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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by 한종호 2016. 1. 6.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8)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위안부 문제 한-일 외교협상은 일본 아베정권의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위한 것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여기에 조력한 것입니다.

 

1. 시한이 없는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준 사건입니다. 반인륜적 범죄 규탄과 응징에는 시한이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2. 일본의 과거 식민지 통치의 피해에 대한 법적 정리를 졸속으로 처리한 1965년 한일협정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입니다. 일본은 이로써 한일협정에 규정된 법적 책임 해결문제를 재확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적 죄과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3. 만주 관동군, 이른바 황군에 복무한 박정희는 위안부의 존재를 모를 수 없습니다. 한일협정 협상 당시 이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은 과거는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4. 일본 아베 정권은 이로써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완료한 셈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여기에 조력을 했구요. 한반도 평화는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5. 살아있고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는 피해 당사자를 배제한 사건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외교관계에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는 피해 당사자국가의 주권적 권리이자, 매우 중요한 외교적 기반입니다. 이걸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6. 우리,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의 위안부 문제제기에 중요한 지침이 되어 일본의 군사주의 체제 확대를 통제할 수 있는 지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7.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은 총선 이후 철거 시도를 하려 할 것입니다. 일본이 이 소녀상은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출발점으로 일종의 기념비처럼 대우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텐데,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소녀상은 여성의 권리를 짓밟은 반인류적 범죄를 증언하는 표상입니다. 이걸 철거하려는 순간, 박근혜 정권은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8. 이번 협정은 한국과 일본 내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성과를 일부 담아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협정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좀 더 확실하게 밀고 가면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걸 중도에서 멈추게 한 죄과에 대해 박근혜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9. 위안부 한일 외교 협상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한-일 역사문제, 아시아 평화 문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포괄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전면적으로 논의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문제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0. 일본은 과거 명치유신 이후 영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은 후 끈질기게 재협상을 통해 내용을 바꾸어내 낸 바가 있습니다. 외교사는 그러한 선례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한일외교의 참사는 되돌이켜야 합니다. 아니면 한반도 평화통일에 매우 중대한 장애가 만들어지고 말 것입니다.

 

2016년, 우리는 어떤 21세기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대단히 결정적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위안부

 

칼끝이 목을 겨누면

진창의 군화가 젊음을 꺾어도

어쩌지 못했다

 

자상(刺傷)을 입은 육체는

이미 남의 것이 되었고

돌아갈 고향은

아버지의 수치와 어머니의 통곡이 기다리는

어느새 갈 수 없는 땅

 

삼천리강산이 봄을 빼앗기고

들판을 빛내던 청춘은

남십자성(南十字星) 아래 시궁창 냄새를 풍겼다

 

제국의 하녀가 되어버린 몸이

뒤틀린 시신(屍身)을 미리 보여주고,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비명을 지르는데

아무도 듣지 못하는가

 

밀림에 기록된 잔혹사의 일지(日誌)가

패전의 대본영 어느 구석에

폐지로 버려졌다

 

한때의 승자와 패자가

아니 한때의 주인과 그 머슴이

아니 아직도 그때를 그리워 잊지 못하는 자들이

악수를 나누고

한껏 웃은 뒤

막도장을 파서

꽝하고 기세 좋게 찍은

저 외교문서라는 종이는

우리의 전 생애를

몇 푼의 돈으로 팔아 넘겼다

 

김학순, 배봉기,

그리고 무수한 이름들이 적힌 치마저고리가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린다

 

우리는

그날 소녀였다

열여섯,

꽃처럼 피어나던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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