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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콩 고르는 하나님

by 한종호 2015. 7. 31.

두런두런(24)

 

콩 고르는 하나님

 

 

오래 전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던 오후, 겸사겸사 방앗간 아래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사님 집을 찾아갔습니다. 편한 걸음 편한 마음이었지요. 특별한 이유 없이 차 한 잔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계세요, 계세요?”

 

아무도 없는 듯 집안이 조용하여 몇 번을 불렀을 때에야 부엌문이 열렸고, 부엌에 있던 집사님이 환히 웃으며 맞아주었습니다. 귀가 어두운 집사님은 날이 흐려 집안이 어둑한데도 불을 따로 켜지 않은 채 부엌 창문께 바닥에 앉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콩을 고르던 중이었습니다. 가을에 콩을 털고 콩대를 한쪽 구석에 쌓아 두었는데 겨울을 지나며 보니 콩대 아래 떨어진 콩이 보였습니다. 콩을 본 집사님은 다시 한 번 콩대를 털었습니다. 지난가을 도리깨로 털고 부지깽이로 털고, 털만큼 턴 콩이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콩이 아까워 다시 한 번 털고 턴 콩을 고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콩을 고르는 방법이 재미있었습니다. 쟁반 위에 콩 한 움큼을 올려놓고 쟁반의 앞쪽을 기울이며 쟁반을 좌우로 흔들면 콩알이 주르르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는데, 그게 바로 성한 콩과 성치 못한 콩을 구별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성한 콩은 기울어진 쟁반을 따라 이내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지만, 벌레가 먹거나 썩어 말라비틀어진 콩, 혹은 잘못 껴든 돌멩이들은 주춤 주춤 쟁반에서 잘 구르지를 못합니다.

 

쟁반을 기울어뜨린 후 손바닥으로 콩을 한번 훅 훑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한 콩과 성치 않은 콩은 어렵지 않게 구별이 되었습니다.

 

집사님이 타주신 차를 마시며 곁에 앉아 콩 고르는 일을 잠시 거들고 있을 때, 문득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자비’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귀찮기로 따지자면 가을 타작이 끝난 후 소먹이로나 주고 말 콩깍지, 부지깽이와 도리깨로 털어 별로 남아 있을 것이 없는 콩대를 다시 한 번 털어 남은 콩을 추리고, 남은 콩을 쟁반에 쏟아 일일이 골라내는 집사님, 집사님의 손길을 통해 심판보다는 자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집사님이 남은 콩을 끝까지 찾으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라내고 또 골라내어 못 쓰는 콩만 따로 담아둔 그릇 속에서도 집사님은 다시 그 중 성한 놈을 또 골라내고 있었습니다. 행여나 그냥 버려지는 콩이 없나 살피고 또 살피고, 버릴 콩으로 골라낸 것 중에서도 몇 번이고 골라 다시 성한 콩으로 돌리는 집사님의 손길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법을 따라 단 번에 정죄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한 영혼이라도 더 건지기 원하여 살피고 또 살피시는 하나님의 가없는 자비가 콩 고르는 집사님의 주름진 손에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콩을 고르는 집사님의 손길은 어느새 하나님의 손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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