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29)

 

내가 속한 교회는 언약공동체인가

 

 

지난주 글에서 공동체에는 정답이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읽고 힘을 얻게 되었다며 고마움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공동체를 꿈꾸시고 소망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하여 저도 매우 기뻤습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공동체에는 정답이 없다는 선언을 듣게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신앙의 모임이 다 공동체인가, 공동체라고 말하는 모든 곳을 공동체라고 인정해주어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저는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 모임이 공동체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함께 하는 이들 상호간에 판단할 문제이지, 어떤 형태를 기준으로 외부에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주 글에서 저는 공동체를 부부의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세상 모든 부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꿈꿉니다. 그러나 건강한 부부관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안에서 그 질이 결정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부부는 40 정도의 수준에서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저렇게 살아서 행복할까 싶은데 그 부부는 좋아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또 어느 부부는 80정도의 수준에서도 서로에게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습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더 이상 부족함도 결핍도 없어 보이는데 더 나은 부부의 푯대를 향해 쉼 없이 행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부부의 핵심은 상호 행복함에 있습니다. 한 사람은 행복해 죽겠는데, 다른 한 사람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 부부의 관계를 행복하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상호 행복함의 핵심은 두 사람이 한 몸 되었을때 꿈꾸었던 그 삶을 얼마나 현실로 살아내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꿈꾸었던 그 삶이 현실이 되었을 때 부부는 서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부부들이 꿈꾸는 삶은 무엇이며, 그 삶을 이루어내기 위해 그들은 무엇을 행할까요? 맞습니다. 바로 약속입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생의 여정을 위해서 상호 서로에게 다짐했던 그 약속과 결단, 그것을 신실하게 지켜내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건강한 부부는 상호 약속에 신실한 부부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부부는 상호 약속에 불신실한 부부입니다. 약속에 신실하다 함은 상대방을 존경하고 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와 태도로 부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 건강한 부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것입니다.

 

부부의 모습과 같이, 교회공동체의 건강여부, 행복여부를 가르는 핵심도 언약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를 건강하게 일구어 가기 위해 서로에게 다짐하고 맹세한 그 약속이 무엇인가, 그 약속에 얼마나 신실하게 응답하고 있는가,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건강여부와 행복여부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이 약속에 근거하여 서로의 삶에 대해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여기 있습니다. 일반교회에서는 교인 상호간에 구체적인 언약의 약속이 부재합니다. 우리가 왜 함께 모였는지, 우리의 모임이 5년 후, 10년 후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가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지, 그 기대와 소망을 현실로 구현시켜 내기 위해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몫은 무엇인지에 대해 상호약속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좋은 교회를 일구어가자, 선교적 교회를 일구어가자 정도의 약속만이 교회안에 덩그러니 달려 있을 뿐입니다.

 

언약의 부재는 곧 목회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상호약속한 내용이 없기에, 무엇을 잘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책망할 이유와 근거가 없습니다. 신실하게 살아가지 않는 삶에 대해서, 정직과 거룩과 진실함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기심과 탐욕에 지배받는 삶에 대해서, 세속가치에 물들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교회공동체가 책망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공동체적으로 약속한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 존재하는 막연한 약속은 교회에 잘 출석하겠다 정도입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목회하는 내용이 종교의식에 신실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망 정도입니다. 신앙의 삶이 교회출석여부 정도로 축소되어 버린 것입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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