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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다윗의 여자 조상 룻과 나오미, 가부장적인 질서의 해독제였다

by 한종호 2016. 10. 4.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1)

 

다윗의 여자 조상 룻과 나오미, 가부장적인 질서의 해독제였다

 

룻기의 결말은(룻기4:18-22) 다윗의 조상을 소개하는 족보로 끝난다. 베레스-헤스론-람-암미나답-나손-살몬-보아스-오벳-이새-다윗까지다. 룻기의 히브리어 본문 마지막 글자가 다윗이다(4:22). 다윗의 여자 조상 룻과 나오미 이름이 계보에 없지만, 보아스는 룻의 남편이며 룻이 낳은 아들이 오벳이다(4:14). 아들을 낳은 이는 룻이지만, 시어머니 나오미가 손자 오벳의 양육자였다. 베들레헴 여자들은 룻이 낳은 아들 오벳을 보며 나오미와 손자를 축복했고 “일곱 아들보다 귀한”며느리 룻에 대한 열정적인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4:14-15).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4:13-15).

 

홀로 남겨진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4:17)라고 할 만큼 나오미를 지켜본 이웃 여인들의 가슴 벅찬 공감은 따듯하다. 이웃 여인들이 손자의 이름을 ‘섬기는 자’라는 뜻의 “오벳”으로 지어준 것(4:17) 역시 나오미의 오랜 슬픔에 대한 헤아림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이웃들이 이름을 지어줄 만큼 오벳의 출생은 마을 공동체의 기쁨이었다.

 

 

 

이렇게 두 여인이 다윗 왕의 여자 조상이 된 배경은 모압 여성 룻이 시어머니를 기필코 따라왔던 시점(1:1-18)으로 되돌아가 읽어야 한다. 나오미는 어린 며느리 룻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룻의 숭고한 신앙과 사랑의 노래에(1:16-17) 설득당하고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1:19). 때마침 보리추수시기였다(1:22). 돌아온 시점을 전하는 저자는 “모압 지방”과 “모압 여인”(1:22; 2:2)이라고 말하며 “모압”을 반복 강조한다. 저자는 왜 “모압”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사회적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인애’(헤세드)를 수행했던(1:8) 모압 여성의 삶이 주목받기를 원했던가 보다.

 

룻의 이야기는 에스더, 요셉, 다니엘의 이야기와 완전 반대다. 이들은 타국에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룻은 다윗의 여자 조상이 되었지만, 궁핍한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한 타국인이었다. 그것도 “모압인”이었다. “모압”과 “암몬”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시되었다(신명기23:4). 그러나 오경의 좀 더 큰 맥락에서 “타국인”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거주할 경우,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을 기억하고 객, 고아, 과부에게 억울함이 없도록(신명기24:17-22; 출애굽기22:21-22)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타국인 모압 여성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빈손으로 유다 땅에 이르렀을 때, 이웃의 추수 밭에서 이삭줍기로 곡식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이삭을 줍겠다며(2:2) 시어머니와 자신의 생계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때 이삭줍기위해 간 곳은 “우연히”(2:3) 죽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보아스는 마을에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유력한 자”였다(2:1). 섭리적인 “우연”이었다.

 

추수 밭의 주인 보아스는 낯선 젊은 여성이 룻이라는 것을 사환을 통해 듣고(2:5-6) 룻에게 말을 건넨다. 보아스는 “내 딸아,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나의 여자 종들과 함께 있으라”(2:7) 말하며 룻의 안전을 챙겼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고국을 떠나 온 일을 들어 알고 있었다(2:11). 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에 보응하시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바란다.”(2:12)라는 말만이 아니라 충분한 먹거리를 챙겨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2:15-17).

 

룻은 집에 돌아와 시어머니에게 보아스의 일을 알렸다. 룻이 만난 사람은 ‘기업 무를 자’(히브리말, ‘고엘’) 보아스였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가 현실의 벽을 넘는 순간이었다. 이때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친족들 중 ‘기업 무를 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만(2:20),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3:1)라고 말한다. 나오미의 관심은 자기 집안의 ‘기업 무를 자’보다 며느리의 새로운 ‘안식처’에 있었다. 모압인 룻은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는 법적인 조항들을(레위기 25:25-26; 47-55) 잘 알지 못했을 터. 그렇다고 나오미가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는 수혼에 관심을 둔 것도 아니었다. 나오미는 그저 과부된 며느리가 겪을 빈곤과 수치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봄의 보리추수에서 밀 추수가 끝날 때가지 이삭 줍는(2:23) 두어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오미는 친족 보아스가 밤의 타작마당에 있을 것을 룻에게 알려주며 조언한다. 여성이 여성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 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3:3-4).

 

잘못하다간 수치만 당할 수 도 있는 일이었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했다. 그날 한 밤중 잠에서 깬 보아스는 깜짝 놀랐다. 한 여인이 자기 발아래 누워있지 않는가!(3:8) 누구냐고 묻는 보아스에게 룻은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3:9)룻의 말에 주저함이 없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자신을 보호할 ‘구속 자’(히브리말, ‘고엘’)의 의무를 보아스에게 당차게 요구하며 청혼한 셈이다. 룻은 어려움에 처한 가족과 혼인하여 돌보는 책임과 특권을 수행하는 ‘고엘’의 지위를 보아스에게 상기시켰고, 룻 역시 가족의 의무에 충실했다.

 

보아스는 룻의 말대로 이행할 것을 다짐하며, 마을 사람들의 말을 빌려 룻이 “현숙한 여인”(3:11)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보아스는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남았다. 보아스는 자기보다 우선순위인 ‘고엘’이 있다는 사실을 룻에게 말하고, 다음 날 아침 성문에서 열 명의 장로들을 불러 모아 공적으로 ‘고엘’의 권리와 책임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4:1-11). 그리고 장로들과 마을 공동체는 이 일의 과정을 지켜보며 증인이 되었고, 축복의 말로 산뜻하게 마무리했다(4:11-12).

 

이렇게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아(4:22)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족보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기술되었기 때문에 혈통에 대한 부계의 권리만 강조되었다. 고대이스라엘 사회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 확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족보에서 여성들의 이름을 빼버렸다. 룻기의 족보(4:18-22)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남자 아버지 혹은 아들의 주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자 어머니와 딸(며느리)의 주체적인 계획과 행동에 의해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룻기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의 의지와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가 어우러져 가부장적인 질서에 틈을 만들며 구속 역사의 한 자락을 증언했다. 여성이 다른 여성의 활동을 생략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펜의 기록은 잠시 멈춰진 채로.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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