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므로 편안한 법인데 그대(서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길 잃은 전쟁미아 꼴이 되고 마는지.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차를 하나 타더라도 지하철을 타더라도 괜한 주눅이나 들어 누구일 턱도 없는 눈치를 탄다. 게다가 좀 외진 모서리에서 마주 돌아오던 여자와 하필 눈이 마주칠 때!(읽는 남자는 깨달을 진저.) 그녀가 놀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가 놀랄까봐 미리 내가 더 움츠려 드니 필시 그게 더 의심스럽게 보였을까. 젠장. 원수들이 내 이런 병신스런 모습을 본다면 박장대소 꽤나 통쾌해 마지않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문명이라는, 특히나 이즈음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낯선 대도시에 떨궈진 벌거벗은 인간의 참모습일 거라 느껴마지 않는다. 변명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라면 누군들 아닐까. 본래 인간이란 이렇커니, 거기 더해 길 잃은 나라, 길 잃은 고아 같은 국민의 정신상태랴. 그들에게는 길이 없기는 물론 너무 많기도 해 까딱하면 막다른 골목이거나 아예 벗어나기 태반인 것이다. 그러나 길이 암만 많은들, 풍경이 암만 대단한들, 혹은 그 반대 도저히 길이 없고 적막강산이라도 사람에겐 오로지 제 길 하나 제 맘 풍경 하나 밖에 더 있겠는가. 그 점에선 저 시골의 흙먼지로 안일하게 살아온 원주민이나 도시에서 평생을 누비며 도시먼지로 폐를 단련한 문화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또한 평등이라면 평등. 나는 겨우 용기를 차려 동점(同點)을 유지한다.

 

모처럼 불려 나온 뜻 깊은 출판 기념 모임에 한 시간이나 넘어 겨우 도착했다. 버스와 택시에 시달린 끝에 비위는 상하고 몸 상태가 급히 나빠져 그만 기념은커녕 참여 자체가 버티기였다. 어영부영 남아있다간 남의 결례가 될 판이고 빨리 돌아가야 하나 갈 길이 멀어 겁부터 났다. 인생이란 참 어처구니 없다. 기껏 왔구나 싶으니 가야하다니. 아내를 부를까 하다가 또 한 번 식구들을 놀래 킬 것 같아 참고 가보자 한 것인데. 에어컨 찬바람에 예민한 몸만 아주 덜뜨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쏟아진다. 마루 끝에 겨울 이불을 덮고 누워 앓으며 마당이며 앞산이며 나무들과 풀 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해갈의 쾌락에 떨며 식물들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역시 옥수수가 그중 압권이다. 쑥! 쑥! 흐려진 시력에도 자라는 게 뵈는 것 같다. 그 끝자락 비오는 날 아득히 먼 추억처럼 이 시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 시를 낭송한 영화배우 이덕화의 낮게 깔린 굵은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그럴 때 이덕화를 보면 ‘배우는 배우’라는 말 백번 동의하게 된다.)

 

접시꽃 당신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1986)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땐 겨우 스물한 살 무렵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지금의 나보다 십년은 더 어렸을 때다. 연소하고 늙음이 생의 천치를 극복하는데 무슨 조건이 될까. 십년도 더 어린 젊은 부부가 죽음과 작별에 직면해 처절히 깨달아 가는 존재의 결국.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의 아프고 결연한 의지는 그 앞에서 여전히 옥수수 잎처럼 흔들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자기들의 운명을 이 세상 공통의 숙명으로 자각하며 마치 순교자처럼, 선지자처럼, 개인의 종말을 약속의 책임을 진 종말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실화(實話)는 슬픔의 시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종교적 구도의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일이란 끝내 이런 걸까? 몰랐던 거다. 아는 척 넘어간 알음알이에 불과했다. 그저 남의 가정 얘기로, 베스트셀러 시집의 사연으로, 이런 저런 비평의 말보태기로, 무심히 정리해 버렸던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 일이 아니었음으로.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일들을 겪어냈다. 그 끝에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한 사람은 이 땅에 증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또 어떤 냉정한 사람은 심드렁하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무슨 대수냐’ 물을 수 있겠지? 뭐라 대답해야 할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그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그렇게 말한들 그 말이 그 의미일까?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제 고단해 보이시던데 괜찮으신지요? 참 좋은 길벗이 시름에 잠긴 듯하여 마음 아팠습니다. 쾌유를 빕니다.”

 

아침에 깨니 문자가 와있었다. 약간의 충격? 어제 북콘서트 끝나고 겨우 축하만 드리고 인사도 안 하고 떠나왔는데. 잠간 비친 내 모습이 역력히 수척해 보인 모양이다. 하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전엔 보지 못한 낯선 내가 보인다. 뭐랄까? 몸과 맘과 얼굴이 그대로 거울에 보인다고 할까. ‘고단함과 시름’이라 표현됐지만 나는 그걸 정확히 번역할 수 있다. 빗소리를 완상하다 간단히 미루어둔 답신을 보내려 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젊은 나이에 골골 거리니 면목 없습니다. 몸이 회복 되는 듯 하다간 또 파김치가 되곤 하는군요. 기도해 주셔요. 목사님의 진진한 문장과 마음을 감탄하면서 따라 가 봅니다. 제가 좀 어려서 목사님을 뵀으면 해보기도 하구요. 울울해요. 몸이 아파 그런지 모든 게 아쉽습니다. 저의 개인적 무기력도 이 시대의 무력함도. 목사님의 문자를 대하니 하릴없이 많아진 눈물이 또 쏟아집니다. ㅠㅠ.”

 

간단히 보내려던 답신을 쓰다가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러움일지 아쉬움일지, 내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일지도 모른다. 눈물을 훔치며 전송을 누르는데 약간의 주저가 따라왔다. 이건 뭐지? 괜스레 화가 났다. ‘그냥 정말 간단히 쓸걸….’ 그리곤 좀 있다 답신이 왔다. 정말 간단했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사와 감격 때문이 아니라 냉정한 거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냉정한 거리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고 해야겠다. 원망이나 섭섭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운명에 대한 결백한 일깨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내 눈물에 대한 답으로서 내게 보내진 인생의 선배, 삶의 선생님의 따뜻하고도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다. 정직하고도 겸손하여 어느 선을 넘어가지 않는, 그러나 정확하고 냉정하여 일견 무심한 듯 나의 전투를 독려하는 전언이라 여겨졌다. 나는 조금 실컷 울고 나서 다음과 같이 답신을 드렸다.

 

“감사합니다. 몸과 맘 말씀으로 잘 간수하겠습니다.”

 

많은 경우, 나는 아직도 내가 인간에 대한 허망한 의지에 매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은 의례적 수사나 냉담으로 내게 대답해 준다. 그러나 때로는 절제된 간결함으로 나를 일깨워 주는 분들이 계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 했을까’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든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세상을 잘 못 읽었다. 어려서 문학을 잘못 읽은 것처럼, 최종적 관점을 갖지 못했고, 거기 투철하지 못했고, 언제나 사랑과 위로의 목마름 같은 갈망과 원함의 상태에 머물렀다. 믿는 자라기보다 구도자처럼. 그러니 이제 내 오류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픈 것일지라도, 아픔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일지라도, 진짜 보배를 얻었으면 가짜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무리 내 일생을 바쳐 획득한 것일지라도, 혹은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향해 싸워왔던 것일지라도.

 

나는 실패를 인정한다. 이것으론 백전백패일 뿐이다. 나는 그 점을 인정했다. 결국을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임을 그분은 내게 일러 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정말 나를 사랑하여 내게 진실을 보여준 가장 정직하고 투철한 선생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도 투철함은 끝까지 투철함이다. 그것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 간결함이고 냉정함이고 동시에 그로인한 따스함이고 사랑이다. 마치 그리스도처럼. 그분이 내 맘을 왜 모르셨겠는가? 모르는 것도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깨어 투철함이다. 그는 내게 다시 말씀한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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