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톺아보기(26)

 

                                                   하늘 북소리

어른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숫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났을 때 자기가 살던 별을 B 612호라고 홋수까지 가르쳐 준 것은 그 때문이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그들의 질문은 고작 이런 것이다. 그러니 "창틀에는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했을 때 어른들이 그 집 모양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른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오히려 지혜로운 어린이/젊은이라면 몇 억 원 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착한 시인은 "천국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다"는 시를 썼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물었다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말을 들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해서 바라보는 세상에서 주눅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좀 서운할 게다. 학생들은 점수와 석차로 서열화되고, 어른들은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으로 서열화되는 세상이다. 목사들은 출석교인 수와 헌금액수에 따라 큰 목사와 작은 목사로 나뉜다. 사람들의 대접도 그에 따라 달라진다. '꿩잡는 게 매'라는 세상이니 너나할 것 없이 다 바쁘다. 회색일당에게 시간을 다 팔아 먹었나보다. 여러 해 전 학교에 머물고 있을 때 어느 학생이 편지를 보냈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고 말했어요. 한눈 팔면 뒤쳐질 것 같아 죽도록 달렸어요. 문득 허전했어요. 잠시 숨을 돌리려고 멈추어 섰더니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네요."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날 제법 유명한 문학 평론가가 술김에 나를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김형은 행복해요?" 하고 물었다. 행복하다고 하면 그의 눈물을 감당할 수 없을 듯싶고, 불행하다고 하면 뭔 목사가 그러냐고 할 것 같아 웃기만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빈 쭉정이처럼 살았다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 그래서 술을 먹으니까 제 정신이 돌아온 거냐고 물었더니 웃었다. 어른들도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술 먹어서 부끄럽냐?"고 물었더니 그는 말귀를 얼른 알아듣고 "부끄러워서 술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차 <<어린 왕자>>를 읽은 사람인 티를 냈다.

우리는 너무 작아졌다. 정말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정말 큰 형상은 보이지 않는다지 않던가? "북명에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었다지. 곤(鯤)은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었대". 여기까지 말하면 즉시 답이 돌아온다. "에이, 뻥치지 마세요." 장자(莊子)라는 사람도 이 시대에 오면 별 수 없을 거다. 그러니 그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되었는데 그 등 넓이만 해도 몇 천리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하품을 하면서 권태로운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다. 어느 이야기꾼은 자기는 어릴 때 동해에서 펄쩍 뛰어오른 물고기가 서해에 가서 풍덩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자랑하던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 아무도 안 듣는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말하면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누가 아니래나? 다른 갈매기들이 하구에 모여들어 끼룩거리면서 바다에서 밀려온 죽은 생선을 줍느라 야단일 때 조나단 리빙스턴은 높이 그리고 빨리 나는 법을 연습했다고 말하면 "그래도 먹어야 산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숫자 올가미에 걸린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올가미를 끊으면 큰일날 것 같지만, 아니다. 잠시 동안은 어리둥절하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광대한 자유의 지평이 눈앞에 펼쳐진다. 왕자의 운명을 타고나서 거지의 삶을 사는 게 타락이요 죄이다. 모두가 줄지어 행진하고 있을 때, 그 길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하늘 북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하늘 북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친구'라 부르겠다고 하셨다. 잘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 이 희망이 있어 나는 오늘도 웃는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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