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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by 한종호 2015. 9. 25.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3)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1815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는 오랜 항해를 마친 범선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되었을까 말까한 한 청년이 입항의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물건과 사연을 싣고 온 배를 보기 위해 항구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정세는 아직 불투명했습니다. 엘베 섬에 귀양 간 나폴레옹의 파리 복귀 작전이 비밀스럽게 새어나오고 있었고, 반 나폴레옹 파의 권력은 충분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제정세도 나폴레옹의 귀환이 유럽에 새로운 폭풍을 몰고 올 것을 예감하고,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에드몽 단테스. 범선의 진두지휘를 맡고 있던 청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자마자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만나러 달려갔고, 아버지와의 포옹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약혼녀 메르세데스에게로 단걸음에 뛰어갑니다.

 

항해는 성공적이었고, 놀랍게도 그는 이제 선주의 인정을 받아 그 약관의 나이에 새로운 선장으로 승진될 행운을 잡게 되었습니다. 마르세이유 남자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던 메르세데스와의 결혼도 곧 성사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축복의 여신은 그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드몽 단테스의 행운을 시기하는 자의 눈초리는 우정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반역의 음모를 그에게 뒤집어 씌워 억울한 취조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단테스가 소지했던 나폴레옹의 서한은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고 맙니다.

 

악명 높은 감옥, 한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샤도디프(Chateau d'If)에 갇힌 단테스는 그러나 그곳에서 이미 탈출을 꿈꾸고 벽을 파고 있던 신부 파리아와 만나, 새로운 돌파구를 열게 됩니다. 결국 그는 탈출에 성공하고, 파리아가 알려준 보물섬 몬테 크리스토에 가 단테스는 스스로 백작으로 변신, 고향 마르세이유에 돌아가게 되지요.

 

아이들에게는 암굴왕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원작은 알렉산더 듀마의 작품,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줄거리이지요. 삼총사와 함께 듀마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혁명의 기운이 충만했던 1844년 출간되자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사랑과 역사가 얽혀 복수극으로 전개될 만한 이 이야기는 그런데 결말에 가서 놀라운 반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몬테 크리스토는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이름입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된, 한때 선주를 꿈꾸었던 청년 에드몽 단테스는 복수의 허망함과 사랑 앞에서의 진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는 이 모든 원한과 아픔, 그리고 허탈을 뒤로 하고 마르세이유를 떠나게 되지요.

 

상대를 억누를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문제를 푸는 시대에, 단테스는 깊은 결단으로 이 모든 원한의 사슬을 끊고 모두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의 청춘도, 그의 애정도, 그리고 그의 한 때 꿈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으나, 사실 단테스는 자신을 시련과 고난의 답으로 마르세이유에 영원히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격렬한 혁명의 시대에, 그는 혁명의 진정한 면모에 대한 인간적 진실을 토로한 셈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전환기의 와중에서, 실로 깊고 깊은 진통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화와 화해의 여지가 사라진 대립과 충돌의 장에서 필요한 결단이 무엇인지, 마르세이유를 홀로 떠나는 단테스의 뒷모습이 말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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