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물’에는 생명이 없다

 

김교신은 세상 시스템을 ‘얕은 바다’라는 은유로 표현했다. 은급 제도, 보험제도, 교육, 기업경영 등의 ‘안전한’ 디딜 곳을 만들어 물의 깊이를 얕게 하는 것, 하여 손으로 바닥을 짚고 수영하듯 편안하게 힘 안들이고 살다 가는 인생을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했다. 땅을 짚었으니 빠져 죽을 염려는 없을 터이다. 인생살이가 불안하기는커녕 삶의 자세는 얼마나 여유롭고 당당하겠는가!

 

이리 사는 사람들은 제 생명 이 위태롭지 않으니 자연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앙망仰望’이 있을 리 없다. 뭐든 ‘내 손 안에’ 있으니… 그리 오래 살다보면 자기가 신神인 것도 같아 어디서나 이웃 생명들을 향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려 한다. 사회적 생명은 물론 물리적 생명조차 살리고 죽이는 결정이 “땅 짚고 헤엄치는” 자들에 의해서 원칙 없이, 자비 없이 행해진다.

 

오늘날 그러하고, 오늘날만 그러하지 않던 일이다. 그러나 김교신이 단언하듯이, 물의 깊이가 얕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기계 윤전의 마찰 소리”일 뿐이다. 그 곳에는 생명이 약동하는 기쁨의 노래가 없다. ‘안전한 삶’을 대가로, 태어난 대로의 생명이 누려야 할 자유를 빼앗긴 삶이니 말이다. 그것이 ‘기독교(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해도 인간들이 만든 ‘얕은 물’에는 생명이 없다.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

‘망해도, 살아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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