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꿈은 무력한가? 그렇지 않다. 꿈꾸는 자가 없다면 역사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 문익환의 <꿈을 비는 마음> 부분

 

문익환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정주영은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끊어졌던 철로가 연결되었다. 개성공단을 향하는 차량의 행렬은 날마다 휴전선을 넘어 갔다. 북한의 조림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하였고, 빵공장과 병원을 세워주는 일도 활발하지 않았던가. 바야흐로 길이 열렸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달라고 하겠다던 한 노인의 꿈, 유럽의 어느 간이역에서 서울행 열차표를 살 꿈을 꾸었던 홍세화의 꿈이 실현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 부푼 꿈에 젖어 있었다.



<holding hands - flickr>


 

하지만 통일로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평화로운 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가 필요한데, 신뢰라는 것은 한 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갈등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만나 차이를 조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러 정파들이 북한을 타자화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식량을 지원하고, 비료를 지원하고, 에너지를 지원하는 일로 우리가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들을 통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경제력의 차이를 가지고 그들에게 근거없는 열등감을 강요할 때 남북의 만남은 서로에게 불행이 될 가능성이 많다.

 

개성공단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대한 통일의 실험실이었다. 우리가 차이를 넘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이며, 서로의 필요에 주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장이니 말이다. 경제논리가 그 장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통일 이후의 삶의 본보기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통일 한국은 비시장적 가치들이 진지하게 고려되는 곳이어야 한다. 통일의 실험실인 개성이 장망성으로 변해간다면 우리 앞에 열린 길에는 다시금 다북쑥이 우거지게 될지도 모른다.

 

길은 열렸지만 아직 그 길에는 위험이 많다. 하여 임종을 앞둔 메브 푸엘로가 했던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렇다. 구세주 그리스도께 올라가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네 가진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맨발로 걸어가는 이들과 함께 걸어 길 끝에 계시는 하나님께 가야 한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출발점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모두 함께 도달하게 될 것이다.” 맨발로 걸어가는 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서는 사람들, 홀로 앞서 가기보다는 더디더라도 함께 걷기를 배우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통일의 일꾼들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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