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31)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잘 지내고 있지요?

 

이제 떠나실 시간이 다가오네요. 이번에 머물게 되는 곳은 캐나다에 있는 후터라이트 공동체라고 하셨지요? 사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후터라이트(Hutterite) 공동체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오스트리아의 재세례파 신자였던 야콥 후터(Jacob Hutter, 1500-1536)가 시작한 생활공동체더군요. 가톨릭에 속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탄압을 피해 모라비아로 피신하고, 30년 전쟁 후에는 중부 유럽 여러 도시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74년에 미국으로 이주했고, 세계대전 때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로 미국 정부와 대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캐나다에 머물면서 사도행전 2장 43-47절에 언급되고 있는 생활 공동체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여성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고 지내고, 남자들도 무늬가 별로 없는 소박한 옷을 입고 지낸다지요? 철저한 평화주의자들인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활 풍경이 자못 궁금합니다.

 

작년인가요? 4년 동안이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당분간 세계의 여러 공동체를 탐방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 무모한 열정이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근육을 만들기 위해 2~3년간 세계를 떠돌겠다는 그 열정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정 복음적으로 산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잘 사는게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의미란 것, 이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환경, 즉 공동체가 필요할 테구요. 덜 소비하고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브라이언 월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에서는 괄시받아도 천국의 논리대로 꿋꿋이 함께 모여 사는 그런 움직임을 찾거나 만들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을 내가 어찌 아끼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소비사회에 덜 의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다면서 집도 스스로 짓고, 필요한 걸 만들어 쓰고, 터앝이라도 일구어 먹을 것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 하셨지요?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제 가지고 있던 살림살이도 어려운 공동체들에 다 나눠줬으니, 홀가분하게 떠나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내게 이런저런 공동체를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 최초의 방문지만 결정하고 일단 떠나면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했지요? 저는 그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순례자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이익을 다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순례자들은 길을 잃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잠시 길을 잃어도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사람과 풍경을 만나 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두 달간 유럽을 떠돌았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낯선 나라와 도시에 간다는 건 언제나 설렘과 더불어 불안을 야기하지요. 하지만 최초의 불안을 극복하고 나면 여유가 생깁니다. 급하다고 서둘 것도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노량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내가 길을 선택할 때도 있지만 길이 나를 선택할 때도 있다고 느긋하게 마음 먹으면 됩니다. ‘순례자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잠언 16:9)이라는 히브리 지혜자의 고백은 현실 경험에서 나온 지혜일 겁니다. ‘Solviture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의 라틴어인데 내가 늘 가슴에 갈무리해 두고 있는 말입니다.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염려할 뿐 어떤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이 말을 꼭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면 그저 가면 됩니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고,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려니 힘이 들지요. 맥락은 다르지만 뤼쉰은 ‘고향’이라는 산문에서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장자의 ‘길은 걸어갈 때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는 말과 통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은 다 길을 떠나는 이들이었습니다. 살던 땅, 태어난 곳,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흉년 때문에 블레셋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삭, 형 에서를 피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야곱, 그리고 형들의 미움을 사서 종으로 팔렸던 요셉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유목적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산다는 것, 그것은 물론 불안정하고 고단한 삶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향해 자기를 개방하고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떠나는 이들은 언제나 주류적 가치에 사로잡히기를 거절하는 이들입니다. 이진순 선생과의 인터뷰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인류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에서 변방으로 옮겨왔잖아요. 그런데 이런 역사적 변화는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버티니까. 작은 숲(공동체)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것!”(한겨레신문, 2015년 5월 9일 자 ‘이진순의 열림’, <소소한 기쁨이 때론 큰 아픔을 견디게 해줘요> 중에서)

 

중심부에 속하려는 가련한 노력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지요. 변방의 사유를 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자유인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신영복 선생님은 큰 아픔을 같이 짊어지고 소소한 기쁨을 같이 나눌 이웃을 만드는게 ‘더불어 숲’ 정신이라고 말하더군요. 중심에서 변방으로의 이행은 정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요.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은 인간을 가리켜 ‘Homo Viator’라고 말합니다. ‘떠도는 사람’ 혹은 ‘길 위의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 말의 어감이 참 좋지 않아요? 마르셀이 생각하는 인간은 마음에 근원적인 그리움을 품고 하나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호모 비아토르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지만 오랜 정착생활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몸이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길 위에 있으면서도 정착민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한곳에 붙박여 살면서도 늘 떠남 속에 있는 이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는 번잡한 세간을 떠나는 것이지는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가치관으로부터의 거듭된 떠남을 가리키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말이 떠나지 못하는 자의 슬픈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먼 길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내 방을 찾아올 때마다 나는 야곱 이야기를 상기시키곤 합니다.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먼 여정이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돌베개'는 그런 신산스런 삶의 은유입니다. 홀로 광야에서 잠을 청하는 야곱을 찾아오신 주님은 지금 그가 누워 있는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신 후 보호와 동행까지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기 28:15). 주님이 함께 하심을 참으로 믿는다면 괜히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어디에 가든 견결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여낙낙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분들이기에 저는 큰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두 분에게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순례 여행을 떠나면서 조이스 럽 수녀가 수첩에 갈무리해두고 아침마다 되뇌었다는 기도문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영혼의 보호자시여,

오늘 하루 길 가는 저를 인도하소서.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주님과, 주님의 땅과, 주님의 온 가족과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제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강건하여져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제가

주님의 평화의 임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숲' 이야기 제게도 나눠주세요. 고맙습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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