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이 그리운 것은

 

이른바 조선의 지식인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인간 대접을 받기도 힘들었던 1930년대의 정신 풍토에서 김교신은 특이한 존재였다. 민족의 해방을 지상의 목표로 세우고 그렇게들 살아가는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이 “인간의 해방”을 고집하던 그는 200명이 넘지 않은 독자들을 상대로 15년 동안 월간지 <성서조선>을 발행하여 온 인물이다.

 

 

 

 

“조선을 알고 조선을 먹고 조선을 숨 쉬다가 그 흙으로 돌아간 김교신, “함석헌의 ‘조선 역사 수난의 5백년’ 교정을 보다가 인쇄소 공원들 곁에서 눈물을 씻던” 김교신, “한 발 앞서 얼굴을 보여 주시면 힘이 되겠다”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영원한 스승이었던 김교신,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1년여의 투옥 생활을 마친 후, 고향 근처인 흥남에서 한 질소비료공장의 계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전염병 발진티푸스가 돌던 시절, 밤낮없이 투병하는 노동자들을 돌보다가 감염 되어” 45세의 나이에 하직한 김교신, 그는 어떻게 초월 신앙과 참여적 삶을 책임적으로 살아낼 수 있었을까? 왜 구태여 “다시 김교신이 그리운 시절”인가? 방법론의 난무가 인간을 시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교육이든 심지어 종교까지 전략가가 가장 귀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숱한 법들이 골목과 골목을 누비고 그 법의 망을 뚫는 또 다른 ‘법’들이 시궁창과 시궁창 사이를 드나들게 되었다. 방법들의 무도회는 교회 안에서도 활개를 친다. 교인 수 늘리는 법, 전도하는 법, 목회에 성공하는 법, 교세를 확장하는 법….

 

김교신이 그리운 것은 오늘 거짓의 횡포가 너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그러니 서로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니 만사를 거짓으로 처리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속이고 만다. 청천 하늘 눈부신 태양 아래서 거인이 된 거짓은 자기 눈을 가리고 역사의 바퀴를 역회전 시킨다. 거기에서 우리는 증오의 신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본다. 연기는 퍼져 나가 눈먼 사람들을 알 수 없는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는다.

 

이 까마득한 절망의 심연에서 희망의 피리를 불어 줄 이는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이 죽었을 때 살았다고 소리치는 “새벽의 사람”은 어디 있는가? 성공! 성공! 모두가 성공을 목표로 삼아 남의 어깨를 무자비하게 밟고 올라서는데 “성공은 너희나 가져가라 나는 이 장난이나 칠란다!” 하고 주섬주섬 보따리 싸며 뒤틀린 사회의 궤도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이는 어디 있는가?

 

 

 

그리워라! 김교신, 그대는 외토리였고 그래서 기껏 친구를 삼는다는 게 한센인이었고 200여명이 넘지 못하는 독자들과 서신을 교환하듯 잡지를 내었고 이해 관계가 없는 일, 곧 무용한 일에만 흥분하였으니….

 

시대가 각박할수록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유”다. 밤이 깜깜할수록 요구되는 것은 “빛”이다. 답답할수록 요구되는 것은 몸부림이 아니라 “웃음”이다. 누가 알고 있었으랴! 두꺼운 땅거죽을 뚫고 연하디 연한 새싹이 솟아오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산천초목이 얼어붙은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연약한 개구리 서너 마리가 기어 다니리라는 것을….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만든 성전이다.

이 반상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가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여.

봄비가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 속을 구부려 찾앗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작은 담수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런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이것은 그의 「성서조선」으로 하여금 최후의 진통과 함께, 한 떨기 촛불이었다가 겨울 밤 하늘의 영원한 샛별이게 만든 마지막 권두언인 “조와弔蛙” 전문이다. 이 글로 인해 김교신, 함석헌 일행 12명이 전국 독자와 함께 검속(檢束)된 유명한 “성서조선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밤은 낮을 용납할 수 없으며 어둠은 빛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몇 마리 개구리의 시체를 묻어 준 것이 죄였을까? 아니다. 죄라면 개구리가 모두 숨어든 외로움 위에 걸터앉아 자기의 소리가 그들의 귀청을 울리는지 아니 울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도한 것이 죄 아니겠는가.

 

누가 이 황량한 역사의 무덤 위에 앉아 홀로 찬송하고 기도할 것인가? 누가 버티고 앉아 이 어둠을 견뎌 내 줄 것인가? 그리하여 문득 봄비 쏟아지는 날 죽은 개구리와 산 개구리를 따뜻한 손으로 맞이해 줄 것인가.

 

다시, 김교신을 만나기 위해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의 저자 백소영 교수는 다시금 우리를 불러낸다.

 

"김교신이 쓰고 엮은 「성서조선」과 그의 일기를 찬찬히 읽으며 그리운 ‘사람’ 김교신을 만나고, 그의 신앙고백과 인생의 가치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이야기를 담았다. 거의 한 세기 전에 “한 세기 후의 동지”를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사람 김교신에게, 기꺼이 동지 되기를 응답하는 21세기 친구들을 기다리며, 초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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