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6)

 

그럴 리가 없소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百姓)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自己)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다 말하매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驕慢)한 자(者)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居)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對敵)하여 갈대아인(人)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軍隊長官)과 모든 백성(百姓)이 유다 땅에 거(居)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聽從)치 아니하고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軍隊長官)이 유다의 남은 자(者) 곧 쫓겨났던 열방(列邦) 중(中)에서 유다 땅에 거(居)하려 하여 돌아온 자(者) 곧 남자(男子)와 여자(女子)와 유아(幼兒)와 왕(王)의 딸들과 시위대장(侍衛隊長)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孫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先知者)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영솔(領率)하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聽從)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 (예레미야 43:1-7)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농부가 어느 주일엔가 터덜터덜 예배당 앞을 지나가다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날 목사님은 무엇이든 간절하게 구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설교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농부가 생각 끝에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송아지 한 마리를 보내주시면 열심히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쓰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송아지를 떨어뜨리면 살 길이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드렸다. 송아지 살 돈 100만원을 보내주시면 송아지를 사는 수고는 자신이 하겠다고.

 

편지를 다 쓴 뒤 봉투에 담았다. 주소를 쓰는 난에는 그냥 ‘하나님 전상서’라 썼다. 편지를 분류하던 집배원이 이상한 주소가 적힌 봉투를 발견했다. 고민 끝에 우체국장에게 가지고 갔다. 우체국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겠다고 생각한 우체국장은 기도를 한 뒤 편지를 열었다.

 

기가 막힌 내용의 편지를 읽은 우체국장은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절반이라도 도와주어야지 싶은 마음으로 50만원을 담아 농부에게로 보냈다. 이제나 저제나 답장을 기다리던 농부에게 답장이 왔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여니 역시 송아지 살 돈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 돈을 세어보니 50만원이 아닌가. 분명 100만원을 구했는데 말이다. 농부는 생각했다. 하나님께선 틀림없이 100만원을 보내셨는데, 중간에 우체국에서 50만원을 떼먹은 게 분명하다고. 화가 난 농부는 씩씩거리면서 우체국장에게 따지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나 …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청하였던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다 들려주었을 때, 아사랴와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2, 새번역)

 

막막하고 위태했던 순간 백성들은 다급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대뜸 거짓말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말’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러나 그들은 망설임 없이 거짓말이라 한다.

 

기다렸던 하나님의 응답을 두고 거짓말이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집트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게 살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그냥 유다 땅에 머물러 살라 하셨다니, 그러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3, 새번역)

 

하나님의 뜻을 거짓말이라 단정한 그들은 한 걸음 나아가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하면서 설득력 있는 근거를 들이대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한 예레미야까지를 데리고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한 이집트 땅으로 내려간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를 때 대뜸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이라 했던 사람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란 단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이 아니다. 물었다면 그 뜻을 따르는 사람이다. 비록 내 뜻과 다르다 하여도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내 생각의 체에 걸러낸다. 그 체는 얼마나 촘촘한지 내 뜻과 조금만 달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걸러내는, 고성능 고감도 필터다.

 

내가 원하던 일이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생각한 때에, 그것도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 중의 무엇 하나가 어긋나도 내 생각의 체는 하나님의 뜻을 걸러낸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들은 같은 말을 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를 리가 없다고.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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