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4)

 

처음부터 망쳤구나!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주겠소?”(요한복음 2:13-25).

 

너무도 변해 있었다. ‘빛의 아들들’과 섞여 사느라 십여 년을 멀리했던 성전이기는 하지만 이건 시장 바닥이었다. 해방절이 다가오는 때라 제관에게는 대목이라겠지만(판공에다 찰고, 십일조 책정에 오죽이나 바쁠까?) 해도 너무들 하다.

 

열두 살 적 추억을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정말 웅장하고 성스럽고 신기했었다. 온 겨레가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지만 내겐 정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듯한 친근감을 주는 곳이 여기 성전이다. 핏덩어리인 내가 강보에 싸여 왔던 곳, 우리 어머니가 시므온이니 안나니 하는 노인네에게 내 팔자가 기구할 테니 조심하라는 말을 들으셨다는 곳이 여기라서 그럴까?

 

 

 

 

그날 긴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무엇인가 질문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모든 율법학자들이 나에게 이것저것 묻곤 했다. 덕분에 친척들이 떠난 줄도 몰랐었지. 그 시간이 사흘이었으니 어머니한테 단단히 회초리를 얻어맞을 뻔했던 기억이 난다.

 

‘악한 대제관’이 교회 권력의 우두머리로 군림할 시기는 7년 대란뿐이라던 말이 뇌리에 남아 저런 행동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허나 내가 공생활을 시작한 첫 번 상경길인데 어떻게 성전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부정한 권력의 하수인으로 온갖 사회악을 도맡는 자, 반공의 가면을 쓴 맘몬 숭배자, 현실기피자가 이 성전에 들어와 제사를 좌지우지하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성전에서까지 쾌락에 대한 욕망, 인색한 마음, 권력에의 의지가 하느님의 자리를 점유하다니 견딜 수 없었다. 헌금 액수와 돌 덩어리 숫자와 총 공사비로 하느님의 영광을 재다니 이럴 수가 없다. 제관도 신도도 성전 앞 구걸하는 거지와 뒷문으로 들어오는 빈민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분노가 저 하찮은 장사꾼에게로 터진 것이다. 나다나엘이 전하기로, 정신이 나간 내가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땅에다 팽개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채찍을 들고 후려치다니…. 장사꾼 역시 권리금을 내고 있겠다, 어떤 연줄로든 제관의 빽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터이라 반발이 없을 리 만무했다.

 

다행히 법률적인 시비는 없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라고 고작 빈정거리기만 했다. 마치 네가 예언자냐는 투였다. 나 역시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나의 출세는 이제 처음부터 망쳤다는 것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성염/전 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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