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연의 아기자기(25)

 

머리 커도 괜찮아, 비 맞아도 괜찮아

 

 

에피소드 1.

 

“이루는 원래 좀 작게 태어나긴 했지만 지금도 좀 작은 편이네요.”

 

9-12개월 사이에 받는 영유아검사가 있어서 동네 소아과에 갔다. 그리고 이루가 또래보다 작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치를 접하고서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그 느낌은 이내 반성으로 이어졌다.

 

평소 남편과 나는 이루가 통통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또 아빠를 닮아 (여보 미안^^) 머리가 큰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그보다는 가끔 이루 또래 아기를 키우는 지인들을 만날 때 듣는 이야기가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잘 먹는가 보다” “10키로는 더 나가겠는 걸?” “묵직하네.” “우리 애는 그맘때 정말 작았는데” 등의 말은 그분들이 어떤 뜻으로 한 말이든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런 이야기 듣는 게 싫어서 내가 먼저 선수를 칠 때도 있었다. “우리 이루 머리가 좀 크죠” “통실통실 요 살 좀 보세요” 등등.

 

그런데 이루는 전혀! 통통한 아기가 아니었다. 100명 중 키는 앞에서 11번째, 몸무게는 19번째, 머리 둘레는 15번째로 작았다. 그 동안 특별히 작은 아기들만 봐 온 탓인지, 간호사 선생님이 이루를 보자마자! “머리가 참 작다”고 하는 말을 믿지 못하고 괜히 “아니에요. 우리 이루는 머리가 좀 큰 것 같은데요”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아니, 살집이 있으면 어떻고 머리가 좀 크면 어떤가. 그런데도 나는 은근히 내 딸 이루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보통 수준의 키, 몸무게 그리고 이왕이면 (남들도 원하는 대로) 머리는 좀 작았으면 했다. 미인대회에 나갈 정도로 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뚱뚱해서’ 행여 이루가 친구들에게 놀림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됐고 이루 스스로 몸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까 짐짓 염려되기도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범하다는 말에 잘못 깃들어 있는 못된 의미를 버리지 못한 건 분명 못난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루가 혹시 또래보다 뚱뚱하고 머리도 큰 아이로 자라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가르쳐 주는 엄마가 되자고. 사람의 참된 가치는 내면에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는 엄마가 되자고.

 

 

 

 

에피소드 2.

 

건이네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별안간 굵어졌다. 등에 업혀 있던 이루가 비에 맞아 아직 다 낫지 않은 감기가 심해질까 걱정이 됐다. 어둑한 밤거리에 비까지 오니 혹시 좀 무서울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지만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감기가 좀 걱정되긴 했지만, 이루가 비오는 밤거리를 무서워할 거라는 생각은 다분히 기우라는 판단이 들었고, 엄마 등에 업힌 채 비 오는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이루에게는 즐거운 놀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루는 우산살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젖혀 손을 뻗었다. 드문드문 비를 맞기도 했는데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발 구르기를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내가) 주눅 들지 않기 위해, 또 이루가 심심할까 봐 집에 오는 내내 노래를 불렀더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철없는 엄마라고 욕먹을 수도 있겠으나, 다행히 이루 감기가 낫고 있어 면피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장대비 쏟아질 때 우리 아이가 그 비 피하기를 바라는 게 ‘평범한’ 생각이라면 나는 그 평범한 바람 대신, 이루가 때로 장대비 맞으면서 비의 질감을 느끼고, 비를 내리시는 신의 일반계시를 깨닫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자고. 비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엄마가 되자고.

 

이종연/IVP 편집부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