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3)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만일 나의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영혼 안에서도 드넓은 공간을 찾아내기만 하신다면,

나의 영혼을 이 강물로 가득 채우시리라는 것을.

 

글을 쓰다가 뒤뜰로 나가 밝은 달 아래 서니,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시 한 수가 문득 떠오른다.

 

“저 강상(江上)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노니 빛이 되도다.

갖고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 할 날 없으니

이것이 조물주의 무진장(無盡藏)이다.”

 

이 무진장한 바람과 달빛도 사람이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면 스며들 길이 없다.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도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로 헐떡거리고, 고즈넉한 달빛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누군가를 헐뜯고 험담이나 하고 있다면, 그 무진장한 조물주의 은덕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태백도 “청풍명월은 한 푼이라도 돈을 들여 사는 것이 아니다”(淸風明月不用一錢買)라고 노래했다. 그 마음이 물(物)의 집착을 벗어나 한가롭기만 하면 청풍명월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청풍명월은커녕 하루에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날 때가 많다. 이런 딱한 우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

 

이 철부지 인간들아, 맨날 돈, 돈, 돈 하지만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가져도 아무도 금할 이 없으니, 공짜 바람 공짜 달구경 더러 하며 살도록 하여라. 맑은 바람 밝은 달이 일 년에 몇 날 되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르는가. 그러고도 뭐 하나님, 야훼님 어쩌구 내 이름자를 운운하니, 참 딱하기도 하다!”

 

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내면이 숱한 물질과 형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지 못한다면, 무진장의 하나님도 별 도리가 없으시다는 것이다.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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