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이야기(6)

 

다윗,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했다

- 사울 궁전에서의 다윗

 

 

1.

 

구약성서의 서술이 연대순이 아님을 감안해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후일담은 시간적으로 여간 헛갈리는 게 아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후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보냈고(당시 예루살렘은 여부스족의 도시였으므로 이 서술이 이치에 안 맞는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다) 칼은 자기 장막으로 가져갔다고 했다(사무엘상 17:54). 그런데 55절에서는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싸움이 벌어지기 전 얘기를 한다. 사울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다윗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아브넬 장군,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오?”라고 물었단다. 바로 앞에서 자기가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말이다. 아브넬이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사울은 그가 누군지 알아오라고 시켰는데 그 사이에 다윗은 전광석화같이 골리앗을 물리친다. 이에 사울이 다윗을 불러서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라고 물었고 다윗이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거다(55-58절).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연주해줬던 다윗을 사울이 몰라본 것은 복수의 자료들이 섞여 있기 때문일 거라고 앞에서 말했다.

 

군인으로서 다윗의 경력은 그 전에 이미 시작됐다. 수금 타는 악사 직책으로 왕궁에 들어온 다윗을 사울이 매우 사랑하게 되어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삼았다는 얘기를 사무엘상 16장 21절이 전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없으니 군인으로서 다윗의 실제 경력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겠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한 날 그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고 왕궁에 머물게 했다. 그렇다면 그 전에 다윗은 어디서 살았을까? 그가 수금 타는 악사였으니 왕궁에 머물렀던 게 아니었나? 집에서 왕궁까지 출퇴근했나? 다윗 이야기에 복수의 자료가 섞여 있음은 이래저래 부인하기 어렵다.

 

왕궁에서 다윗은 절친이자 정치적으로는 왕좌를 두고 경쟁해야 할 요나단을 만난다. 사울의 아들로 왕위계승서열 1위인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자마자 그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 아끼듯” 아끼게 됐다고 했다(사무엘상 18:1).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경우일까? 다윗과 요나단이 이성 아닌 동성이란 사실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고 한다(4절). 많은 경우 구약성서는 시점을 모호하게 말하므로 둘이 만난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요나단이 겉옷을 다윗에게 줬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다윗이 입을 옷도 없이 헐벗었기에 옷을 준 게 아니란 사실이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무기가 없어서 칼과 활을 준 것도 아니다. 여기엔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겉옷을 줬다는 건 옷 주인이 갖고 있던 권한을 받는 사람에게 넘겨줬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경우다(열왕기하 2장). 곧 요나단은 자기 겉옷을 다윗에게 넘겨줌으로써 왕위계승 권한을 넘겨준 거다. 그는 그 행위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을까? 그럴리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행위의 의미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 요나단은 애초부터 왕이 될 생각이 없었을까? 아니면 다윗을 보고 자기보다 그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을까? 재벌가 상속자가 가난한 집 딸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겠다고 상속받기를 포기하는 드라마처럼 말이다.

 

왜 그랬을까? 요나단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전엔 이유를 알 수 없다. 설령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더라도 이렇게 서둘러서는 될 일도 안 될 것 같다. 안 그런가?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어도 이렇게 서둘러서는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사전에 정지작업을 잘 한 다음에 추진하는 게 마땅한데 그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겉옷만 넘겨준다고 해서 일이 성사되겠나 말이다. 그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해도 말이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동여매면 바느질을 할 수 없다. 요나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랬을 것 같진 않다. 그랬다면 그는 바보다.

 

 

 

이렇게 서둔 사람은 요나단이 아니라 설화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울이 초대 왕이므로 그때까진 이스라엘에 왕위계승의 전례가 없었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장자가 계승하는 게 당시 중동지역의 관습이었다. 그러니 요나단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될 참이었다. 반면 다윗은 사울의 장자는커녕 완전히 남이었다. 그에게 왕위가 넘어가는 게 겉옷이나 준다고 성취될 일은 아니었던 거다.

 

설화자가 이 얘기를 서두에 갖다놓은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보인다. 다윗이 차기 왕이 될 것임을 첫머리에 분명히 밝히려 했다는 얘기다. 야훼에게 선택된 다윗을 왕위계승서열 1위인 요나단도 택했다고 말이다. 뒤집어 보면 설화자가 가졌던 조바심이 엿보인다. 이렇게 해서라도 다윗이 왕좌계승의 정당성이 있음을 내세웠어야 했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사울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을 잘 한다고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했는데 “온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그 일을 마땅하게 여겼다”(5절).

 

2.

 

이렇게 해서 다윗은 사울의 왕궁에 들어갔다. 그런데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별로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왕인 사울보다 신하인 다윗의 대중적 인기가 더 높았기 때문이란다. 다윗의 인기는 전쟁에서 거둔 승리에서 비롯됐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소구와 괭가리를 들고 나와서 사울 왕을 환영하였다. 이때 여인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사무엘상 18:6)고 했다니 사울이 질투를 품게 된 것도 이해가 간다.

 

다윗은 2인자가 취해야 할 처세술을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짐짓 그렇게 행동했든지. ‘지존’보다 더 인기를 누리는 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임을 그는 몰랐을까?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언짢다 못해 몹시 화가 났단다. 그는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으니…”라고 탄식한 후 이제 그에게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이라고 말했다고 했다(사무엘상 18:8-9). 이 말을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별 뜻 없이 탄식하듯 내뱉은 말일 수도 있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했을 수도 있다. 다윗의 왕위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설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사울의 입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다. 나중에도 사울은 몇 번이나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사울에 굴속에서 뒤를 보고 있을 때 다윗은 능히 그를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다윗이 자기 행위를 사울에게 설명하자 사울은 감정이 복받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괴롭혔는데 너는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야훼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으나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네가 오늘 내게 이렇게 잘 해주었으니 야훼께서 너에게 선으로 갚아 주시기 바란다. 나도 분명히 안다. 너는 틀림없이 왕이 될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서 굳게 설 것이다”(사무엘상 24:17-20).

 

자기 겉옷을 다윗에게 넘겨준 요나단도 같은 말을 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신 광야의 호레스에 머물러 있었을 때 요나단이 그를 찾아와서 격려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를 해치려는 나의 아버지 사울의 세력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걸세.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걸세. 나는 자네의 버금가는 자리에 앉고 싶네. 이것은 나의 아버지 사울도 아시는 일일세”(사무엘상 23:17).

 

나중에 다윗이 왕위에 오를 걸 사울도 알고 요나단도 알았다는 얘기다. 요나단이야 다윗을 왕위에 앉히려고 자기 겉옷까지 건네 줬으니 더 따질 게 없지만 사울은 그걸 알면서도 왜 다윗을 죽이려고 그토록 안간힘을 썼을까? 앞장에서 얘기했듯이 구약성서에는 그리스 비극의 ‘운명’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자기 노력으로 야훼의 계획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이 왕좌에 앉는 게 야훼의 계획임을 알았지만 그를 처치해버리면 야훼가 계획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설화자는 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사울이나 요나단의 입을 통해 다윗이 왕이 되리라는 말을 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설화자는 “독자 여러분, 잊으면 안 됩니다. 야훼의 계획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임을…”라고 말한다.

 

사울을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다윗을 장군으로 삼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다윗을 벽에 박아버리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다. 사울의 이런 행동은 야훼가 보낸 악한 영이 그를 덮친 결과라고 설명된다(사무엘상 18:10). 결국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에 임명하여 궁전 밖으로 내보냈다. 멀리 두기로 한 거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야훼가 다윗과 함께 있어서 전쟁에서 계속 승리했기에 사울은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됐다(13-15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스스로 그를 죽이려 하기도 했다. 두 번이나 창으로 그를 찌르려 했던 것이나(사무엘상 18:10-11; 19:9-10), 다윗이 그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인 미갈과 같이 있을 때 군사를 이끌고 그들 집에 가서 죽이려 했던 것이나(19:11-18), 다윗이 초하루 왕의 식탁에 불참하자 그를 죽이려 했던 것(사무엘상 20장) 등이 그것이다. 이때 다윗은 사울의 자식인 미갈과 요나단의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적은 가장 가까운 데 있다고 해야 할까….

 

3.

 

분명한 사실은 사울은 다윗이 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걸 알았다는 거다. 그는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물려받으려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윗이 자기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곧 다윗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아갈 거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들 요나단은 그것도 모르고 다윗을 돕고 있으니 여간 답답하지 않았을 거다. 오죽 화가 났으면 초하루 왕의 식탁에 불참한 다윗을 감싸고도는 요나단을 가리켜 사울이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라고 말했겠는가(사무엘상 20:30).

 

다윗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데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기에 그의 행동은 나름 타당하다. 다윗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블레셋 사람들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딸 미갈과 결혼시켜 사위 삼겠다는 사울의 제안은 양날의 칼과 같았다. 블레셋 사람들 손을 빌려 다윗을 죽이겠다는 뜻이므로 이는 손 안 대고 코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윗을 사위 삼겠다는 제안은 매우 위험한 제안이기도 했다. 위험한 사람일수록 가까이 두란 말도 있지만 반란을 일으키려는 다윗을 사위 삼으면 그에게 왕좌를 차지할 명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울로서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일 사울과 다윗의 싸움이 ‘명분’으로 결정된다면 사울은 다윗을 자기 집안사람으로 만듦으로써 그에게 왕좌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을 준 셈이 된다. 왕의 사위도 계승서열이 상당히 높지 않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을까? 속수무책으로 그냥 도망만 다녔나? 그는 소극적으로 도망만 다닌 게 아니었다. 일단 백성들의 인기는 사울을 월등히 능가했다. 선거가 있던 때는 아니었으니 인기가 곧 지지로 연결되고 지지가 곧 권력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중의 인기는 권력의 크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뒤지는 인기 때문에 사울은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았던가.

 

다윗은 ‘선전전’에도 상당히 능했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무엘상 22장은 흥미로운 얘기를 전한다. 다윗이 아둘람 굴속에 숨어 있었을 때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단다. 다윗은 이렇게 모인 사백 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사무엘상 22:2). 이들은 그후 계속 다윗을 따라다녔는데 나중엔 숫자가 늘어나 웬만한 전투는 이들만으로도 치를 수 있게 됐다.

 

하루는 사울이 기브아 산등성이에 한 나무 아래서 창을 들고 앉아 있었다. 한 나라의 왕의 모습으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왕쯤 되면 커다란 천막에 들어가 앉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났으므로 사울은 다윗이 내통해서 기습한 줄 알고 놀란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베냐민 사람들아, 똑똑히 들어라. 이새의 아들[다윗]이 너희 모두에게 밭과 포도원을 나누어 주고 너희를 모두 천부장이나 백부장으로 삼을 줄 아느냐? 그래서 너희가 모두 나를 뒤엎으려고 음모를 꾸몄더냐?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을 때에도 그것을 나에게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 또 내 아들이 오늘 나의 신하 하나를 부추겨서 나를 죽이려고 매복시켰는데도 너희들 가운데는 나를 염려하여 그것을 나에게 미리 귀띔해 준 자가 하나도 없었다”(사무엘상 22:7-8).

 

사울은 신하들이 다윗과 공모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줄 알았다. 아들 요나단도 다윗 편이니 왜 그런 걱정을 안 했겠나. 전에도 요나단이 부하 하나를 매복시켜 사울을 죽이려 했던 적이 있었으므로(정말?) 이번에도 똑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한 거다. 사정이 이런데 사울이 신경쇠약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다.

 

사울 이야기의 첫 마디가 흥미롭다. 그는 다윗과 공모한 신하들이 다윗에게서 밭과 포도원, 그리고 천부장과 백부장 자리를 기대했겠지만 그건 헛된 꿈이라고 말했다. 이 말 한 마디로 당시 왕과 신하의 관계를 추측하긴 어렵다. 정말 다윗이 사울 신하들에게 그런 약속을 했는지, 했다면 신하들이 그걸 믿었는지, 사울은 충성하는 대가로 신하들에게 뭘 줬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사울이 중요 직책에 친인척을 앉힌 걸 보면 당시 왕과 신하의 관계는 인간적 충성심이나 의리로 맺어졌다기보다는 물질적 보상으로 맺어진 관계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군사령관 아브넬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었으니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지간인 셈이다(사무엘상 14:50-51). 훗날 다윗도 마찬가지로 왕이 된 후 중요 직책에 친인척을 앉혔다. 사울은 자기 신하들이 ‘물질의 유혹’을 받아 다윗에게 넘어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다윗이 손을 써놨을 수도 있겠다.



<David and Jonathan, Gustave Doré>


 

4.

 

이제 가장 일어났을 거 같지 않은 얘기를 해보자. 다름 아닌 다윗과 사울 집안 사이의 혼맥 얘기다. 사울이 맏딸 메랍과의 혼인을 미끼로 블레셋과의 싸움에 나갈 사람을 찾았다는 얘기는 ‘여는 글’에서 했다. 다윗은 사울의 제안을 ‘겸손히’ 사양했는데 사울은 애초의 약속을 어기고 메랍을 딴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이상하게도 여기서 다윗이 블레셋과 싸움을 했다는 얘긴 없다(사무엘상 18:17-19). 그 후 사울은 둘째딸 미갈을 두고도 똑같은 약속을 했다. 미갈은 공주이면서 다윗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사울은 이번엔 구체적으로 다윗을 겨냥해서 블레셋 사람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첫 제안에 대해서는 제가 무엇이기에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며 ‘겸손히’ 사양했던 다윗이 이번엔 적극적으로 나서서 블레셋 사람 양피를 2백 개나 가져온다. 사울은 다윗이 미션에 성공할 수 없다고 믿고서 그를 블레셋 사람들 손에 죽게 하려 했지만 사태는 그의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는 쓸데도 없는 양피 2백 개만 얻고 금쪽같은 딸 미갈을 경쟁자요 잠재적 원수인 다윗에게 내줘야 했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당시 이스라엘의 주요 직책은 적성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왕과 가까운 친인척으로 채워졌다. 요즘 같으면 ‘친인척 배제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이 많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시대였다. 다윗이 왕좌에 오르는 데 약점 중 하나는 그가 왕위계승서열 안에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울의 친인척이 아니다. 같은 핏줄이 아닌데 친인척이 되는 유일한 길은 혼인으로 맺어지는 것뿐이었다. 다윗이 왕위계승서열 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길이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쿠데타 같은 방법이 아니라 적법하게 왕위에 오를 길이 열렸던 것이다.

 

사울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그는 바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했다면 그건 블레셋을 물리치는 게 워낙 중대한 국가적 과제였기 때문이리라. 다윗에게 왕위계승의 자격을 부여하면서까지 블레셋을 격퇴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아니면 위험한 적일수록 가까이에 두고 관리하려 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다윗을 쫓아냄으로써 목표를 달성하진 못하고 그에게 정당성만 부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다윗 이야기의 역사성을 적극 부인하는 학자들은 다윗과 미갈의 결혼 이야기 전체를 픽션으로 본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 것도, 사울이 블레셋 사람 양피 1백 개를 가져오면 미갈을 아내로 주겠다는 것도, 다윗이 그걸 초과달성했다는 것도 모두 픽션이란 거다. 이 모든 게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도 없지만 픽션임을 입증할 수도 없다. 그저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는 인상만으로 픽션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긴 역사적 사실이란 주장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만 픽션이란 주장은 증거가 필요치 않긴 하다. 역사적 사실임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입증하려 애쓰지만 그 반대는 그럴 필요 없이 그저 ‘그건 픽션이다. 증거가 없으니까.’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둘 사이의 논쟁은 공정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란 얘기다. 물론 벌어졌을 수 있다는 것과 벌어졌다는 것은 같지 않지만 구약성서에는 이 얘기 말고도 ‘위험한 혼맥’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으니 굳이 이것만 픽션으로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다윗의 첫 결혼, 곧 아히노암과의 결혼이다.

 

아히노암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사무엘상 14장 50절이다.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인데 아히마아스의 딸이다. 사울의 군사령관은 아브넬인데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다.” 여기서 아히노암은 사울의 아내로 소개된다. 그녀는 아히마아스의 딸이다. 그런데 그녀가 다음 등장할 때는 다윗의 아내로 소개되는 게 문제다. “다윗은 이미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이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두 사람이 다 그의 아내가 되었다”(사무엘상 25:43).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 어떻게 다윗의 아내가 됐는지를 서술하는 와중에 이미 다윗에게는 아히노암이란 아내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동일인물일까, 아니면 동명이인일까?

 

구약성서에는 아히노암이란 이름이 모두 일곱 번 등장한다(사무엘상 14:50; 25:43; 27:3; 30:5; 사무엘하 2:2; 3:2; 역대기상 3:1). 일곱 번 모두 특별한 내용 없이 이름만 소개되므로 그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이름 외엔 거의 없다. 이 중 첫 번째만 사울의 아내로 소개되고 나머지는 모두 다윗의 아내로 소개된다. 첫 번째만 그녀의 아버지가 ‘아히마아스’라고 밝히고 나머지는 아버지 이름 없이 ‘이스르엘 사람’으로만 밝힌다.

 

이 정도 정보로는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이 동일인물인지 동명이인인지 확인할 수 없다. 두 가지 의심 가는 점이 있는데, 하나는 왜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을 소개할 때는 아버지 이름 없이 ‘이스르엘 사람’이라고만 소개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녀가 아버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무명 집안 출신이었을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후자라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종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혹시 그 사정이란 게 그녀가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동일인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 설득력 있는 추측은 아닐지라도 전혀 불가능한 추측도 아니라고 보인다. 안 그런가?

 

다른 하나는, 만일 둘이 동일인물이라면 다윗은 사울 생전에 아히노암과 결혼했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그게 가능했을까? 사울은 사무엘상 31장에 가서야 죽는다. 구약성서 서술이 연대순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이 얘기를 어떻게 연대순 아니게 읽겠는가. 그렇다면 둘을 동일인물로 보긴 힘들다. 조얼 베이든은 둘이 동일인물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렇게 볼 확고한 증거는 내놓지 못한다. 그는 다윗 이야기 대부분을 픽션으로 판단하는데 대개의 경우 그렇게 볼 근거를 대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장점도 많지만 약점 또한 적지 않다(Joel Baden, The Historical David: The Real Life of an Invented Hero[New York: HarperOne, 2013]).

 

설화자는 실제는 둘이 동명이인인데 동일인물처럼 보일 의도를 가졌을까? 그래서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을 거론할 때는 아버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게 아닐까? 이게 사실이라면 그 의도가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둘이 동일인물인 것처럼 보임으로써 다윗이 적법한 왕위계승자임을 부각하려는 게 설화자의 의도가 아닐까? 그 시대엔 왕의 아내나 후궁과 동침하는 건 왕이 됐다고 선언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그래서 아브넬이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범했고(사무엘하 3:7) 압살롬도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백주에 성관계를 가졌다(사무엘하 16:20-23). 이처럼 다윗이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과 결혼함으로써 적법한 왕위계승자가 됐음을 만방에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어떤가? 그럴듯한가?

 

5.

 

다윗 이야기는 다윗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윗에게 우호적으로 기록된 얘기란 뜻이다. 사건의 전말을 다르게 전할 수도 있었지만 가급적 다윗에게 유리하게 전했고,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사건도 다윗에게 유리한 면은 부각시켰고 불리한 면은 감추는 식으로 기록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두 번이나 살려준 얘기가 대표적인 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쳐서 엔게디 산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고 돌아온 후 다윗이 거기 숨어 있다는 얘길 듣고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겨서 그를 잡으러 갔다. 그런데 긴장해서 그랬는지 사울이 뒤를 보고 싶어져서 한 동굴에 들어가서 뒤를 보고 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기 다윗 일행이 숨어 있었단다. 다윗의 부하들은 옳다구나 하고 “드디어 야훼께서 대장님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날이 왔습니다. ‘내가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 줄 것이니 네가 마음대로 그를 처치하여라.’ 하신 바로 그 날이 되었습니다”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는 거다(사무엘상 24:4). 왜 안 그랬겠나. 사울은 혼자 무방비 상태로 있고 자기들은 무장하고 떼 지어 있으니.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 말을 듣지 않고 사울의 겉옷자락만 몰래 잘랐다. 그런 기회에 사울을 안 죽인 것도 놀랄 일인데 다윗은 그것조차 양심에 가책이 되어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야훼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왕은 바로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사무엘상 24:6).

 

여기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은 이유가 밝혀진다. 왕은 ‘야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란 거다. 다윗은 자기가 그런 짓을 할 기미가 보이면 자길 막아달라고 신하들에게 당부한다. 야훼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은 절대 죽여서는 안 됐던 모양이다. 그가 영원히 산다는 뜻은 아닐 터이니 자연사를 그가 누릴 축복으로 여겼을까? 나중에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했을 때 그는 치욕스럽게 블레셋인에게 죽느니 차라리 무기담당 병사 손에 죽는 게 낫겠다 싶어 그에게 죽여 달라고 말했다. 병사 입장에선 누구 명령이라고 어기겠냐마는 그는 두려워서 사울을 찌르지 못했다. 결국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어져 죽었고 이를 본 병사도 같은 방법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사무엘상 31:4-5).

 

그런데 사울의 죽음 얘기가 <사무엘하>에 오면 적지 않게 달라진다(사무엘하 1:1-16). 여기서 사울이 죽는 광경을 목격했고 그걸 도와준 사람은 무기담당 병사가 아니라 아말렉 사람이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사울을 봤는데 그는 부상당해 가까스로 창으로 몸을 버티고 있었고 적의 병거와 기병대가 사울에게 바싹 다가오고 있었단다. 그때 사울이 그를 불러서 괴로워 견딜 수 없으니 자길 죽여 달라고 했다는 거다. 죽여 달라고 했다는 점에선 앞의 얘기와 일치하지만 나머지는 다르다. 아말렉 사람이 보기에도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그는 사울을 죽인 후 머리에 씌어 있던 왕관과 팔찌를 벗겨서 다윗에게 가져왔다. 이 얘기를 듣고 다윗은 옷을 잡아 찢고 해질 때까지 울며 금식한 뒤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어떻게 감히 겁도 없이 손을 들어서 야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살해하였느냐?”라고 호통 친 후 부하를 시켜 그를 죽였단다.

 

다윗은 야훼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를 죽인 자를 처형했다. 야훼의 기름 부은 자는 절대 죽여서는 안 되고, 또 그런 짓을 저지른 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거다. 이게 당시 널리 통용되던 관습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다윗은 그런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야훼에 대한 신심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설화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거였을 게다.

 

다윗은 왕이 되고 싶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야훼가 자길 선택했음을 알고 있다. 예레미야나 요나처럼 야훼의 부름을 거절하고 빼는 모습을 그가 보인 적은 없다. 야훼에 대한 순종이든 개인적인 야망이든 그는 왕이 될 ‘운명’을 받아들였던 거다. 사울의 사위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는 데는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가 사울 집안의 일원이 아니란 사실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백성들의 인기는 높았지만 그땐 그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다윗에게 왕좌로 가는 길은 살얼음판 길이었다.

 

이 경우 ‘만일’을 상상하는 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만일 다윗이 기회가 왔을 때 사울을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봤나? 두 번이나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울을 죽였다면 그 후 사태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태도는 그래도 바뀌지 않았을까? 사울 왕실 사람들과 신하들은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야훼의 지시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점지한 사무엘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사울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고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렸던 백성들은 다윗이 사울을 죽인 걸 알고도 여전히 다윗을 지지했을까? 무엇보다 사울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새로 다윗을 선택한 야훼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안 그래도 사울을 없애려 했는데 나대신 그 일을 해줬으니 수고했다.’고 다윗을 칭찬했을까?

 

야훼가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절대 죽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다윗이 했을 수 있다. 그게 자신만의 신념이었을 수도 있고 당시 통용되던 관습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정치적 고려’도 했을 수도 있겠다. 자기가 사울을 죽였을 때 벌어질 정치적 파장을 고려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울이 단순히 원한에 사로잡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이라면 다윗이 그 좋은 기회를 놓쳤을 리 없다. 하지만 사울은 왕이고 다윗은 그를 뒤이어 왕이 되려는 남자였다. 왕위계승서열에 끼지도 못한 주제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왕위계승에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눈 밖에 나면 안 됐을 거다. 안 그런가? 가뜩이나 그에겐 ‘적’이 많았으니 더욱 그랬을 거다. 그가 사울을 죽였어도 요나단이 여전히 그를 지지했을까? 글쎄…. 사무엘은 어땠을까? 역시 ‘글쎄’다. 사울 일가는? 그랬다면 당연히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거다. 백성들은 어땠을까? 그래도 백성들은 ‘사울은 수천 명을, 다윗은 수만 명을!’이란 노래를 불렀을까? 대중의 기호는 수시로 바뀐다. 안 그런가? 마지막으로 야훼는 어땠을까? 짐작하기 어렵다. 다윗더러 ‘잘 했다’ 했을까, 아니면 ‘네가 감히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자를 죽여!’라고 했을까? 어느 쪽일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도 신앙과 정치적 고려가 모두 작용했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면 둘을 구별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말해야 할 게다. 종교와 정치를 구별하는 건 근대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사울 당시엔 그런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다윗은 야훼의 선택을 받았지만 그걸 성취하는 것은 자기 일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결국 자기가 이길 거라고 믿었단 얘긴 아니다. 모로 가도 결국은 서울로 갈 테니 염려하지 않았단 뜻도 아니다. 그도 불안하고 두려웠던 때가 있었을 게다. 왜 안 그랬겠는가. 자기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사울이 자길 죽이려고 혈안이 돼있는데 왜 두렵지 않았겠나 말이다.

 

야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게 두려움을 물리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겠지만 그것만 믿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터이다. 자길 겨냥한 사울의 칼이 다가오는 걸 느끼는데 무엇이 그를 안심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왕좌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이런 그에게 자기 신념이 됐든 시대의 관습이 됐든 야훼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걸 지킬 여유가 있었을까? 자기가 죽을 상황에 있는데, 그리고 왕권을 장악하는 것과 무관한데도 그 신념(또는 관습)을 지켰을까?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는 게임에서 말이다. 그의 처지에 비춰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상상해보는 것은 다윗이 누군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David and Jonathan, St Giles Cathedral>

 


6.

 

마지막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살펴보자. 둘 사이의 관계를 미묘하다고 보고 관심 가진 부류는 페미니스트 성서학자들과 퀴어 성서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둘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로 보게 된 것이다.

 

요나단은 군인이었다. 그땐 지도자라면 누구나 전쟁에 나가 아군을 이끄는 지휘관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왕의 장남이니 지위와 함께 무거운 책임도 지고 있었을 터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인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전쟁터의 금기를 어겨서 아버지 사울에 의해 죽임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들이 나서서 그를 옹호했으니 말이다(사무엘상 14:45).

 

요나단 얘기의 전반부는 그가 치른 전쟁 얘기다(사무엘상 13-14장). 사울이 왕이 되는 대목에서 그는 잠시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그는 다윗과 얽힌다. 훌륭한 군인이던 그가 다윗을 만난 후론 달라진 거다. 전쟁에 나가 싸우기보다 다윗을 옹호하고 그의 편을 드는 데 열중하는 걸로 보인다. 요나단의 일생도 사울의 그것 못지않게 비극적인데 이유는 그가 다윗을 만났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이 뭘 뜻하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궁전에 들어온 후에 만났는데(사무엘상 18:1-3) 텍스트는 둘이 뭘 계기로 만났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바로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고 말한다(3절). 요나단은 다윗을 보고 첫눈에 반했을까? 우리로선 알 수 없지만 요나단이 후계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겉옷을 벗어줄 정도로 둘이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겉옷을 벗어 줬다는 것은 인간적인 우정보다는 정치적 관계를 보여주는 행위다.

 

그 후 다윗은 블레셋 사람 양피 2백 개를 바쳐서 사울의 사위가 됐다. 다윗과 요나단은 처남매부간이 된 셈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를 시간이 갈수록 불안정해져갔다. 사울이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사무엘상 19:1). 이후 요나단의 삶은 오로지 다윗을 위한 삶이었다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왜 죽이려 하느냐고 말이다. 사울은 그의 말에 설득되어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한다(19:2-7). 하지만 다윗이 다시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그의 질투가 폭발하고 만다. 야훼가 보낸 악한 영에 이끌려서 생긴 질투를 그가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는 다시 한 번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 했고 이에 다윗은 집으로 도망쳤지만 사울은 부하들을 보내 그를 죽이려 했다. 미갈이 아니었더라면 다윗은 그날 죽을 수도 있었다. 사울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윗은 사무엘이 사는 라마로 도망쳤는데 사무엘은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그를 데리고 나욧으로 갔는데 사울은 거기까지 쫓아왔단다. 사울에게 이런 집요한 면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이게 모두 야훼가 보낸 악한 영 때문이었나? 그랬다면 그 영은 집요하긴 하지만 능력은 제한적이었음에 분명하다. 영의 역할은 사울을 충동해서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울의 충동심을 가라앉혀 다윗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이후 다윗은 요나단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죽음을 모면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윗은 나욧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사울이 그토록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어떻게 그가 버젓이 집으로 돌아왔는가 말이다. 그는 집에 와서 숨지도 않았다. 초하루에 임금과 함께 하는 식탁에 가게 되어 있었다니 말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다윗은 요나단에게 따졌다. 내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느냐? 내가 무슨 몹쓸 일이라도 하였느냐? 내가 자네의 아버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아버님이 이토록 나의 목숨을 노리시느냐?”(사무엘상 20:1). 요나단은 그 말을 듣고 펄쩍 뛴다.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할리 없다고 말이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약속한다. 만일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는 게 확인된다면 미리 알려주어 피하게 하겠다고 말이다.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믿었을까? 요나단의 말만 갖고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은데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미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고 실제로 창으로 그를 죽이려 했으니 말이다. 요나단은 사울이 선언하는 걸 직접 들었다(사무엘상 19:1). 그런데 어떻게 그가 다윗에게 “자네를 죽이시다니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걸세.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큰일이든지 작은일이든지 나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하시지를 않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이 일이라고 해서 나에게 숨기실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네.”(사무엘상 20:2)라고 말할 수 있나 말이다.

 

요나단이 너무 순진했을까? 그는 정말 사울이 다윗을 죽이지 않을 걸로 믿었을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왜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는가 하는 점이다. 사울은 미쳤으니까? 다윗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울이 미쳐서 그를 죽이려는 거라고 생각했나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길은 사울이 정신을 차리는 것 밖에 없다.

 

다윗이 사울에게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요나단은 해본 적이 없을까? 사울의 불안과 두려움이 이유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다윗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 하는데 그게 성공하면 자기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요나단은 해본 적 없을까? 사울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그는 이새의 아들[다윗]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요나단]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라고 말했고 따라서 “빨리 가서 그 녀석[다윗]을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 녀석은 죽어야 마땅하다.라고 명령했다(사무엘상 20:31).

 

사울의 태도는 확고한 데 반해 요나단의 태도는 모호하다. 그는 모두의 눈에 분명히 보이는 걸 못 본다. 왜 그는 다윗이 갖고 있는 쿠데타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을까? 왜 그의 눈엔 그게 보이지 않았을까? 요나단도 그걸 다 알았고 간파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정이 있어서 알면서도 다윗 편을 들었을까? 그렇다면 그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대목에서 정치적 고려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추측하는데 그게 둘 사이의 사랑, 곧 동성 간의 사랑이다.

 

7.

 

오랫동안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돈독한 우정의 관계로 여겨져 왔다. 남자들끼리 있을 수 있는 우정의 최고 모범으로 여겨져 온 거다. 그런데 수십 년 전부터 이들의 관계를 달리 읽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른바 ‘퀴어 성서학자들’이 그들이다. 전에는 별 생각 없이 우정의 관계의 표현으로 이해했던 구절들을 다르게 읽게 됐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요나단과 다윗이 처음 만난 얘기가 사무엘상 18장 1절에 나온다. 이 대목에서 요나단의 행동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뒤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요나단은 제 목숨을 아끼듯이 다윗을 아끼어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사무엘상 18:1-4).

 

요나단이 다윗을 “제 목숨을 아끼듯” 아껴서 그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었다고 했다. 그뿐인가, 요나단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과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줬단다. ‘언약’이란 말에는 우정과는 거리가 있는 뜻이 들어 있고 겉옷과 무기를 넘겨주는 행위는 왕위계승자로서의 권한을 넘겨주는 정치적 행위이므로 그 역시 우정과는 거리가 있는 행위다. 우정이 깊어서 그런 것들을 넘겨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구절을 근거로 둘 사이를 동성애 관계로 추측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그 후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의도를 간파하고 다윗에게 그걸 알려줘서 목숨을 구한 얘기는 앞에서 했다. 이런 요나단을 가리켜 사울이 화가 나서 외친 외침이 우리 주목을 끈다.

 

“이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 될 뿐이다”(사무엘상 20:30).

 

사울은 요나단이 다윗과 ‘단짝’이 된 게 ‘부끄러운 일’이고 그를 낳은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라고 말했다. 사울은 여기서 일차적으로 다윗에게 화가 났지만 그는 멀리 있으니 가까이 있는 요나단에게 화를 쏟아낸 거다. 그는 장남이요 왕위계승자인 요나단이 다윗의 ‘단짝’이 됐기에 화가 났다고 했다. 여기에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 새번역성서가 “(네가) 그런 녀석과 단짝이 되다니”라고 번역한 대목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네가 그런 녀석을 ‘선택’하다니”가 돼야 한다. 여기 ‘선택하다’(히브리어로 ‘바하르’)라는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야훼가 사울을 ‘선택’했고 ‘다윗’을 ‘선택’했다고 말할 때 사용된 바로 그 동사 말이다. 요나단의 ‘선택’에 담긴 의미가 그만큼 중대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겠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요나단이 다윗을 ‘선택’한 게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발가벗기는 망신”이라는 구절이다. 그게 왜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그를 낳은 어머니를 발가벗기는 일이었을까? 요나단이 쿠데타를 꾸미는 다윗과 공모한 게 수치의 원인이었나, 아니면 본문 그대로 그가 다윗을 ‘선택’한 게(그게 뭘 의미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수치의 원인이었나? 본문에는 전자로 해석할 근거가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를 택한다면 그건 둘의 관계를 동성애로 보지 않으려는 선입견 탓이 아닐까 싶다. 사울은 둘의 관계가 동성애 관계임을 이미 파악한 걸로 보인다. 안 그런가? 그래서 이런 강한 표현을 써서 요나단을 비난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요나단이 죽었다는 얘길 듣고 다윗이 보인 행동을 보자.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온 젊은이를 죽인 후에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조가를 만들어 백성들로 부르게 했단다(사무엘하 1:17-27). 그는 요나단을 위해선 이런 노래를 불렀다.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 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사무엘하 1:26).

 

여기 ‘여인의 사랑’이 등장하고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것보다 더 진했다고 말하니 동성애 코드가 떠오르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 치자. 다윗과 요나단이 동성애 관계였다고 치자는 말이다. 거기에 놀라서 기겁하지도 말고 반갑게 여기지도 말고 그게 전체 다윗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따져보는 게 성서 해석자의 일이겠다. 이제부터는 둘의 관계를 동성애 관계라고 전제하고 얘기를 풀어보자.

 

레위기에는 분명 동성애를 금한다.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레위기 18:22).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이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레위기 20:13). 레위기뿐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가 여자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성서가 동성애를 어떻게 보는지를 따져 물을 때 흔히 간과하는 점이 이것이다. 구약성서는 여성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다윗 이야기의 설화자는 둘 사이의 관계를 비판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물론 칭찬하거나 장려하지도 않는다. 레위기는 분명히 그런 사람은 죽이라고 명했는데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레위기가 금하는 것은 동성 간의 성관계다. 둘이 같이 잠자리에 들지 말라는 거다. 이성애가 이성 간의 성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듯이 동성애도 동성 간의 성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동성애라고 해서 ‘플라토닉 러브’가 없으란 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을 사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울의 비난은 동성애 자체를 겨냥했다기보다는 다윗의 쿠데타 음모를 겨냥하고 있으니 그건 다른 얘기가 되겠다.

 

다윗도 요나단도 모두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으니 둘 다 양성애자였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아내들과 결혼관계를 유지했고 요나단의 장애자 아들 므비보셋을 보호해줬다(사무엘하 9:10-13.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겠다). 설령 둘이 동성애 관계였다고 해도 설화자는 그걸 정치적 의미로만 보고 있다. 요나단은 ‘애인’ 다윗에게 자기 권리를 모두 넘겨줬고 그를 사울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줬다. 설화자는 둘의 관계를 도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판단해서 비판하지 않는다.

 

8.

 

다윗이 사울의 궁전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건이 벌어졌다. 그 얘기를 다 할 수 없어서 두 장에 걸쳐서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만 짚어봤다.

 

‘다윗’은 ‘사랑받는 자’(beloved)란 뜻이다. 이름처럼 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미갈이 그랬고(사무엘상 18:20, 23) 요나단이 그랬으며(사무엘상 18:1, 3; 19:1; 20: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사무엘상 18: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이 늘 앞장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 새번역성서는 ‘좋아하였다’라고 번역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사랑했다’(아하브)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원칙 없이 마음대로 번역하면 곤란하다.). 심지어 사울조차 그를 사랑했다(사무엘상 16:21). 무엇보다 그는 야훼의 맘에 드는 자로서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렀다. 그는 야훼의 사랑 역시 받았다고 하겠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난다. 야훼의 영이 그에게 머물렀기에 그랬을까? 하지만 야훼의 영도 살해 위협 그 자체를 없애진 못했다. 결국 그는 사울의 궁전에서 도망쳐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 더 있다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떠도는 ‘부랑자’가 됐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생존을 위해서 갖은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소규모 ‘조폭’ 노릇도 했고 돈 받고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용병 노릇도 했다. 그는 밑바닥에 떨어졌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다음 장에서는 ‘떠돌이 다윗’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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