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4)

 

소리의 자본주의

 

요시미 순야(吉見俊哉)라는 일본의 문화 사회학자가 쓴 <소리의 자본주의>는 전화로부터 시작해서 라디오나 축음기에 이르는 사회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제목이 <소리의 자본주의>라고 붙은 것을 봐도, 저자의 인식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리가 돈벌이가 되어가는 현실을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전화나 라디오, 그리고 축음기는 다만 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하나의 사업이 되고 또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통신과 대중문화를 누가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전화가 애초에 라디오 중계의 전신의 단계를 거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전화는 통신수단으로서 확대되어가기 전에 이미 오락적 요소로 그 기능을 발휘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88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의 경우, 그 안의 두 곳에 테아트르 폰이라고 하는 전화가 놓여 있었고 이 전화기를 통해 박람회장 안의 오페라나 공연 같은 것을 그대로 실황으로 들을 수 있게 해놓았던 것입니다.

 

 



어떤 극장의 주인은, 자신의 별장까지 전화선을 끌어 극장 안의 분위기나 반응도 이런 식으로 점검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라디오에서 전화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방식은 이런 과거의 모습과 사실 그리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도 전화로 중계하는 경우도 생겨났고, 드디어 선거에도 그 결과를 놓고 바로 이 전화 중계가 한 몫을 하게끔 되기조차 합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전화 교환수의 목소리는 규격화되어갔고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라디오 역시 그곳에 쓰이는 목소리는 어떤 틀 속에 정형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라디오 특유의 것으로 그 모습을 자리잡아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권력의 요구나 자본의 이해관계와 서로 어우러지면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주체화하기 보다는, 점점 그 규격화된 소리에 그대로 일률적으로 따라 가는, 그래서 행동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소리는 이제 권력의 도구가 되었고 자본의 상품이 되어간 것이었습니다. 파시즘이 이 라디오를 선전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경우였고, 따라서 이 소리들은 모두 “국가의 소리”가 되었으며, 또한 자본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군악대의 연주가 되어갔습니다.

결국 소리는 권력과 자본의 주도권 쟁탈의 목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소리가 가장 많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가, 어떤 소리를 침묵시킬 것인가, 그리고 때로 어떤 소리는 왜곡되도록 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지금껏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리의 자본주의> 체제 안의 현실입니다.

돈과 권력이 될 수 있는 소리와, 그렇지 못한 소리의 구별은 미디어 저널리즘의 일차적 원칙이 되어가고 있기조차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전쟁을 막고, 흔들리는 평화를 일으켜 세우며 진실을 밝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과 정의가 강처럼 흐르도록 하는 그런 미디어 저널리즘의 존재, 이런 것이 오늘날의 세상을 밝게 만들어 가는 힘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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