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54)

 

특권의 위계질서, 이름없는 명문가(1)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 <겨울사랑>, 고정희

 

추운 시절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모닥불 하나 쬐게 해주지 않으려는 기세로 우리 앞에 있다. ‘무한경쟁’이라는 슬로건에 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은 높게만 쌓여가고 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문이 잠겨 있다. 그 어디에도 치자꽃 향기 풍기지 않고, 혈관 속에 별이 운행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소백산은커녕 우리의 마음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짓만이 널려 있는 오늘이다. 그윽한 기쁨이 아니라 경박한 쾌락이 범람하며 이윽한 진실이 아니라 포장된 위선이 득세를 하고 있다. 한 번의 겨울도 제대로 버텨내기 어려운 세상인가.

 

그 여파인가. 요사이 젊은이들은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풍조가 만연하다고 한다. 실리우선주의가 가정의 미래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모습이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무슨 대단하게 생경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과거의 경우 인생사를 살면서 지쳐버린 기성세대의 대체적인 사고방식이었는데 사랑과 패기로 살아가야 할 세대조차 그렇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회의 병든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사람보다 그 사람을 이루는 집안배경과 능력 위주로 상대를 고르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결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결혼하는 셈이니 그 조건이 변해버리면 그런 때에는 어떻게 사태를 감당하려는지 걱정이 든다.

 

사람이 좋아서 함께 만나 가정을 이루어도 어려운 고비가 무수히 있게 마련인데, 조건으로 결합한 가정이라면 헤어지는 일도 아마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람이 좋아도 조건이 불편하면 사랑이 깨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깨질 사랑이면 애초에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장애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사랑한다는 자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실리주의라는 우상숭배

 

서로 처지가 사회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서 기를 쓰고 말리는 경우도 우리는 적지 않게 본다. 그렇게 해서 갈라놓고 손해 보지 않을 결혼, 이익이 남는 결혼을 골라서 시키느라고 혈안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괜찮아도 집안이 볼 것 없으면 일단 합격선에서 밀려나지만, 집안의 명성이 드높으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덤으로 올라간다. 이런 시각은 신앙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가치관과는 전혀 반대이다. ‘그 사람의 환경과 주변이 좋든 나쁘든 문제는 그 사람 자체이다’라는 하나님의 시선과는 딴판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과거가 혹 문제가 있다 해도 그걸 약점으로 잡아 걸고넘어지지 않으신다고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비교해보면, 그 사람이 선택한 것도 아닌 환경을 가지고 시비로 삼는 것은 실로 잔인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걸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현실이 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경쟁시대에 실리주의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의 증상이다.

 

무엇이든 그 집안의 명예와 위신을 높이는 일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뻑적지근한 가문과 연을 맺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사회적 위상에 변화가 오는 것을 기뻐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이를 수치로 받아들여 한사코 반대하는데,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명문가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들은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내는 집안이 되면 남들이 존경해주고 알아주고 떠받들어주고, 그런 집안과 알고 지내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사실상 이것은 열등감의 발로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단지 혈통의 확인과 그 계보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그런 콤플렉스의 깊고 깊은 흔적이기조차 하다. 따지고 보면 허무한 치장인데도 사람들은 그런 치장으로 자신을 높일 수 있다고 여기기에 족보의 명은 길다.

 

한 가문이 권세를 잡으면 권문세가가 되어서 어이없게도, 성씨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한 시대를 호령했다. 그리고 그런 호령으로 한번 특권층이 되면 마르고 닳도록 그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 별별 수단을 다 쓴다.

 

예전에 이완용의 후손이 땅을 찾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말할 수 없는 수치이자, 특권구조의 강고한 존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예이다. 하여 이 특권구조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후손은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그런 당당함을 용납해주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이란 것, 우리 민족의 의식수준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막막해질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이완용의 집안은 당시 실로 명문가였다. 그는 당대의 천재라고 사람들이 부러워했고, 나라가 망해도 그 집안은 귀족이 되어서 권문세가의 위엄을 부릴 수가 있었다. 그만이 아니라 무수한 명문세도가들이 나라의 패망과는 상관없이 몇십 간짜리 대궐 같은 집을 그대로 움켜쥐고 자신들의 일신의 영달을 누렸고, 그 자손들은 일본, 미국, 영국 등으로 유학을 다녀와 고스란히 다음 시대의 지배자들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민중은 수탈당하고, 독립이요 뭐요 하면서 가정이 파산 나고 육신이 일그러지는 동안에 이들 명문가들은 ‘세월이 이렇게 좋을 수야’하면서 민족의 현실은 아랑곳없이 끼리끼리 연을 맺고, 특권의 바벨탑이 무너질세라 판검사를 배출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박사들을 배출했다. 그 판검사들과 국회의원들과 박사들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보면, 기도 차지 않는다. 힘 좀 있다고 죄 없는 사람 가둬, 돈 없는 사람 중형을 때려, 기회만 있으면 부패와 부정을 저질러, 교묘한 말로 권세가들을 옹호해, 그렇게 살면서 밤낮으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서 정력 보강하느라고 기를 쓰다가 곱게 못 늙고 날이 갈수록 추해지는 것이다.

 

 

경쟁시대, 귀족 가문의 커넥션

 

그런데 이런 으리뻑적지근한 위세를 지닌 사람들이 그 집안을 채울 때 사람들은 그런 집안을 가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집안과 연을 맺으면 덩달아 명문가가 되는 길이 열린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특권층들이 귀족가문의 커넥션으로 되어가고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얼키설키 엮어져 있는 그 혼맥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추에 누가 버티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자기들 정도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간으로 생각도 않는 그런 현실이 한쪽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의 변화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종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로써 한국사회가 특권의 배분을 통해서 위계질서화하도록 만들어간다. 그래서 세상이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명문가라는 것이, 알고 보면 특권을 누리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철벽을 쳐놓고 으스대는 이들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나라를 망하게 한 자들, 나라를 부패하게 하고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자기들 세상처럼 굴다가 민족 전체를 곤경에 몰아넣은 부류들은 대체로 이런 자들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야 할까? 힘없는 백성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 예가 없다. 아니 나라를 망하게 할 힘조차 없는 이들이 어떻게 그리할 수 있겠는가. 도리어 이들은 나라의 패망 앞에서 가장 먼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섰으면 나섰지 특권층들처럼 나라의 주인이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어도 내내 1등석에 앉을 궁리나 하면서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다.

 

현대 한국사회의 특권층은 결국 중세봉건체제가 근대적 과정을 거쳐서 해체되기보다는 일제 식민지체제로 이어지면서 낡은 토지소유관계가 상당 부분 잔존하면서, 이에 기반을 둔 세력들이 한국사회의 근대사를 장악해버렸다는 점에 그 역사적 출생을 찾아볼 수가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3-4퍼센트의 인구가 전국 토지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지난 반세기 동안 이러한 토지소유의 집중화는 특권의 질서를 견고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해방 당시, 중세봉건적 잔재와 일제 식민지시대의 토지소유관계를 일제히 정리하여 새로운 민주적 토지소유관계로 전환하는 정치적 변화가 있어야 했으나, 권력과 결탁하여 토지소유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이 주도하면서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심화가 확대재생산되는 사회에서 특권을 폐지하고 누구나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경제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공평무사한 경쟁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정치가 그런 개혁적 방향으로 간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토지귀족이 길러낸 정치가와 산업자본가들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현대판 귀족체제를 형성하여 자신들의 배타적인 세력을 꾸리고, 한국사회의 미래적 활력에 상처와 절망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 없는 이들은 계속해서 고생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잘 살 수 있는 길은 원천봉쇄되어 있다’는 좌절감이 깊어지면, 특권의 위계질서 자체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한 사회의 건강한 결속력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자들에 대한 무작위적인 증오를 기반으로 하여 폭력을 행사했던 사례들은 이러한 사회의 극단적인 병세라고 하겠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방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을 보면 명문가의 허무함을 볼 수 있다. 인도의 네루 집안, 파키스탄의 부토 집안은 그 출발의 역사성과는 달리 그 자손들이 부패의 늪에 빠져 나라와 가문을 망신살 뻗치게 했다. 특권에 안주하면서 그것이 보장해주는 안전망에서 범죄적 행동을 자신의 삶의 스타일로 삼은 자들의 비극이다. 애초에는 훌륭하게 시작했던 가문이, 한마디로 집구석이 엉망이 된 것이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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