 못합니다. 오늘 이 땅의 처해있는 현실과 그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교회로 인해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한국 교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굉장히 차갑고 냉소적입니다. 비판을 뛰어넘어 비난과 조소가 가득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동안 한국 교회는 이런 신앙인들을 좋은 신앙인이라고 칭찬해 왔습니다. 교회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말씀을 신실하게 읽고 기도 한 번 했다고 하면 세 시간 스트레이트로 하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 거기에 전도에 대한 열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간직한 이는 좋은 신앙인이었고, 반대의 모습을 간직한 이는 신앙이 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준에 근거하여 신앙인들 사이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신앙의 계급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는 이 기준에 부합한 신앙 좋은 사람이 수십만, 수백 만 명은 족히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수백, 수천 번 드린 사람하고 예배를 한 번도 드려보지 않은 사람, 설교를 수백, 수천 번 들은 사람, 성경을 몇 독 한 사람하고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관이 다르지 않고 물질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고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이 다르지 않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간파한 세상은 그렇게 많은 예배에 참여하고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을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는가에 대해서 정직한 답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고 있는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또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고 속에 있는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고 존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시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존재가 변화된 사람이 너무 부재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말씀으로 인해 새로워지지 못한 우리의 삶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조롱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로 인해 세상은 우리에게 냉정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인생의 주인 되신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인 한 명이 탄생하는 것은 단순히 교인 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공선을 증대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내와 자녀에게 폭력적이었고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과 사기를 쳤던 한 사람이 말씀에 타격을 받아서 회심하게 되면 회심한 이는 그 사람이지만 그 존재의 변화로 인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많은 유익을 누렸습니다. 그 존재의 변화로 인해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와 자녀들이 구원을 받았고, 거짓말과 사기로 피해를 입었던 친구와 이웃들이 행복해졌습니다.

신앙인이 많아진다고 해서 국내총생산량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총사랑량, 국내총자비량, 국내총긍휼량, 국내총정직량, 국내총거룩량, 이웃에 대한 배려량 등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예수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들이 개신교, 가톨릭 합쳐 1,500만 명 가량 되는데 그들로 인해 한국 사회의 공공선이 증대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한국 사회는 이기심과 탐욕, 욕망의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회가 우리에게 신앙의 의미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주장이 아닌 삶으로 신실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양진일/가향 공동체 목사, 하나님나라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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