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2)

 

태양과 장마가 만나면

 

태양과 장마가 서로 엇갈리면서 여름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숨이 막히도록 더운 공기와, 축축하게 습기가 찬 날씨를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것도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묘한 것은 이 두개의 세력이 서로 반목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만이 존재한다면, 나무와 풀과 강은 질식하고 말 것입니다. 흙은 먼지가 되고 사막은 점점 몸이 불어나, 화산이 폭발한 뒤에 쏟아져 나온 마그마처럼 숲과 도시를 기습해 들어올지 모릅니다. 바다조차 더 이상 해초와 물고기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태양의 신”은 저주를 내리는 존재가 되고 이를 떠받들던 사제들은 모두 깊이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양의 신을 위한 제단을 받들던 신화의 시대는 그로서 종식되고 재앙의 징벌만 난무하는 가혹한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 지구의 몸속에 스며 있던 물기가 다 하늘로 빨려 올라간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땅의 물은 그렇게 태양의 광선을 타고 올라가 하늘의 물이 되어 크기가 자라고 무게가 채워지면 낙하의 준비를 완료하게 됩니다.

 

 

 

 

태양이 작열했던 까닭의 하나가 어느새 지쳐가고 있던 지상의 기력을 다시 불려 들여 하늘의 기운으로 재충전하여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인 것을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건, 산과 들, 계곡과 하천에서 산만하고 미력하게 작업을 하던 일꾼들을 소환하여 대군으로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만나면 각기 자신이 있었던 곳의 소식을 교환할 것입니다.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할 겁니다. 흙 속 저 깊은 곳에 계속 갇혀 지낼 뻔한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고공비행을 하면서 파견임지를 바꾸는 흥분으로 들떠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름의 긴 장마는 그래서 지구의 새로운 소식과 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저 파미르 고원과 아마존의 정글, 프라하의 이끼긴 시냇가와 아프리카대륙의 서안을 끼고 대서양을 막 돌아 마주치는 케이프타운의 이국적 풍경과 예기치 않게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비는 낙하의 순간, 지역을 따져 묻지 않고 인종을 차별하지 않으며 빈부의 격차에 따라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땅에서 쌓은 노련한 연륜과 하늘에서 다시 받은 기력과 소명으로 우리의 머리 위에, 우리의 들판 위에, 우리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숨이 막혔던 영혼들이 기운을 되찾고 흙먼지가 되어가던 희망이 다시 녹색의 대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태양은 축복이 되고 장마는 자신의 일을 마치면 물러갈 줄 아는 지혜로운 자의 모습으로 남을 겁니다. 그런, 좋은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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