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흙내음으로 태어난 ‘칠칠한’ 옛말

 

 

‘속담(俗談)’은 “예부터 민간에 내려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이라고 합니다. ‘민간(民間)’은 “여느 사람들 사이”를 가리키고, ‘격언(格言)’은 “겪은 이야기”를 가리키며, ‘잠언(箴言)’은 “가르치는 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옛날부터 여느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던 말이란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는 일을 하는 동안 내려오던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속담 = 시골말’인 셈이요, ‘시골 이야기’인 셈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진 말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겪은 이야기예요.

 

“칠칠하지 못해서 야단을 맞았다면 칠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우리는 칠칠하지 못하다는 야단만 맞았을 뿐 칠칠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31쪽).

 

“그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바위옷이 이쁘잖아요? 지금은 말랐지만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날지도 몰라요.” ‘바위옷’이라고 했다”(58쪽).

 

시골마을에서 목사로 일하는 한희철 님이 쓴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를 읽습니다. 한희철 님은 ‘속담’이라는 말보다는 ‘옛글’이라는 말을 씁니다. 197가지 옛글을 놓고 오늘날 삶을 돌아보는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손수 시골일(흙일)을 하기도 하면서 옛글(속담)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한테 ‘살아가는 뜻’을 교회에서 들려주려고 옛글을 되읽는다고 해요.

 

“한숨도 버릇되는 것이라면 절망도 원망도 슬픔도 버릇 아닐까? 웃음도 희망도 사랑도 버릇일지 모른다. 타고난 성품으로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내가 가진 마음의 결과가 켜켜 쌓여 만든 결과일 것이다”(75쪽).

 

“어느새 우리들의 삶은 농사와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비가 올 때마다 아름다운 우리말 몇 개쯤은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84쪽).

 

‘시루에 물은 채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라든지 ‘늘 쓰는 가래는 녹이 슬지 않는다’라든지 ‘호미 빌려간 놈이 감자 캐 간다’ 같은 말은 모두 시골말입니다. ‘썩은 감자 하나가 섬 감자를 썩힌다’나 ‘윗논에 물이 있으면 아랫논도 물 걱정 않는다’ 같은 말은 모두 시골말이에요. 시골에서 시골일을 하는 동안 시골사람이 스스로 겪은 삶을 짤막한 말로 남겨서 흘러온 이야기예요.

 

 

오늘 우리는 흔히 ‘속담·격언·잠언’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곰곰이 따진다면 ‘시골말’이나 ‘시골슬기’나 ‘흙말’이나 ‘흙슬기’ 같은 새 이름을 붙여 볼 만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말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흙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속(俗)’이나 ‘옛’이라는 이름하고는 사뭇 다른 자리에서 흐르는 말이지 싶어요.

 

시골에서 살며 시골일을 하는 시골사람은 ‘논밭’이라 말합니다. ‘콩’하고 ‘팥’을 말합니다. ‘호미·낫·쟁기’를 말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말합니다. ‘씨앗·가을걷이·설·한가위’를 말합니다. ‘도랑·고랑’을 말합니다. ‘날씨’를 말하고 ‘바람·하늘·비·눈’을 말합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런 시골말을 놓고 도시에서는 으레 ‘한자로 옷을 입힌 다른 말’을 쓰기 마련입니다. 흙을 만지지 않는 관청 일꾼도 시골말을 잘 안 써 버릇합니다.

 

“‘돌이’와 관련된 말 중에 ‘돌이마음’이란 것이 있다. “사심을 돌려 바르고 착한 길로 들어서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마음을 돌려먹는다” 해서 ‘돌이마음’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136쪽)

 

‘옹달’이란 말이 들어가는 낱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옹달솥’은 “작고 오목한 솥”이란 뜻이다. ‘옹달시루’란 “작고 오목한 시루”라는 뜻이요, ‘옹달우물’은 “작고 오목한 우물”이란 뜻이다(146쪽).

 

한희철 님은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라는 책을 빌어서 ‘돌이마음’이나 ‘바위옷’이나 ‘옹달’이나 ‘겉볼안’이나 ‘언구럭’이나 ‘도사리’ 같은 시골말을 새롭게 살려서 오늘날에도 넉넉히 쓸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흙을 가꾸면서 살림을 짓던 오래된 말마디마다 깃든 따사로운 슬기를 돌아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매우 많이 살고, 흙을 만지기보다는 흙하고 멀어진 일을 하더라도, 누구나 밥을 먹는 살림인 만큼 ‘밥이 태어난 흙자리’를 되새기는 말(슬기로운 말)을 마음에 얹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보다도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말이다”(291-292쪽).

 

“다 같이 듣고 있어도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귓등’으로 들을 수도 있고, ‘귀담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314쪽).

 

옛날부터 흔히 썼기에 ‘옛말’입니다. 옛말이라 해서 오늘날에 안 쓰는 말이 아닙니다. ‘삶(살다)·사랑·살림·사랑·슬기’ 같은 낱말은 아주 오래된 한국말인데, 이 말을 쓰면서 ‘오래된 말’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지 싶어요. 예나 이제나 즐겁게 쓰고 새롭게 쓰기도 해요.

 

그러나 어떤 말이든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쓰지 않으면 쉽게 잊히고 쉽게 사라지지 싶습니다. 이런 뜻에서 ‘옛말(어제 말)’을 되새기면서 ‘새말(오늘 말)’을 짓는 살림으로 나아가는 슬기로 북돋우지 싶습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는 살림도 ‘옛말(어른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새말(아이 말)’을 가꾸어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이끌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라는 책에서 첫머리에 다루는 ‘칠칠하다’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참말 ‘칠칠하지 못하다’나 ‘칠칠치 못하다’ 꼴로만 흔히 쓸 뿐입니다. “넌 참 칠칠하구나.”라든지 “우리 칠칠하게 살림을 지어요.”처럼 말하는 일이 매우 드물지 싶어요.

 

칠칠하다

 

1. 나무, 풀, 머리털이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

2.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얌전하다

3. 결이나 일 매무새가 반듯하고 야무지다

 

“칠칠한 나무”나 “칠칠한 나물”이나 “칠칠한 머리카락”처럼 “칠칠한 차림새”나 “칠칠한 사람”이나 “칠칠한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헤아려 봅니다. 칠칠하지 ‘못한’ 모습이 아닌, ‘칠칠한’ 아름다움을 기쁘게 찾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못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다’는 생각으로 칠칠한 말과 넋과 삶으로 거듭나는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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