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64)

 

흔들릴수록 중심에 서라

 

모압과 암몬 자손(子孫) 중(中)과 에돔과 모든 지방(地方)에 있는 유다인(人)도 바벨론 왕(王)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둔 것과 사반의 손자(孫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의 위에 세웠다 함을 듣고 그 모든 유다인(人)이 쫓겨났던 각처(各處)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葡萄酒)와 여름 실과(實果)를 심(甚)히 많이 모으니라 (렘40:11-12)

 

먼저 이야기를 했던 <소리새>라는 동화는 새터에 살던 새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에 없던 거센 폭풍우가 몰려왔을 때 새들은 모두 새터를 떠나고 만다.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지만 모든 나무가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새터에 살던 새 중에 소리새가 있었다. 몸뚱이도 작고 털의 빛깔도 우중충한, 한 마디로 볼품없는 새였다. 게다가 그는 노래도 잘 못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새로운 노래를 신나게 불렀던 다른 새들을 두고, 소리새는 옛 조상들이 불렀다는 느리고 낮은 노래만을 고집했다. 그것도 반쯤은 쉰 목소리로.

 

어느 날 폭풍을 피해서 새터를 떠났던 새들이 새터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보니 새터의 나무란 나무는 모두 쓰러져 있었다. 새들 중에서 나이 많은 새가 새터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말했을 때, 모두들 깜짝 놀라게 된다. 모두가 같은 이유였기 때문이다. 새터를 떠날 때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새의 노래가 가슴 속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돌아온 것이었다.

 

새들은 소리새를 찾기로 한다. 산꼭대기에 이르러 거기 쓰러져 있는 한 나무에서 마침내 소리새를 발견했을 때 소리새 주변으로 몰려든 새들은 소스라쳐 놀라고 만다. 소리새는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놀랐던 것은 소리새의 발목이 가지 끝에 철사 줄로 동여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묶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이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소리새의 발목을 묶은 건 소리새 스스로가 한 일이었다. 소리새의 부리가 형편없이 부러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새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때 어디선가 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새의 노래였다. 새들은 소리새가 불렀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새터엔 소리새의 노래가 퍼지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느라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소리새는 어디론가 다시 날아올랐다. 그는 결코 죽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바빌로니아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갈 때, 이스라엘 땅에 남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 사이에 퍼져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다랴에게 남아 있는 사람을 맡겼다는 소식이었다. 각처로 쫓겨났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는 그다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폐허와 절망의 시대에 그다랴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구심점이 된다.

 

그다랴가 백성들에게 이르는 말이 있다. 바빌로니아를 섬기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비록 나라를 빼앗긴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의 의미를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다. 어떤 성읍에서 살든지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면서 살라 한다.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은 이스라엘 땅에서 나는 대표적인 농산물이었다.

 

곧 회복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서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지 말고, 혹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삶을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뿌리를 내리며 희망을 저장하라고 한다.

 

그다랴의 말 중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자신은 미스바에 머물면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이다.(40:10) 그다랴가 머물겠다고 밝힌 곳이 미스바다. 미스바! 그다랴가 택한 곳이 미스바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미스바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곳이다. 이스라엘이 금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공격을 하러 왔을 때, 기도로 블레셋을 물리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에벤에셀이라는, 주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왔다는 의미를 담아 ‘도움의 돌’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이 미스바였다.(삼상 7:12)

 

미스바의 의미를 그다랴는 알고 있었고, 그 어려운 때 자신들이 머물 자리와 자신들이 취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선택한 결과가 미스바 아니었을까?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다랴가 미스바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미스바로 모여든다. 그들은 새로운 총독 그다랴가 택한 한 지역으로 모여든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로 회개의 자리로 모여든 것인지도 모른다!

 

혼란과 아픔과 절망으로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누군가 중심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중심과 구심점, 그것은 어느 시대이든 기도와 회개 아닐까.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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