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25)


우리는 지지 않는다


차이를 내포한 반복


손석춘 선생님,


하염없이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면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규원 선생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나를 젖게 해놓고, 내 안에서/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비가 와도 젖은 者는> 부분) 혼자 비감해져서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마지막 연만 되뇌고 있습니다. 뭔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있지만 모든 언어가 물살에 떠내려갔는지 아니면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것인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뜬금없이 ‘슬픔’이라는 단어만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던 슬픔의 정한이 물러갈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다만 헛된 꿈이었나 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아프고, 눈물의 강은 우리네 삶을 관통하며 유유히 흘러갑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 기자의 말이 왜 이리도 처연하게 들려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들뢰즈는 어떠한 반복도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고통 혹은 슬픔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은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진중공업 타워 크레인 85호 그 아스라한 허공에 머물며 버텨내고 있는 김진숙 씨의 그 가혹한 시간을 생각하니 오늘의 안일한 삶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경제논리, 정치논리로 그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에 대한 항거의 깃발로 우뚝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진숙 씨를 노동해방의 깃발로만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깃발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생뚱맞게도 문태준의 시 <가재미>가 떠오릅니다. 시의 화자는 암 투병하는 여인을 애연히 바라보다가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고 노래합니다.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는 표현입니다. 시인은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고 내처 적었습니다. 이 시가 떠올랐던 것은 아마 이 표현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내 저 허공에 매달린 김진숙 씨의 강건함과 고요함 그리고 햇살처럼 맑은 얼굴에 안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저 허공이 아니라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국 도처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감사했고, 그들을 향해 최루액을 살포하는 경찰을 보며 속상했습니다. 자기가 숨 쉴 만한 희망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이들이 고마웠고, 우리 시대의 희망 버스가 되지 못하는 교회 때문에 슬펐습니다. 어쩌면 지금 하염없이 전국을 적시는 장맛비는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예수>에서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고 노래했던 정호승 시인이 만일 <부산의 예수>를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예수가 경찰차에 기대어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선생님께서 주기도문을 들머리에 옮겨 적으신 것을 보면서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대화에 임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생각을 나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찾기임을 새삼스럽게 자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저의 자리가 뒤집힌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반성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구도자적 자세로 임하고 계신 데 저는 오히려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바장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지요?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 말입니다. 그 둘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참 행복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둘 사이의 불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가끔 별 일 없이 편히 쉬어도 몸과 마음이 무거운 것은 그 불화의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할 텐데, 나날이 시름만 깊어갑니다.





예수, 그리고 매혹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년 시절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저는 이전까지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가난했지만 마음이 풍족했던 사람들, 누가 보더라도 목을 꼿꼿이 세우고 살만한 자리에 있었지만 한없이 겸손하고 부드러웠던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재와 싸우기 위해 안일한 일상을 내려놓은 사람들…. 저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 먼저 그런 이들을 만났습니다. 세상의 문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느끼던 처지에 그런 이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세상의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규정짓고 있는 하나의 중심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라는 사나이였습니다. 그분의 부름을 받기도 전에 저는 예수에게 매혹 당했고, 그분을 알아갈수록 현실의 교회에 대해서는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깃든 빛까지 앗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라는 사나이와의 사귐이 깊어갈수록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표상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채색의 세상이 돌연 찬란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아도 감사했고, 풀잎에 내려앉는 햇살만 보아도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공중을 자유로이 나는 새들도 그분을 찬미하는 듯했습니다. 내 앞에 현전하고 있는 세계 전체가 어떤 메시지인양 들려왔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은혜임이 실감되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고단한 삶을 이럭저럭 견디며 살아가는 삶이 싫어졌습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터 위에 집을 짓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화가 났습니다. 현실 교회가 노정하고 있는 모습은 예수의 원정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거의 급진적이라 할 만큼 인생의 방향을 선회한 것은 은혜로운 부르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예수 정신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저는 신학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곤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생각만 깊어갔습니다. 자기 확신에 찬 이들을 만나면 그들의 확신을 뒤흔들어놓거나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공허감도 따라 깊어갔습니다. 마치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던 막대기 끝의 빈자리를 바라보듯 공허한 눈길로 세상을 흘끔거리곤 했습니다.


까뮈, 사르트르,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루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 탐닉했던 것은 그런 허깃증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의 언저리조차 살피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제게 숨구멍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마치 생채기를 긁어 덧내듯이 그들을 잡아당기던 심연을 즐겨 응시하곤 했습니다. ‘콘텍스트’는 질문을 던지고 ‘텍스트’는 답을 준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서 있는 듯 삶은 위태로웠고, 진리의 길은 모호했습니다. 황홀한 도취도, 뚜렷한 지향도 없이 엄혹했던 시절을 견딘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전형적인 회색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예수라는 사나이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길을 나의 길로 삼기에는 심지가 너무 약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을 자꾸만 되뇌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논가 우물 속에 비쳐진 자기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시의 화자는 처연하게 고백합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상의 <거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자기불화와 연민 사이를 바장이면서도 저는 이미 정해진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목회자로 살기 시작했고 벌써 그 세월이 30년이 넘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톺아보니 부끄러움뿐입니다. 길들여진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채 순치되어버린 삶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이 무색하여 공연히 책상 앞에 놓아둔 석향을 들어 냄새를 맡았습니다. 돌밭 위에서 모질고 시린 세월을 견디며 안으로 축적한 향내가 은은히 퍼져 나왔습니다. 문득 내게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저어하는 마음이 드네요. 이야기가 일직선으로 내닫지 못하고 이렇게 가리산지리산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그동안 애써 숨겨 왔던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의 순수를 잊지 말아야


손석춘 선생님,


선생님은 예수를 보수의 눈으로 볼 것인가 진보의 눈으로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실을 찾아야 옳지 않은가 물으셨습니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진실이 없다면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허깨비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부드러운 눈빛과 조용조용한 말씨에서 투사를 보기보다는 구도자를 보았습니다. 구도자가 하는 말이기에 한국교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그 날선 언어가 더욱 예리하게 다가왔습니다. 청년 시절 나를 분노하게 했던 한국교회의 현실을 나 자신이 체화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큽니다.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신뢰했던 예수는 지금 이 땅에서 외롭습니다. 나 또한 예수를 외롭게 한 사람입니다. 그는 당신의 일을 함께 하는 이들을 ‘친구’라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 구석구석에서 파란 불꽃을 일으키듯 예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사람들의 귀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가끔은 주일을 맞이하는 것이 고문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말이 사람들의 가슴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가장 큰 번민은 입을 다물고 싶을 때조차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삶을 통해 뒷받침 되지 못하는 말의 부박함이 떠오를 때면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어집니다. 듣는 이들을 고려하여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저 자신과 마주칠 때면 그런 심정은 더욱 깊어집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꾐에 넘어간 덕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며 하나님을 향해 부르댑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예레미야 20:8).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 덕분에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으며 사는 제 모습이 되비쳐지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의 그 장하던 의기는 어디로 가고 현실에 길들여진 추레한 삶만 남은 것일까요?

성령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꾸짖었습니다. 그 첫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가끔 걸음마를 익히는 아기들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설렙니다. 몇 걸음 걷다가 이내 주저앉곤 하지만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설렘 사이의 그 창조적 긴장이 새 세상을 여는 틈이겠지요. 저는 가끔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첫걸음’을 들여다보면 합니다. 사립문 밖을 나선 아이가 저만치에서 한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가기 위해 역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그림이지요. 아기의 발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이미 아빠의 품에 안겨 있었을 겁니다. 제가 지금 회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인 듯싶습니다. 정진홍 선생님은 “처음의 순수를 잊으면 지금의 현존이 지향을 잃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헐적으로나마 처음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일 겁니다.


잡담회 풍경


손 선생님,


부끄러운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는 것은 이제 탄식만 하며 지낼 수는 없다는 나름의 절박함 때문입니다. 의기만으로는 사람이나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서둘지 않으려 합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널뛰기하기보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跂者不立, 跨者不行)는 노자의 말이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 까치발을 들거나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걷는 것은 결국 남보다 커 보이거나, 남보다 앞서겠다는 마음이겠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작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압니다. 촛불을 나누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요즘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교인들과 잡담회를 갖습니다. 정해진 멤버도 없고 정해진 주제도 없이 그저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잡담회에는 두 가지 금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들의 말을 비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잡담회인가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잡담’을 사전은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로 정의해 놓았더군요. 하이데거도 잡담을 존재 망각에 빠진 ‘세인世人’의 특색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으니, 잡담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런 전제도 없이 벗들과 편하게 주고받는 잡담 속에서 창의적 사고의 단초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마음 편한 잡담이야말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고 남을 받아들이기도 하는 소통의 마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의 잡담회는 꽤 진지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것과는 다른 신앙적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이 그 자리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모처럼 담임목사와 편하게 대면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던지는 질문의 요지는 ‘구원의 배타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구원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묻자 주춤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전제해 왔고 또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인데, 질문을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모호해지고 만 겁니다. 잠시 망설이던 그들은 아주 솔직하게 내세에서 누리는 지복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사용된 구원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용례에 대해 말해줬고, 예수가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초점은 저 세상보다는 이 땅에서의 삶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고,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가 느낀 것은 많은 이들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식의 질문과 대답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을 원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고 말하면 그것은 대답의 회피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가치가 착종된 세상에서 단순한 답을 찾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답은 현실적합성을 갖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진정한 신앙이란 정답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이해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신앙이란 손쉬운 해답을 거절하는 용기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미 준비된 정답을 그냥 수용하기보다는 물음을 향해 자기를 열어놓는 정직한 태도가 필요하다고도 말합니다. 답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함은 일쑤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믿음의 탈을 쓴 폭력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도구화하는 것이야말로 반(反)신앙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답을 원하는 이들에게 질문과 의혹거리만 잔뜩 안겨 준 셈입니다. 교우들이 저의 그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신앙적 고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틈을 만드는 사람들


손 선생님,


요즘 저는 길들여진 제 둔중한 의식을 두드리는 몇몇 일들에 접하며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절망하여 목사라는 직분을 내려놓는 젊은 목회자가 등장했고,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당분간 목회 현장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분도 계십니다. 한결같이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직은 천직’이라는 소명 신화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오랜 번민의 시간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선택을 만류하는 이들보다는 오히려 격려하고 심지어 부러워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의 교회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면제년을 앞두고 돌려받지 못할까 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지 않는 것이 ‘죄’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셨습니다. 또 ‘원죄’는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제멋대로 왜곡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목사의 버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죄’나 ‘원죄’라는 말을 일의적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죄’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참 다양한 층위의 현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라는 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용어들은 인류의 장구한 역사적 경험과 존재론적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는 주름 잡힌 말들입니다. 그것을 펴서 매끄러운 말로 바꾸는 것은 오히려 해석학적 낭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있던 죄의 공동체적 혹은 사회적 차원을 강조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펼쳐 보이신 역사 전망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본이 경제 발전을 주도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사람의 노동이 주도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진단하셨지요? 물론 이행의 조짐은 미약하지만 결국 그렇게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절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인간화의 길로 사람을 몰아대는 자본을 횡포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하고, 인간 영혼의 선함을 굳게 신뢰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할 겁니다. 저는 그런 신뢰의 밑절미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힘을 굳게 믿는 이들이 본다면 세상모르는 이들의 설레발이라고 우리를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웃거나 말거나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김지하 선생의 시 <틈>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아파트 사이 빈 틈으로 불어오는 꽃샘바람을 맞습니다. 아파트를 거쳐온 그 바람은 사람의 몸속에도 꽃눈을 틔웁니다. 시인은 ‘갇힌 삶에도/봄 오는 것은/빈 틈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새일은 늘/틈에서 벌어진다’고 말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틈’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말로 옮기면 ‘꿈’이 되겠지요?


세상 다시 그리기


선생님은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가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소망을 품고 애굽을 떠났던 히브리 공동체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노예노동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던 이들에게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며 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폭언과 채찍 아래에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허덕이던 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광야로 나갔습니다. 삶의 조건은 엄혹했지만 그들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형성되어 갔습니다. 애굽에서 준비해 간 음식이 떨어져 난감할 때는 하늘에서 내린 음식으로 배를 불렸고, 소유와 축적이 무의미함도 배웠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허덕일 때는 반석에서 터져 나온 생수로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출애굽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까닭은 지금 우리의 형편이 애굽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고, 할당량․폭언․채찍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책상 빼’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정신은 점점 왜소해집니다. 사람의 정신을 왜소하게 만드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대안적인 삶을 가리켜 보이는 이정표가 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과 돌봄과 아낌에 근거한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내면화하고는 성공신화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의 꿈도 떠오릅니다. 그는 앗시리아 제국의 야욕으로 인해 지중해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을 때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꿈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그 꿈은 현실의 고통을 잊도록 해주는 미약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마음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해주는 닻입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이사야 11:6-8).


이사야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그는 현실 논리에 매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가슴에 하늘의 불씨를 심었던 것입니다.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입니다.


예수의 겨자풀 천국도 떠오릅니다. 모두가 백향목처럼 우뚝한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세상에서 예수는 겨자풀의 나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백향목 세상은 몇몇 특권적인 사람에게만 천국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지옥인 세상이라면 겨자풀 세상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특색에 따라 살아가면서도 그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꿈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를 통해 펼치고 있습니다.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신앙 공동체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볼품없는 지체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가난한 이들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사회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종교, 문화, 경작의 종합


제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나라 혹은 사회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그런 나라 혹은 세상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가늠할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향이 분명하다면 길은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홀로는 걸을 수 없는 길이기에 벗들이 필요합니다. 부산을 향해 내달리던 희망 버스는 그 자체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몇 해 전 도로시 데이의 《고백》을 읽다가 눈이 번쩍 떠지는 한 구절과 만났습니다. 미국 가톨릭 운동사의 한 획을 그었던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선해질 수 있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이것은 피터 모린이 도로시의 가슴에 심어준 꿈이기도 했는데, 그런 세상의 모습을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피터는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그는 모두가 형제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기를 소망했다. 그의 생각에는 형제들이야말로 하나님과 선을 발견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다. 그래서 형제들을 향한 이 노력이 더 나은 물질적 삶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다. 스스로의 자질을 발휘하고 모든 예술에서 표현되는 사랑과 찬미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정도의 물질적 삶, 그는 모든 사람이 음식이나 옷과 같이 집에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생산하며, 적어도 이러한 생필품에 관한 한 결핍을 겪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내게 이와 관련한 비전을 심어 주려고 노력하면서, 그 원대한 계획을 ‘종교, 문화, 경작’의 종합이라고 불렀다.”(도로시 데이, 《고백》, 302쪽)


어쩌면 도로시 데이의 꿈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꿈을 구체적인 현실로 번역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종교, 문화, 경작을 종합할 수 있는 통섭의 능력은 홀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충동과 감상에 사로잡혀 글이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새로운 세상이라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합니다. 이제 이 장마가 지나고 나면 불볕더위가 찾아오겠지요? 그러면 또다시 소나기가 그리워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라고 노래했던 고정희의 절창이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편집자 주/이글은 김기석 목사, 손석춘 선생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중의 일부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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