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4)

 

지워진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2)

 

억압의 상황에서 누구도 정의를 위해 일어나지 않는 참혹한 시대,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사사기 5:6-7)가 이십년 동안 가나안 왕 야빈의 억압의 고리를 끊는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의 지위가 아버지 혹은 남편에 의해 부속되는 시대였지만, 그녀는 예언자이며 정의를 실행하는(사사기 4:4-5) 사사로서의 직임을 다했다. 드보라가 여느 사사들처럼 전쟁터에서 군사적인 지도자로서의 사사 임무를 수행할 즈음, 그녀는 납달리 지파의 땅 게데스에 거주하던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소환한다(4:6). ‘꿀벌’이라는 뜻의 드보라가 ‘벼락’이라는 뜻의 바락을 부른 것이다. 이름에 오묘한 역설이 숨겨있다. 작고 약한 존재가 훨씬 강력한 존재를 불러내는 상황이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4:6)고 명령한다. 드보라의 말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는 것과 그녀가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로 묶인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것이 강조된다. 이뿐만 아니라 드보라는 바락에게 군대장관 시스라와 900대의 병거들을 기손 강으로 유인하면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신탁을 확인시켜 준다(4:7). 전투보다 순종의 중요성이 강조된 셈이다.

 

그럼에도 바락은 하나님 명령에 즉각 순종하지 않았다. 바락은 드보라에게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겠지만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노라.”(4:8)고 대답한다. 그는 전쟁이 두려웠던 것일까? 엄마를 필요로 하는 소년처럼 겁을 내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의 어머니’(5:7) 드보라에게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5:1; 4:6)은 지나칠 정도로 드보라를 의존한다. 그런 바락을 향한 드보라의 말은 확신에 차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라”(4:9).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4:9)는 드보라의 말은 바락의 소심함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면서 모세가 죽은 이후 두려워하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여호수아 1:5, 9) 확신을 주셨던 말씀과 겹쳐진다. 이처럼 전쟁터로 향하는 바락에게 드보라의 동행은 큰 힘이었다. 하지만 드보라의 강력한 지도력이 후대의 성경 저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일까? 죽음을 앞둔 사무엘의 고별사에서 드보라의 이름을 생략하는 반면 바락으로 짐작되는 이름이 언급된다.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70인역, ‘바락’)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

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사무엘상 12:11).

 

히브리서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하나님 통치의 대리자들을 열거한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브리서 11:32).

 

바락의 이름은 있으나 드보라의 이름은 없다. 여성의 지도력에 대한 사무엘서와 히브리서 저자의 불편함의 표시였을 거라고 단정 짓거나 그 의도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성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은 아니었을까.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성령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설파했지만(고린도전서 12:13), 지금의 제도교회는 여성지도력에 대한 포장된 이중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는 공적으로 가부장제, 성차별, 학벌, 계급주의를 찬동하지 않지만, 이것들은 암암리에 실질적인 사회 작동원리로서 사회구조를 떠받치고 있지 않은가.

 

어떻든 드보라는 자신을 의지하는 바락을 위해 함께 전쟁터로 향한다. 이때 가나안 왕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바락이 다볼산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4:12) 900대 철 병거와 병력을 기손 강가로 이동시킨다(4:13).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이 시스라의 군사 전략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넘기려고 기손 강가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드보라 예언자의 말이(4:7) 성취된 셈이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담대하게 출전할 것을 촉구한다.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주신 날이라”(4:14).

 

이때 바락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드보라는 출전에 앞서 바락에게 여호와께서 군대장관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넘길 것을 미리 밝혀두었다(4:9). 그렇더라도 ‘벼락’(바락)은 ‘꿀벌’(드보라)을 의지하고 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다볼 산에서 내려갔다(4:14).

 

그런데 이 전쟁은 병력의 힘으로 승리하는 땅 위의 전쟁이 아니라 초월적인 전쟁처럼 묘사되었다. 하늘로부터 별들이 시스라와 싸웠다든지(5:20), 기손 강물이 삼켜버렸다(5:21)라는 상상력 넘치는 과장된 표현에서 전쟁의 승리는 군사적 역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협곡의 빠른 물살을 피하는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었다. 혼돈의 상황, 바락은 혼비백산한 시스라의 군대를 추격했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시스라의 군대는 죽임을 당했다(4:16).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의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지만, 가나안 군인들은 이스라엘을 이기지도 전리품을 탈취할 수 도 없었다(5:19). 하나님이 자신의 대리자들을 통해 일궈낸 완벽한 승리였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 시대의 어른답게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칭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호소하는 노래를 부른다(5:2, 9). 두려움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새로운 신들을 찾을지언정 누구도 일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때(5:8), 드보라는 일어나 백성들의 일치된 헌신을 이끌어 냈다(5:13-18). 뿐만 아니라 지도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게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도록 일깨웠다(5:10-11). 지도자의 권위의식이 아니라 시대의 어른으로서 올바른 권위와 인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리라.

 

드보라의 이야기에는 아버지나 남편에게만 부여된 하나의 권위, 하나의 성(gender)만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억압과 차별이 일상화되고 여성에게는 수동성을 요구하는 사회의 맥락에서 고정된 관념의 ‘여성다움’은 해체된다. 하여 이스라엘의 어머니(5:7) 드보라의 이야기가 역사의 지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전히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재로 불러내어 현실의 여성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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