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5)

시간이 없어

 

 

대학로를 거닐다 보면 언제나 드는 생각. 서울대병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의 공간이 뚜렷이 나뉘어 있구나. 한쪽은 생기발랄한 음악과 문화의 향기가 물씬 나는 거리 공연, 젊은이들의 활기찬 걸음으로 메워져 있고, 한쪽은 육신의 고통, 미래를 알 수 없는 근심, 신음 소리 등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리쬐는 햇살의 양은 동일한데 이편과 저편의 기운은 건널 수 없는 협곡이 가로놓인 것처럼 다르다.

 

나 역시 이편과 저편이 확연히 다르다. 이편에서 돌아가는 나의 분주한 일상은 순식간에 나를 해치워야 할 일들로 몰아간다. 빨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도엽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도엽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세계로 갑자기 이동하는 기분이다. 특히나 도엽 어머니의 눈물을 들을 때면 나는 수화기 너머의 저 세계도 아득하게 느껴지고, 할 일이 빼곡히 쌓여 있는 이 세계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모호한 중간지대에서 어느 곳이 진짜 현실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리곤 한다.

 

                          도엽의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도엽의 상태, 가족들의 증언, 그리고 의사선생님의 예측으로 미루어 보아 도엽의 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순간에 결코 이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상과 현실은 좀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다. 어느 곳이 진짜 현실이건 간에, 게다가 말로 잘 표현되지 않아 언어가 계속 미끄러진다 하더라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 지금까진 도엽과 함께 독자들을 향해 글을 썼다면, 이젠 거꾸로 독자들과 함께 도엽을 향해 글을 써야겠다. 도엽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도엽이 알게 해주고 싶다.

 

이루지 못한 꿈, 현재진행형인 꿈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해로 오래 오래 떠올리는 해는 중3 시절, 거의 혼자 살아야 했을 때다. 일식 요리사였던 아빠는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엄마와 함께 지방으로 가게를 하러 떠났다. 대학에 들어간 큰누나는 분주했고, 작은누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끔씩 들어왔다. 큰누나가 한 번 들어올 때마다 국을 한 냄비 가득 끓여 놓고 가곤 했다. 그런데 어린 도엽은 한여름에 국을 끓여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혼자 있으니 별로 밥을 차려 먹고 싶지도 않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허옇게 곰팡이가 슬어 모두 내버려야 하곤 했다. 그러면 그것을 음식쓰레기 봉투에 놓아두고 또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쓰레기봉투를 열어 보니 온갖 벌레들이 번식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제일 싫어하는 애벌레! 지금이라면 그것을 밖으로 가져가 내버릴 판단력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해하면서도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밖으로 내버렸다.

 

 

                          도엽의 초등학교 시절

 

 

1년을 거의 혼자 살아 본 경험은 그에게 독립심을 키워 주었다. 도엽 스스로 그 시절을 독립심이 키워진 때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열여섯 살 때 1년의 자취 생활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쓸쓸하고 외로운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일을, 그는 독립심을 키우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그에게는 니체가 말한 일종의 운명애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역경을 오히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

 

내가 가족이 아니라 이런 어려움을 덤덤하게 말하는 건가 도엽의 어머니에게 여쭌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걔가 그렇게 덤덤해서 오히려 너무 속상해요라고 말했다. 친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그는 1을 생각하면 2와 같은 다른 숫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알파벳으로 넘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친구였다고 한다.

 

21살에 골육종이 발병하고 나서 가족들이 거의 모든 것을 챙겨 주려 할 때마다 도엽이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할게였다. 가족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해주려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 게다가 실명을 하고 나니 가족들이 밥까지 떠 먹여 주려는데, 그게 다 사랑인 걸 알고 있지만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독립적인 삶이 그에겐 그만큼 중요했다.

 

중학교 때 혼자 살아 본 경험은 대학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함께 자취 생활을 하는 꿈으로 이어졌다. 자취하면서 요리도 하고 살림도 해 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중에서도 요리를 가장 해 보고 싶었다. 각종 재료들을 이리 썰고 저리 썰고, 도마 위에서 현란하게 칼놀림을 하며 김치찌개, 제육볶음 같은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오래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그 꿈을 포기했다. 그 꿈.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는데. 이룰 수 있는 꿈이었는데. 도엽의 인생에선 그런 꿈조차 사치스러운 것이었을까.

 

하지만 병에 걸리면서 새롭게 꾸게 된 꿈이 있다. 하나는 시각장애인용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시각을 잃고 보니 시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길 만한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도 성인도 아닌 암환자여서 소속감이 없었는데, 시각장애인이 되니 그래도 자신이 속할 그룹이 명확해졌다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소속감이 있어도 이들과 함께 놀 만한 것들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으니 함께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시각장애인들이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던 도엽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끼리 더 재미있게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연히 지인에게 이러한 도엽의 꿈을 이야기했는데, 지인은 프로그래머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자신이 한번 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도엽과 연락을 취했고, 도엽이 구상하는 게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대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엽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러나 이 꿈은 지금 도엽이가 긴 잠에 빠져들어 있다 하더라도 프로그래머인 그분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도엽의 또 하나의 꿈은 지역(local) 암환자 커뮤니티를 돕는 것이다. 이것은 도엽을 담당한 의사선생님의 꿈이기도 한데 도엽은 그 꿈을 돕고 싶다 했다. 이 꿈 역시 다른 많은 이들에 의해 점차 이루어질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이상, 나 역시 도엽의 꿈에 동참하고자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자취하면서 요리를 멋지게 하며 살고 싶던 도엽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도엽의 새로운 꿈은 다른 이들의 마음에 심겨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도엽의 고등학교 시절

 

도엽에게 보내는 편지

 

도엽은 현재 코로 숨 쉬지 못해 입으로 호흡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진통이 잦아져 이전보다 더 많은 진통제를 먹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상태에 이르렀다.

 

최근까지 치료를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암세포만을 제거하는 표적치료도 해 보려 했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 확률은 1-5퍼센트 정도이고, 그 효과 역시 생명 연장 최대 4개월이라는 말을 듣고서 그는 표적치료를 포기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손톱, 발톱이 빠지고 살이 짓무르는 부작용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표적치료도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했다. 도엽과 그의 가족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자가조혈모세포이식도 완치에 대한 희망으로 그 끔찍한 과정을 통과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 암이 순식간에 다시 퍼진 건 아닌지 엄마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도엽이 눈을 완전히 잃은 건 병원을 가는 길 위에서였다. 걷다가 길 위에서 도엽의 세상은 갑자기 캄캄해진 것이다. 이런 일들까지 겪었는데, 치료 효과가 지극히 저조한 치료법을, 그것도 부작용을 감내하면서까지 다시 시도해 본다는 건 엄마로선 다시 한 번 무기 없이 아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 길로 가도, 저 길로 가도 아들에겐 모두 고통의 길이다. 엄마가 대신 가 줄 수만 있다면 몇 백만 번이라도 가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멈추게 할 도리가 지금으로선 전무하다.

 

물론 엄마는 하루라도 더 아들을 이 땅에 붙들어 두고 싶은 심정이다. 면역력 좋아진다는 주사도 구해서 맞춰 보고, 몸에 좋다는 홍삼도 먹여 보고, 각종 건강식품도 먹여 보았다. 아들은 엄마가 돈 쓰는 걸 염려하고 미안해하지만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옆에 머물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뭔가를 구해 올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때다.

 

지난 8월 포천의 자작나무숲으로 가족이 여행을 떠났을 때 물가에서 엄마는 도엽에게 말을 건넸다. “네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해. 네가 옆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도엽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나 건강해질 거야.” 도엽은 엄마가 아들바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엄마는 도엽이 절대 힘든 얘길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끔찍이도 사랑할 때 고통에 대해서는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다.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제안받았을 때도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엽에겐 지금 11초가 아쉬운 형편이다. 더 함께 있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고, 더 대화하고 싶다. 이제 곧 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까.

 

시간이 없어라는 도엽의 말에, 나는 도엽의 친구들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순간 도엽이가 일전에 알려 준 친구들의 연락처가 떠올랐다. 그들에게 연락을 했다. 도엽에게 꼭 하고 싶은 말들을 진심을 담아 보내 달라고. 도엽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게 해주자고. 큰 사랑으로 도엽이를 잘 보내 주자고. 연락을 받은 도엽의 친한 친구들은, 도엽이가 친하게 지내지 못해 연락하기조차 부끄럽다고 말한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몇 명은 즉시 메일을 보내왔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적은 거라 두서없고 짧은 글이지만 진심이 도엽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아직 편지를 쓰지 못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 정말 하고 싶은 얘기 다 쓰면 되죠? 편집 알아서 잘해 주실 거죠?”라고 눈물을 가득 머금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 쓰세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거든요, 사랑할 시간이. 아마도 도엽이는 그걸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만 허락되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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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이*에게

 

(* 도엽의 어린 시절 이름은 중원이었다. 도엽에게 좋지 않은 일이 거듭되면서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이름을 중원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지푸라기가 100개가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지푸라기라도, 엄마는 지푸라기 100개를 모두 잡았을 것이다.)

 

중원아 나 준영이.

고등학교 때 같이 지냈던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동영이한테 많이 묻기도 했고 듣기도 했어.

어제 동영이 전화 받고선 실험실에서 펑펑 울었다?

이 녀석아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뭐가 그리 걱정이야.. 나도 찾아가지 않은 게 잘못이긴 하네.

진짜 막 고등학교 때 내 성격으론 막 잔소리 하고 때려주고 싶은데. 이 녀석아이 김중원 착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 찾아가면 혼낼 거야?

보고 싶은 중원아내가 너 많이많이 좋아하거든? 진짜진짜 좋아해.

진작 찾아가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해진심으로 보고 싶어. 중원아 보고 싶다.

ps 1. 이름 바꾼 건 나한테 말 안 해줬으니 중원이라 계속 부르려 했는데.

ps 2. 도엽이 보고 싶다.

 

- 준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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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이에게

 

중원아 나 고2 때 같은 반이었던 ()해진이다. 기억나니?

동영이랑 영권이랑 너랑 나, 넷이서 몰려다닌 거 잊은 거 아니겠지?

학교 야자 끝나면 매일같이 노래방 가서 놀고, 노래방 안 가는 날이면 옆 중학교 운동장에서 늦게까지 이야길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괜시리 웃음이 난다. 하는 건 없었어도 참 재밌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이 되었지만 쉬는 시간, 청소 시간마다 복도 끝 창가에 모여서 수다 떨었었지. 그때는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너와만 연락이 끊기면서 섭섭했지만 가끔 만나는 동영이나 영권이를 통해 재수한단 이야기, 대학 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쁘니까... 각자 열심히 살다가 언젠간 보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어느 날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 줄은 몰랐어... 알려 주는 사람도, 자세하게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들었는데... 순간 멍해지더라.

내가 아는 중원이가 그 이야기 속 도엽이란 친구가 맞으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들 전부 학교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자리도 잡아서 번듯하게 한번 만났어야지.... 세상에 재밌고 아름다운 게 얼마나 많은데 즐기지도 못하고 벌써 가려고 하냐 이 친구야... .

내게 학창 시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내가 매일 기도할게.

고맙고 사랑한다, 중원아.

 

- 혼자 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는 해진이가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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