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1)

 

새벽(의) 날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개역개정),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공동번역), 여기 시편 139편 9절에 나오는 “새벽의 날개”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칸페이 샤하르”의 직역이다. 찬송가 뒤 교독문에 인용되어 있는 본문이므로 예배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들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것이 아마도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일 것이다. 날이 밝을 녘을 일컫는 신간의 한 대목에 새나 곤충이 날 때에는 펴는 신체의 한 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말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시편 139편 8-10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현존을 피하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을 공간적 차원을 빌어 묘사할 것이다. 제일 높은 곳 하늘 끝으로 피해도 하나님께서는 거기 계시며, 제일 낮은 곳 저 땅 밑 스올로 내려가도 거기 계시고, 새벽이 열리고 동이 트는 동쪽 끝에 가도 거기 계시고, 해가 지는 서쪽 바다 끝으로 피해 가도 거기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 “하늘 꼭대기와 땅 밑, 새벽이 밝아 오는 쪽과 해지는 먼 바다”의 네 요소는 있으나, 진술이 그렇게 명확하게 되어 있지는 않다.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은 어쩌면 사람(시인) 이 비록 새벽이 달리는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간다 해도 하나님께 잡히고 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문이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문 비평가들이 몇 가지 해결을 시도해 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미첼 다후드)를 소개한다. 고대역들, 예를 들면 70인역이나 시리아어역을 따라 “~의 날개”라고 되어 있는 히브리어 “칸페이”를 자음 본문을 바꾸지 않고 “크나파이”로 읽어 “나의 날개”라고 해석하고, “새벽”(샤하르) 은 동녘이 밝아오는 장소를 가리키는 문법적 요소로 보아 “새벽이 밝아오는 쪽 곧 동쪽에서”라고 읽으면서 곧바로 이어 나오는 “(서쪽) 바다 끝”과 대조시키는 것이다.

 

즉 “비록 내가 동쪽에서 날개를 치며 날아가 서쪽 바다 끝에 가서 자리를 잡아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바다”는 히브리어에서 서쪽을 가리킨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의 서쪽이 지중해 바다인 데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고개를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케드마) 서(얌마 : 바다 쪽) 남(네그마) 북(차폰)을 둘러보아라”라고 했을 때 서쪽은 “바다 쪽”이다. ‘개역개정’ 출애굽기 10장 19절의 “서풍”(공동번역은 “해풍”) 역시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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