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종호의 '너른마당'

봄은 무어며 봄은 오느냐고

by 한종호 2016. 2. 4.

한종호의 너른마당(44)

 

봄은 무어며 봄은 오느냐고

 

 

벌써 입춘입니다.

 

오늘의 날씨와 체감온도만 중시하는 요즘의 입춘이야 흘깃 지나가는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우리네 옛 선조들은 이 날이면 얼어붙은 땅이 언제 녹고 그 매서운 북서풍이 언제 바뀔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던 엄동설한 속에서도 봄기운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묵은 땅을 갈 준비도 하고 새 땅에 뿌릴 씨앗도 챙기면서 한 해의 농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편 대문짝이나 문지방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또는 ‘세재■■ 만사여의대통’(歲在■■ 萬事如意大通)이라는 춘방(春榜)을 크게 붙여, 한 해 동안 집안일과 농사일이 잘 되기를 축원하였습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첫머리는 과연 만물에게 겨울동안 칼끝처럼 파고드는 냉기(冷氣)앞에서 자신을 지키느라고 바짝 움츠러들고 조였던 육신의 긴장을 스스럼없이 풀어주는 힘이 있다 싶습니다. 이른바 ‘생명의 무장해제(武裝解除)’입니다. 아직 완연한 봄을 이야기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지만, 봄은 더 말할 나위 없는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입니다.

 

그런데 왠지, 봄이 왔다는 시정(市井)에 봄기운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직도 겨울이라고, 봄은 아직 너무도 멀리 있다고 외쳐대는 얼어붙은 얼굴들, 분노와 허탈의 늪 속에 잠겨 있는 마음들이 덩어리져 있는 듯 합니다. 그토록 애써 왔는데 이게 뭐냐고 서로 헐뜯는 다툼이 계속됩니다. 분열이 치유되기는커녕 더욱 심해지는 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묻게 됩니다. 과연 봄은 무어며 봄은 오느냐고.

 

봄은 하늘에서 벼락치듯 급작스럽게 오지 않습니다. 봄은 작은 소리로 스며들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완전히 뒤바꿉니다. 우리는 조직이나 위원회의 결성, 법의 개정이나 새로운 제도를 통해 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봄은 우리가 생각하듯 정치나 제도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봄을 가져오시는 궁극적인 힘은 오직 야웨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다만 그 봄을 기다리며 준비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기보다 마치 우리가 봄을 이룰 듯이 성급해 하거나 욕심을 부리고, 우리의 뜻이 그분의 뜻이라고 내세우며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미 겨울이 주는 얼음 속의 고요와 편안함에 익숙해 꽁꽁 얼은 안정만 찾고 있지는 않은지, 얼음이 녹아야 생명의 물이 되는데도 깨어지기 싫어 끼리끼리 꽝꽝 묶여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한껏 몸부림치지만 우리가 낳은 것은 한낱 바람에 불과하여 이 땅에 봄이 찾아오는 것을 가로막은 것은 아닌지….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