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0)

 

불신앙과 두려움 사이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王)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王)이 단정(斷定)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假令) 내가 왕(王)을 권(勸)한다 할지라도 왕(王)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에레미야 38:15).

 

몇 해 전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과 일본 나가사키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 거론되고 있던 동남아 대신 의미 있는 곳을 찾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의견을 보탰다가, 결국은 동행을 하게 됐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된 곳, 일본에는 생각지 못한 시절 뜨거운 순교의 피를 흘린 현장이 있었다. 순교의 피는 너무나 뜨겁다 싶은데 그럼에도 신앙과 상관없다 여겨지는 오늘의 모습, 쉽게 메워지지 않는 생각의 간극 때문일지 둘러보는 그 땅은 기이함으로 다가왔다.

 

순교지를 둘러보던 중 오무라 코오리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131명이 순교를 당한 마을이었다. 처음 접한 신앙, 순박하고 무지했던 사람들, 그럼에도 그 무엇이 그들을 순교의 자리로 나아가게 했을까, 과연 나를 포함한 오늘의 신앙인들은 같은 경우를 만났을 때 죽음으로써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오무라 코오리 마을에서 기독교인들을 처형한 이들은 131명을 처형한 뒤에 목을 잘라 몸과 머리를 따로 묻었다고 한다. 행여나 자신들이 죽인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한 목사님이 “그들도 부활은 믿었나 보네?” 하여 다 같이 웃었다. 그 목사님의 말에 한 마디를 보탰다.

 

“믿었던 게 아니라 두려워했던 것이겠지요.”

 

 

 

예레미야가 전한 주님의 말씀을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로 여겨 예레미야를 물웅덩이에 던져 넣었던 시드기야 왕, 그런데 성전 어귀로 예레미야를 불러내 “아무 것도 나에게 숨기지 말라” 하며 주님의 뜻을 묻는다.

 

시드기야는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한다고 해도 주님의 뜻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왜 시드기야가 몰랐을까?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실은 주님의 뜻이 두려웠던 것이다.

 

왕의 질문에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제가 만일 숨김없이 말씀드린다면, 임금님께서는 저를 죽이실 것입니다. 또 제가 임금님께 말씀을 드려도, 임금님께서는 저의 말을 들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새번역>

 

“소인이 바른 말을 하면 임금님께서는 틀림없이 소인을 죽이실 것입니다. 소인이 말씀드려도 임금님께서는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공동번역>

 

“제가 임금님께 사실대로 아뢰면 임금님께서 반드시 저를 죽이실 것이고, 제가 임금님께 조언을 드린다 해도 임금님께서 제 말을 들으실 리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귀를 닫고 완전무장을 한 채 두려움으로 말씀을 묻고 있는, 시드기야의 모습이 딱하고 두렵다. 불신앙과 두려움 사이, 그곳은 결코 신앙의 자리가 아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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