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52)


하나님의 마음, 그 여성의 힘


여러 가지 복잡한 정세 속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역사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젊은이들 가운데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절망할 일만 잔뜩 있다고 여긴 세상에서 아름다운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그동안 남성들이 대체적으로 주력해온 강압과 폭력, 그리고 지배의 시대에 맞서서 여성들의 섬세한 시선과 아픔을 다사롭게 품어내는 마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그 어려운 연수과정을 끝낸 뒤 판검사로 임용이 된 젊은이들 가운데 절반이 여성이라는 현실도 오늘날 이 시대가 경험하고 있는 여성들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합니다. 에전에 의정부 지검의 임은정 검사는 과거사 재심사건인 박형규 목사 민청학련 사건에 ‘백지구형’ 지시를 거부하고 구형을 내리기 전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며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달 자살한  김 모 검사 건에 대해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부지검에서 연판장 돌려야 하는거 아니냐. 평검사회의 해야하는거 아니냐" 며 "내부에서 더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리지 못한 죄로 동료들 역시 죄인이라 누구탓을 할 염치도 없었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덧붙인다면 판검사가 된 이 여성들이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의 지배자가 아니라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자신을 바칠 줄 아는 아름다움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야 세상은 자신의 죄와 모순을 밝히 깨닫고 무엇이 가장 옳은 일인지, 가장 가치 있는 작업인지 깊이 알아가게 될 것이며 그로써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줄어가게 될 것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역할 역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우선 그의 어머니가 되는 마리아를 보아도 우리는 그녀가 단지 수동적으로 성령 잉태한 한 시골의 처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당대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껴안고 있었고, 당대의 모순과 정면으로 마주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이 실현되기를 매우 적극적이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패배주의와 운명론적 사슬에 묶여 자신의 삶과 시대의 불행을 탓하고 있기만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그녀의 찬가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새로운 생명의 시대를 열어나가게 되는 기쁨을 확고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고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내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분명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노래를 통해서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움켜쥐고 오만한 자세로 살고 있는 이들이 언제까지나 떵떵거리며 시대를 호령할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과 행동 앞에서 졸지에 무력해질 것을 내다봅니다. 그리고는 가난과 고통과 힘겨운 삶에 짓눌려 있던 이 세상의 작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체세력으로 우뚝 일어설 것을 예견합니다. 이 마리아의 찬가는 그리하여 그저 한 여인의 기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모든 가난하고 약하며 현실을 감당하기에 힘이 없는 작은 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압축된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삶 속에 집약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후 세상의 약한 자들을 가리키면서 “이 작은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목은 하나님의 시선이 누구에게 머물러 있는지, 그래서 인간사의 새로운 활로를 어떻게 뚫어내시려는 것인지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습니다. 크고 강한 것을 숭상하는 시대에 작은 존재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배우고 깨닫지 못하면 어느새 인간은 크고 강한 것에 복종하고 그에 기회주의적으로 들러붙어 선과 의를 내버린 채 사는 타락과 죄악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와는 달리, 작은 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이들에게 세상에 압도당하지 않을 힘을 주시려는 하늘의 응답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하여 그녀의 몸은 그저 몸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생명의 능력이 충만해질 대로 충만해진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곧 예수 탄생의 현장이 될 수 있는 힘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몸으로 태어나는 모든 자리에는 바로 그렇게 이웃의 아픔과 시대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고 살려는 존재가 가진 영혼의 아름다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는 바로 이 영혼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얼마나 충만하게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자칫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종교적 포장이 될 수 있는 위험을 직시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에는 절절하나 이웃의 필요에는 무관심하거나 또는 냉정한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함께 이기적인 신앙인도 더욱 증가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몸으로 짊어지고 살려는 간절한 기도와 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아픔은 보이지 않은 채, 언제나 자신의 필요만을 먼저 앞세우는 신앙으로는 우리의 영혼이 아름다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영혼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곳에 하늘의 능력을 품은 생명의 진정한 탄생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이 세상의 아픔과 상처를 깊이 품어내는 여성의 힘을 가지시고 계십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 하면서 이스라엘의 현실을 아파했던 예수님의 탄식은 바로 그 대목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경쟁과 지배와 폭력과 기만으로 얼룩진 이 시대를 새롭게 살릴 힘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품어 되살리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얻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태어나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진정 부요해지는 길입니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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