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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불의한 시대,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한종호 2016. 6. 3.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

 

불의한 시대,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리와 정의에 어긋난 시대를 거슬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불의한 시대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사건이나 행위에 대해 진위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사유의 과정 없는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문제 상황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갈등의 상황이나 강자가 약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불의한 시대에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반드시 있어야하고, 나름의 삶의 해법을 찾게 된다. 위기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적 성숙도와 품격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누적된 행동이 한 사람의 고유한 인격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 사회, 국가 모두 마찬가지다. 갈등의 상황에서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공동체의 품격이 결정된다.

 

구약성경에는 불의하고 부당한 힘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갔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 중에서도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았던 여성들 가운데 당차게 신앙적 행위를 표출했던 여성들이 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삶에서 주도적인 혹은 주체적인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여성은 남성의 그림자로 존재하여 주체적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선택지 앞에서 당당하고 지혜롭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이 있었다. 십브라와 부아다. 이 여성들은 폭압의 상징인 이집트 왕의 명령에 불복종을 선택한 히브리 산파였다.

 

 

 

때는 오래전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야곱과 함께 이집트에 내려갔던 후손들 66명을 포함해 모두 70명이(창세기 46:26-27; 참조. 창세기 46:8; 출애굽기 1:1-6) 이집트에 거주한 후로 폭발적인 인구성장이 있었던 상황이다. 시내산에서의 인구조사만 보더라도 전쟁에 나갈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민수기 1:46). 그러니까 하나님이 족장들(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언약하셨던 말씀이 성취된 시점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했고, 온 땅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했다(출애굽기 1:7).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 되는 시점, 이때 새로운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 노예로 팔렸지만 이집트의 권력 2인자의 삶을 살았던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새 왕이 통치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큰 축복의 상징인 이스라엘 후손의 인구 성장과 강함은 이집트 왕에게 두려움으로 작용했다(출애굽기1:8-10). 누구에게는 축복이 누구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세상은 이렇게 신비와 역설로 얽혀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날까, 이스라엘 후예들이 자기들의 대적과 합세하여 이집트 땅을 떠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출애굽기 1:10).

 

놀랍게도 이집트의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의 땅으로부터 떠나는 출애굽을 예상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값싼 노동력을 더 이상 제공 받지 못할 것에 대한 손익계산도 재빨랐다. 때문에 바로는 즉각적으로 대책을 강구한다. 그 첫 번째 대책은 강제 노역을 이용한 학대정책이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건축을 위한 노동력과 인력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시켜 학대했다(11절). 억압적인 중노동으로 인구감소 효과를 노린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억압의 강도를 높여갈수록 더욱 번성했다(12절). 바로는 이들을 통제하려고 고된 노동을 이용해 폭압의 수위를 높였다(13-14절). 끝내 폭력에 가까운 노역의 인구 억제책은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파괴하며 맞서는 일이 되었다. 바로는 하나님의 대적자가 된 것이다.

 

바로의 학대와 억압,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힘과 번성은 좌절되지 않았다. 왕은 새로운 대책을 강구한다. 그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은밀하게 불러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남자 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15절). 비밀리에 특별한 왕명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두 여성은 왕의 명령에 불복종한다. 그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16절). 이 여성들의 불복종의 근거는 시류를 꿰뚫는 촉이 밝아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이스라엘 지혜 신앙의 핵심이다. 그녀들의 하나님 경외 신앙이 태양신 “레”의 화신이라고 불릴 정도의 절대 권력자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바로는 그녀들의 불복종을 추궁하지만, 두 여성의 재치 있는 답변은 위기를 타개한다. 히브리 여인들이 건강하여 도착하기 전에 출산했다는 것이다(17-19절). 결국 산파들의 하나님 경외 신앙은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의 생명을 구했다. 당대 조산원 원장쯤이었을 두 여성은 폭압적 통치를 일삼는 권력자의 명령 앞에서 거침없이 불복종을 선택했다. 그녀들은 최고 권력자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컸기에 그녀들의 행동은 빛났다. 주류가 아닌 주변인이요,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들이 신앙의 대범함을 보여주었다. 신적권력에 버금가는 바로 앞에서 두 여성은 지상제국의 최고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자이며 왕이신 하나님 왕권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생각했다. 하여 여성신학자 엑섬(Cherry J. Exum)은 이 산파들의 행동에 대해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시민불복종 사건”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던 산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다(20절). 하나님은 그녀들에게 가정을 주셨고(21절), 끔찍한 영아 학살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후손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다(20절).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를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했던 것처럼(창세기 15:6), 산파들의 하나님 경외 신앙은 그녀들에게 복이 되었다. 두 여성의 신앙에 따른 행동은 바로의 영아학살 정책을 끝내 좌절시켰다. 시민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부당한 권력을 향한 불복종으로 이어져 어린 생명과 민족을 살렸다. 불복종을 선택한 두 여성의 용기는 아름다움 자체다.

 

 이후 바로는 새로운 인구 억제 정책을 궁리했고, 국가적인 법령 선포로 또 다른 위기를 촉발시킨다(출애굽기 1:22). 그러나 하나님은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도 약속의 성취를 위해 또 다른 인물을 준비시키실 것이다. 십브라와 부아의 하나님 경외 신앙은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의 요구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 앞에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범이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잠언 31:30).

 

김순영/백석대, 안양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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